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5 17:54최종 업데이트 22.12.15 17:54
  • 본문듣기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미국 외교협회(CFR)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100개 이상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을 확보했으며, 지금도 매년 10개 이상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1년 10회에도 못 미쳤던 미사일 발사 실험 횟수는 올해 60회 이상으로 증가했고, 2017년 11월 이후 중단했던 ICBM 발사 실험을 올해만 8회 진행했다.

그 과정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전투 무력' 강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핵무력정책 법령'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국내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91년 한국에서 철수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자거나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이 주장들은 미국 정부의 부정적인 태도로 인해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고 일단 잦아들었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북핵에 대해 '확장 억제'로 대응해야 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할수록 미국이 자신에 대한 핵 타격 가능성까지 무릅쓰고 한국 방위에 나설 것인지 의구심이 증가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도 역시 약화할 것이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전술핵 재배치론이나 독자 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전술핵무기 재배치론, 핵무장론 등의 증가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핵무장이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대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응방안이 되기보다는 더 큰 문제를 유발하는 새로운 연쇄반응을 작동시킬 뿐이다. 그 연관 관계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와 같은 사이비 인과관계에 불과하며, 그 종착점은 "떴다 떴다 비행기"와 같은 밝은 성격의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재난적 상황이다. 남북의 적대 관계가 강화되고 수백 개의 핵무기가 서로 대치하는 한반도 상황을 상상해보라.

한국 상황 인도·파키스탄과 달라

미국이 1991년 한국에서 철수한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하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군사적 효용성은 낮은 반면 새로운 정치적·군사적 문제만 야기하는 방안이다.

이를 북핵 억제 강화 수단으로 본다면 억제 수단은 이미 미국 본토의 ICBM, 핵을 투발할 수 있는 전폭기, 핵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 등으로 충분하다. 현재 북핵 억제는 수단이 있는가 여부보다 의지와 연관되어 있다. 즉, 미국이 자신에 대한 핵 보복 공격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앞으로도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는 북한 핵능력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이다.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될수록 그 신뢰도는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핵능력이 더 고도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북한이 지난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초강력적이고 절대적인 핵억제력을 끊임없이 제고함에 관한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최우선 국방건설 전략이 엄격히 실행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략 무력의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통신은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험발사를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덧붙였다. 2022.11.19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이와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북한이 핵능력을 키울 수 있는 명분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전술핵무기가 참수 작전처럼 북한의 지휘부를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북한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핵무력정책 법령에 명기된 핵무기 사용 5대 조건 중 하나가 "국가지도부와 국가 핵무력 지휘기구에 대한 핵 및 비핵공격 감행 혹은 임박 판단시"이다.

정치적으로는 전술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 핵 군비경쟁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 등의 새로운 부담이 발생한다. 미국이 통제권을 갖는 전술핵무기의 배치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이처럼 억제 강화에 큰 의미는 없고 부작용은 크다. 그런 점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입장이 변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낮고, 이 방안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미국은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에도 반대한다. 다만 전술핵무기 배치와는 달리 이론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군사대국으로 부상한다는 열망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는 북핵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반대론을 넘어설 수 있다는 기대도 있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남아시아의 상황이 한반도에서 재현되는 시나리오다. 당시 인도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이후 파키스탄도 핵실험에 성공하며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나서야 한다. 비밀리에 추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비밀이 유지되기는 어렵다. 비밀이 밝혀질 경우 국제사회에 대한 사기라는 비판까지 더해져 한국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다.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상대 국가가 핵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핵무장을 위한 정치적 명분은 될 수 있어도 법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이 NPT에서 탈퇴하는 순간 한국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할 수 없다. 그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피해는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낮았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한국의 핵무장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 입장에서는 비핵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북한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될 뿐이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 해도, 인도나 파키스탄이 누리고 있는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기를 희망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1990년대 인도, 파키스탄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이 핵무기 확산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의 문턱이 낮아진 상황에서 NPT가 무력화된다면 더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계가 아마겟돈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현재 중동이 핵확산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지역이다.

미 대북정책이 북 핵개발 의지 키워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독자적 핵무장이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관건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 동의할 것인가다. 이 물음에 현재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북한이 어렵게 고도화시킨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단정짓고 섣불리 결론을 내릴 일은 아니다. 비핵화 노력이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에 기초해 답을 찾아야 한다. 비핵화 가능성은 그 실패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비핵화 실패의 원인을 단순화시키면 상반된 두 주장이 맞서고 있다. 처음부터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는 주장과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었지만 대북 협상에 소극적인 미국의 접근 방법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여기서도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비핵화 실패의 원인을 북한의 비핵화 의지 유무라는 이분법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이 자신의 안전보장을 위해 핵카드를 사용했고 가능하면 비핵화 시점을 늦추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카드가 양적으로 증가하고 질적으로 강화되면서 최종적 비핵화까지의 길은 더 멀고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북한이 비핵화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단언할 일도 아니다. 비핵화에 꽤 근접한 합의가 이뤄지곤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신뢰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이지, 과정의 개시 시점에 실현되어 있거나 실현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유인을 약화시키고 비핵화에 대한 적극성을 강화시키는 협상과 실천이 계속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비핵화 합의 과정을 보면 그 적극성을 추동하기보다 약화시키는 접근법이 미국 대북정책을 지배했다. 1994년 10월 체결된 제네바합의가 대표적 사례다. 이 합의는 북한이 영변의 실험용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이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과 사찰을 받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공급하고 경수로 건설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갈린 쟁점은 이 합의 이전에 원자로를 가동해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에 대한 검증과 그 폐기 시점이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초기 단계에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경수로가 완공된 이후에 검증을 받겠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결국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절충되었다.

그러나 제네바합의 직후 진행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은 이를 불완전한 합의라고 비판하고 경수로 건설을 지연시켰다. 이로 인한 북미의 갈등은 2000년 11월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더 격화되었고 결국 2002년 제네바합의의 붕괴로 이어졌다.

당시 북한이 최종적 비핵화 실현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 시설의 검증과 폐기에 동의한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추출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 플루토늄의 양은 핵무기를 1~2개 만들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경우 핵실험 과정에 소모될 만큼의 분량이었다. 이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해서 북한의 핵능력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사한 문제는 그 이후에도 반복됐다. 제네바합의 붕괴 이후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의지는 더 강고해졌다. 북한은 2003년 NPT 탈퇴를 공식화한 이후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핵무기 개발 사실도 인정했다. 검증이 더 어려운 우라늄 농축 기술을 이용한 핵물질 확보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유

이런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거부하고 6자회담을 통해 문제를 관리하고자 했다. 그 결과 2005년 9월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9.19 공동선언'에 6개국이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바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2006년 10월 북한이 최초의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에 비로소 북미가 양자회담을 통해 실행 방안에 합의하게 됐다. 이후 2008년까지 비핵화로 나아가기 위한 초기 조치가 실행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증의정서 채택 문제로 비핵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검증은 비핵화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북한은 이를 최종 단계에서 실행될 조치로 간주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핵이 거의 유일한 협상카드인데, 검증으로 자신의 핵 능력이 노출되면 카드의 효력이 떨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시설들이 선제 타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따라서 북한은 북미 수교 등 신뢰가 구축된 이후에만 검증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반면 미국은 검증을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 실행해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2008년 1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 역시 북미의 입장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이에 따라 6자회담 프로세스도 붕괴되었다.

마지막 협상이라고 할 수 있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 북한은 2017년 이후 유엔이 취한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대가로 영변 핵시설의 폐기와 검증을 제안했으나, 미국은 이에 대해 진지하게 협상하지 않고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진행한 단독회담과 만찬 소식을 28일자 1~2면에 사진과 함께 상세히 보도했다. 사진은 27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밝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는 모습. 2019.2.27 ⓒ 연합뉴스=로동신문

 
일부에서는 북한이 다른 협상안을 준비하지 않아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차로 하노이까지 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협상 타결 의지가 약했다고 볼 수는 없다. 협상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한밤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의 제안 내용을 설명한 것도 당시 북한의 협상 의지를 반증한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 시달리다가 내부의 협상 반대론을 수용해 협상 테이블을 일찍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봐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small deal is bad deal(작은 합의는 잘못된 합의이다)"이라는 수사처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당장 실현시키는 것 이외는 모두 나쁜 거래라는 논리가 지배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비핵화와는 거리가 먼 작은 일로 간주하는 주장인데, 북한 핵능력의 70~80%를 제거할 수 있다면 비핵화라는 측면에서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지난 비핵화 협상 과정을 보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100%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초기 제안은 100%에 가까웠고, 점차 낮아지기는 했지만 하노이에서는 70~80% 정도의 의지를 담은 제안을 한 바 있다. 이러한 제안을 최종적 비핵화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비핵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아니다.

왜 이런 접근법이 미국의 대북정책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지배했을까? 상당히 오랜 기간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과장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핵 능력을 낮게 평가하고 압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협상에 의해 비핵화가 진전될 경우 미국이 직면할 여러 딜레마, 예를 들어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의 역할 조정 등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접근법이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를 빌미로 동북아는 물론이고 서태평양 지역의 미사일 방어체계 등의 군사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가는 상황은 미국이 예상했거나 기대한 것이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내에서도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북한과의 핵군축 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핵무장 및 그에 따른 핵군비 경쟁과 핵군축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가?

아직 기회의 창은 열려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그때와 같은 제안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핵보유 및 핵능력 고도화 의지를 더 명확하게 밝혀왔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와 미국 바이든 정부는 억제를 강화하겠다는 접근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한반도 긴장이 크게 고조되고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증가할 것이다.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북 적대시 철회 요구와 한미의 비핵화 요구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과거 비핵화 협상 과정을 보면 조건이 마련된다면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에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2012년 개정된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기한 바 있지만, 2018년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과정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 동의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았다고 강조했지만, "그 어떤 극난한 환경에 처한다 해도 미국이 조성해놓은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형세하에서, 더욱이 핵 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수 없다"고 발언해 핵보유를 해야 하는 상황적 조건을 언급했다. 논리적으로는 이 조건이 변화하면 비핵화 논의를 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의 요구 조건이 크게 높아져서 입장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 가장 필요한 일은 북한의 7차 핵실험을 막기 위한 협상이다. 추가적 핵실험은 대화와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할수록 비핵화는 물론이고 북핵에 대한 억제도 더 어려워진다.

한때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추측도 적지 않았지만 당분간 기회의 창은 열려 있다. 11월부터 재개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에서 어떤 돌파구가 마련될지가 관건이다. 2023년 초에 예정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의 방중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없으면 미중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를 공약하거나 실행에 나서기 이전에라도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담대한 구상을 진정으로 담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접근은 현재 작동하기 어렵고 상황 악화를 막지 못할 것이다.

제재 완화와 한미연합군사훈련 방식의 조정 등을 묶어서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모라토리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제안을 해서 비핵화 추진을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가야 한다. 물론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상이 시작되는 것 자체가 북한이 비핵화로 복귀할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적대와 대립 관계를 완화하거나 해소하지 않고 역진이 어려운 지점을 통과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지만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다면 비핵화를 통해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접근법이 아니라 상호위협 감소와 평화적 관계의 구축을 접근법으로 택해야 한다. 그래야 비핵화 과정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역진이 어려운 지점을 통과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핵무장과 핵군축 협상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이자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이남주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정치를 전공하며 한반도 평화 관련 연구와 활동도 하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실행위원으로 있다. 또한 계간 <창작과비평> 주간을 맡고 있다. 저서로 <중국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중국 국가전략의 변화와 한중 관계에 대한 함의>(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 <한반도 비핵화는 가능한가? - 비핵화 협상의 쟁점과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