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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문화'에 대해 들어봤는가? 네이버 시사상식 사전에 따르면,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을 지칭하는 용어다. 태움이란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꽤 오랜 시간 간호 문화는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소위 '군기' 잡힌 분위기가 유지됐다.

여기 태움 문화에 지쳐 외국행을 택한 한 간호사가 있다. 그 주인공은 글쓴이와 사촌지간인 김민지(가명)씨다. 민지씨는 2019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킹 칼리드 공항'에 도착한 이후 3년을 그곳에 머물렀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시작했던 민지씨의 '사우디 간호사 체험기'는 어땠을까?

그 경험을 예비 간호사, 현직자들에게 공유하고자 11월 20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야경과 시내 모습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야경과 시내 모습
ⓒ 김민지(가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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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취업은 어떻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사우디로 가기 위한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준비할까? 우선 경력이 요구된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사우디에 취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학사 이상의 학력과 3년 이상의 경력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다.

대학 졸업 후 3년의 이상의 경력이 쌓이면 코사솔루션이라는 에이전시에 등록할 수 있다. 코사솔루션(KOSA SOLUTION)은 중동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에이전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기관으로부터 의료 인력 지원을 요청받고, 의료전문 인력(간호사, 의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을 모집한다. 에이전시에 등록된 의료진을 4개월간 교육(직무 영어 교육, 영어 실무 회화, 문화 소양 교육 등)한 후 기관의 산하 병원에 취업시킨다.

취업 조건은 사이트에 기재되어 있다. 현재 등록된 조건 내용은 학사 이상의 학력, 3년 이상의 경력, 6개월간 경력 공백이 없는 자, 기초 영어 소양(MNGHA 자체 시험 요구), 2년 이상 근무 가능자 등이다(병원에 따라 조건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요구하는 조건만을 충족하면 사우디에 갈 수 있는 걸까? 민지씨에게 포트폴리오 준비할 때 필요한 실질적인 팁을 요청했다. 
 
해외 기업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곳, 아바야를 착용하지 않고 이용한다
▲ Al Nakhla Residential Resort  해외 기업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곳, 아바야를 착용하지 않고 이용한다
ⓒ 김민지(가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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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에 취업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내용이 다를 것 같아요. 
"한국에서 쌓은 경력이 중요해요. 저 같은 경우는 수술실에서 일했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사우디에서도 수술실에 취업했어요. 결국 한국에서의 경력이 관건이죠. 포트폴리오는 사우디에 취업하고 싶은 병원 홈페이지를 참고 하면 좋아요. 어떤 수술이 많은 병원인지 파악해서 그걸 토대로 강점을 어필하세요. 이런 질병이나 질환을 많이 다뤄봤다라든지 이런 의료 장비를 다뤄봤다라든지 등의 내용으로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TO는 많이 나는 편이니 가고 싶은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기회를 포착하기를 추가로 조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서류 합격을 한 후엔 화상 면접을 보게 된다.

- 면접을 잘 보기 위한 팁을 공유하자면?
"1분 내 자기소개는 필수로 준비하세요. 면접에선 주로 포트폴리오 기반으로 상세하게 질문을 해요. 어떤 환자 경험이 있는지, 어떤 수술을 해봤는지 경력에 맞춰 자세히 물어봐요. 지식과 경험에 대한 어필을 하세요. 그리고 면접을 부서장(수간호사)이 직접 인터뷰해요. 응급 상황 대처 능력, 환자 혹은 동료와의 갈등 대처 방법도 물어봤어요. 대답은 병원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정답은 없으니 사전에 잘 파악해 보면 좋아요. 제 경우는 상급자에게 숨기지 않고 보고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 맞춰서 대답했어요."
 
절벽 위에서 절경을 즐길 수 있다.
▲ 엣지 오브더 월드 투어 절벽 위에서 절경을 즐길 수 있다.
ⓒ 김민지(가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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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를 택한 이유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사실은 미국 간호사를 먼저 준비했었고 시험도 패스한 상태였어요. 그 시기에 간호사 친구를 통해 코사솔루션 에이전시에 대해 알게 됐어요. 미국에 가는 것보다 금전적 부담이 적더라고요. 비행기 값, 거주지 지원 등 혜택이 많았고 비자 진행도 미국에 비해 빠르거든요. 그래서 사우디에 먼저 취업해 스스로 글로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 선경험을 하고 미국으로의 취업을 결정하기로 판단했죠. 

문화적인 부담에 대해선... 솔직히 사우디에 대한 편견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미 현지에 한인 분들이 잘 살고 계시는데 나라고 못 할 게 있나?'라고 생각했어요. 또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취업했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죠."

- 한국과 비교해서 사우디 간호 생활의 장점은 뭔가요?
"한국 간호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결심한 이유는 태움 문화와 업무 강도 때문이었어요. 태움 문화로 일할 때 인격모독적인 일이 많았어요. 들어가기 싫은 수술은 신입에게 미루는 등 총알받이로 쓰이는 일도 많았죠.

게다가 신입에게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어요. 짧은 교육기간을 거치고 바로 투입됐고, 2-3개월마다 과가 계속 바뀌었어요. 익숙해지기 전에 새로운 걸 계속 배워야 했던 거죠. 그렇게 1,2년은 계속 욕먹으면서 초짜로 일한 것 같아요. 시스템이 이런 식이면 간호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오버 타임도 심했어요. 주말에는 '온콜' 때문에 늘 대기 중이었어요."

온콜은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의료진이 신속하게 병원에 복귀해 진료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서 대기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실상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네 번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간호업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에 반해, 사우디의 병동 문화는 사뭇 다르다고 그녀는 전했다.

"사우디는 인력 부족으로 외국에서 간호사를 뽑기 때문에 대우가 좋아요. 기숙사 제공, 밖에 나가서 살 경우 렌트비, 교통비, 수도 전기세 등 지원이 많아요. 사우디 병동엔 텃세 정도는 있지만 태움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고 느꼈어요. 

거기다 인력도 충분했죠. 인력이 충분하니 병동 분위기가 한국과 비교해서 훨씬 친절할 수밖에 없었죠. 신입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잦은 과 변동이 없어 수술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일했던 병원은 한국인이 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더라고요. 그래서 호기심도 많이 가져주고 잘 챙겨줬어요. 또 수평적인 문화로 정년퇴직하는 동료와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어요. 모른다고 화내는 일도 없었죠." 

 
 관광중 마주친 침몰한 배와 추락한 여객기
▲ 타북 지역  관광중 마주친 침몰한 배와 추락한 여객기
ⓒ 김민지(가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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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단점은 뭔가요?
"업무 속도가 한국에 비해 느긋해서 처음에 답답하게 느껴지기는 했어요.(웃음) 또 글로벌 업무환경이다 보니 인종차별이 없진 않았죠. 제 앞에서 눈을 찢는 행동을 하기도 했어요. 나쁜 의도 없이 무지해서 하는 경우도 있어서 제가 인종차별적인 행동이라고 하지 말라고 당부했죠.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니 조심하긴 했어요. 또 특정 국가 출신 간호사들은 급여가 훨씬 높거든요. 그런 부분에서도 차별을 느꼈고요. 가장 힘든 건 언어적 장벽이었어요. 다국적 간호사가 있는 글로벌한 업무 환경이라 악센트가 서로 너무 달랐어요. 그래도 경력이 있으니 눈치로 알아먹었어요(웃음).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튜브를 통한 다국적 영어 억양에 대한 노출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 사우디 병동 복장은 어떤가요?
"병원에서는 아바야(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이 입는 전통 복식의 한 종류로,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복장)를 입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본인 신념에 따라 목폴라, 히잡 등을 착용해 신체를 가리기도 해요. 감염 문제가 있는 수술실 안에서는 잠시 팔을 걷고요."

- 남자 환자들도 여성 간호사가 간호하나? 혹은 불허하나?
"의료인들은 남녀 접촉에 대해 조금 더 자유롭지만, 본인 신념에 따라 거부해도 상관은 없어요. 법적으로 금지된 건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꺼려 하는 분위기라고 보는 게 맞아요. 여성이 남성을 간호하는 것보다, 남자가 여자를 간호하는 걸 꺼려하는 분위기죠"

- 기후가 한국과 다른데 어땠나요?
"한국과 비교해서 건조한 기후와 샌드스톰(모래폭풍)이 큰 특징이에요. 샌드스톰은 처음 겪어봐서 조금 놀랐었어요. 어떤 날은 눈을 뜰 수 없이 부는 모래바람 때문에 고글을 쓰고 출근 한 적도 있어요. 도시 한가운데에 거주했지만 도시 사면으로 사막이 있기 때문에 어딜 가든 모래바람이 있었어요. 집 청소를 해도 창문, 문틈을 통해 집에 모래가 들어왔어요."

- 이슬람문화로 인해 가장 불편했던 사례는?
"수영복은 몸 선을 드러내기 때문에 호텔 수영장을 아예 이용 못해요. (그걸) 당연시 여기기 때문에 시설 이용이 제한된다고 할인을 받지는 못해요. 2019년부터 외국인이 아바야에서 자유로워졌어요. 하지만 아직은 아바야 착용을 하지 않으면 곱지 않은 시선이 있긴 해요. 그래도 2018년부터 여성 운전면허증 발급이 허용되는 등 계속 바뀌는 추세예요.

또 술과 돼지고기가 금지됐잖아요. 가끔 바레인이라고 리야드에서 차 타고 4시간 걸리는 국가에서 먹고 오기도 했어요. 비행기 타고 한 시간 걸리는 두바이나 아부다비 등에 가서 먹기도 해요. 한 번은 친구가 입국 절차를 밟다가 알코올이 들어간 초콜릿을 뺏긴 일화도 있어요."
   
사우디 서부 타북지역을 관광중인 인터뷰이
 사우디 서부 타북지역을 관광중인 인터뷰이
ⓒ 김민지(가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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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일 해본 경험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우물안의 개구리를 벗어나니, 인생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어요"라며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일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전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져 살아남았으니 어디에서든 적응 잘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사우디는 전체적으로 한국에 비해 여유롭고 느긋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일을 재촉 하거나 그르치는 일이 생기면 사우디 동료들은 항상 말했다고 한다. "인샬라". 알라신의 뜻이라면. 즉, '신이 원하신다면'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바쁘디 바쁜 한국인에게 마음의 여유를 전파하고 싶다며, 마음이 급해질 땐 사우디에서 배운 '인샬라' 정신을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 기재되었습니다.


태그:#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취업, #사우디간호사, #해외취업, #코사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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