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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몸치인 내가 운동을 즐기게 된 건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걸 알게 된 후다.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하거나 달리고 나면 몸은 지치는데 이상하게 기운이 난다. 건강하기 위해서 혹은 살을 빼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그저 재미 있어서 운동을 하게 됐다.

운동의 묘미를 다 커서 알고 나니 가끔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지나온 어리고 젊었던 시간이 아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중학교 때까지는 꼭 운동을 시켜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또 하나 있다.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교육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유아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교육학 교수님들을 만났다. 창의성의 구성요소는 학자마다 다르게 이야기하지만 보통 길포드(Guilford)의 이론에 따라 민감성,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 정교성으로 본다.

그 하위 요소를 어떤 활동을 통해 발달시키느냐가 관건인데 당시에 만났던 한 교수님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셨다. 미국에선 창의성의 요소 중 하나를 'GRIT(그릿)'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릿'이란 성공과 성취를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지나 용기를 뜻한다. 아무리 창의성 요소를 많이 갖춘 사람이라도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없으면 창의성이 어떤 결과물로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 처음 합기도 학원에 간 아이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 윤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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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이에게 그 능력을 키워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즐겁게 끈기를 키울 수 있는 활동이라면 운동이 제격일 것 같았다. 아이에게 어떤 운동을 배우고 싶냐 물으니 방송 댄스를 하고 싶단다. 방송 댄스를 해서 과연 그릿을 키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선은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만 알게 되어도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운동을 통해서는 끈기뿐만 아니라 실패감을 경험하기도 하고 또다시 반복해 노력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거친 후 성취감을 얻게 된다. 운동이라는 틀을 통해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안전하게 반복할 수 있다.

아이는 2학년이 되고 나서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합기도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합기도는 태권도처럼 승급, 승단 제도가 있어 성취 기준이 명확하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제도가 도전하고 노력하고 성취감을 느끼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바로 등록해 주었다.

아이가 합기도를 다닌 지 3개월 정도 됐을 땐가. 평소와 달리 조용해서 뭘 하나 살펴봤다. 아이는 나무젓가락 5개를 셀로판테이프로 칭칭 감아 길게 만들었다. 자기 키보다 커진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빙글빙글 돌린다. 아이가 나무젓가락을 돌릴 때마다 테이프로 이어놓은 부분이 구부러져 휘청거린다.

"뭐 하는 거야?"
"봉술 연습. 우리 집에 봉이 없잖아. 내일 승급 심사 날이란 말이야."


승급하고 싶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연습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그날 밖에서 만난 같은 반 친구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아이의 친구는 태권도 도복을 입고 파란 띠를 하고 있었다. 딸은 합기도 도복에 노란띠 차림이었다. 보슬보슬 비가 오고 있었는데 딸은 쓰고 있던 우산을 방패처럼 아래로 내렸다. 친구와 헤어진 뒤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노란 띠 창피해서 우산으로 가린 거야."
"그랬어? 그런데 노란 띠가 뭐가 창피해? 다 거쳐야 하는 과정인데."
"그치? 노란 띠 창피한 거 아니지? 사부님도 나 잘한다고 칭찬 백 번도 넘게 해줬어."


나로 향한 질문
 
합기도를 꾸준히 하는 아이의 모습
▲ 합기도 수련 모습  합기도를 꾸준히 하는 아이의 모습
ⓒ 윤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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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그렇게 두 달마다 있는 승급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배운 걸 집에서도 연습하며 노력했다. 노란 띠를 벗어나고 초록띠, 파란띠 등등을 거쳐 1단을 딴 후, 시범단 활동도 했다. 코로나가 심해졌을 때 몇 개월 쉰 걸 제외하면 꾸준히 합기도를 해 이번 주말에는 2단을 땄다. 아이보다 합기도를 잘하는 아이는 아주 많다.

아이 스스로도 자신이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특출나지 않아도 시작이 늦고 실패하더라도 꾸준히 반복하고 연습하면 어느새 실력이 향상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가 합기도를 하면서 이걸 깨달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자신이 연습하고 성취한 것들을 기억하며 이 경험을 다른 영역에도 확장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앤절라 더크워스가 쓴 < GRIT >책을 보면 그릿 전형들은 가장 존경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롤모델을 부모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자녀에게 그릿이 생기기를 원한다면 먼저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끈기를 가지고 있는지 질문해 보라는 문장에서 가슴이 뜨끔했다.

진작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이에게 뭘 시켜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을텐데. 방향은 아이에게서 나로 향한다.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있나. 머릿속엔 물음표만 꽉 찼다.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5학년인 지금까지 합기도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나는 그 4년 동안 뭐 하나 꾸준히 한 게 없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마침 결심하기 딱 좋은 연말. 올해 두 달에 한 번씩 참여했던 마라톤(10킬로미터)을 내년에도 꾸준히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마라톤은 정확한 기록을 측정할 수 있어 자기 스스로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끼기 좋은 운동이다. 내년엔 10킬로미터를 한 시간 내에 들어온 후, 하프 마라톤 도전까지를 목표로 정했다.

사실 내가 이런 목표를 설정하든 말든, 꾸준히 달리든 말든 아이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면 아이 앞에서 마구 자랑을 할테니 아이가 모르기는 쉽지 않겠지. 아이를 보며 나의 그릿을 키우는 꼴이라니 어쩐지 책과 반대인 것 같긴 하지만.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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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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