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난 어릴 적 이 노래 속 두꺼비가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쓰던 것을 새 것으로 다 바꿔주면, 자기는 남는 게 어디 있나. 난 바보 두꺼비가 되지 말아야지. 헌 것과 새 것을 정확히 구분하고,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커보니 '매번 새로운 것'을 구분하기란 아주 힘들었다. MZ세대의 유행은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그저 참이슬 빨간 뚜껑이면 OK지만, 우리에겐 술도 유행이었다. 스무살 초반에는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그 다음은 과일소주를, 또 한동안은 세계맥주 열풍… 이 사이에서 뜬금없이 막걸리를 외쳤다간 아저씨 소리를 듣기 일쑤다.

아재 문화인지도 몰랐는데
진로
 진로
ⓒ 진로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난 유독 '아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왠지 낡아보이고, 옛 것에 도태된 무언가들을 구분지어놓은 느낌이다. 주류 유행에 민감한 우리에게 최근에 큰 이슈가 있었다. 바로 파란 병의 '진로'.

순한 목넘김과 트렌디한 굿즈, 병 색상의 유니크함. 친구들과의 술약속. "처음처럼? 참이슬?"을 묻지도 않는다. 당연하게 진로를 시킨다. 술상 사진을 찍어 가족 대화방에 올리니, 아빠가 답한다. "어? 진로네."

20대 유행에 관심 없는 아빠가 신상 술을 알아본다니. 별 일이다. "아빠가 진로를 어떻게 알아?" 그가 답한다. "엥? 아빠 때 술이니까 당연히 알지." 난 놀란 눈으로 술병을 잡는다. 진짜다. SINCE 1924.

맙소사. MZ세대의 유행이자 트렌드의 선두인 진로가 알고보니 아재 술이었다니. 두꺼비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본다. 너, 중고신입이었어? 두꺼비는 헌 것을 새 것으로 완벽 위장해서 나타났다.
 
이디야신메뉴
 이디야신메뉴
ⓒ 정누리

관련사진보기

 
어리석은 게 아니라 타고난 장사꾼이다. 생각해보니 주변에 이런 위장술이 많았다. 커피숍에서 갑자기 '대쌍화시대'라며 쌍화차에 꿀호떡을 팔지 않나, 밀가루 업체인 줄도 몰랐던 '곰표'가 나쵸와 팝콘을 들고 오질 않나, 세련된 2022 F/W 로우라이즈의 원조가 엄마의 배바지질 않나. 게다가 우리들은 이제 안 먹던 국밥집까지 간다.

나이가 들어서 좋아진 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과거의 국밥집은 허름한 인테리어와 돼지잡내가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이젠 깨끗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진입장벽을 낮췄다. 난 나를 의심했었다. 나이가 들더니 아저씨 입맛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니다. 그들이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뉴트로' 시대다.

아재와 MZ세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엄마아빠와 속초에 있는 노래방을 간 기억이 난다. 아빠는 자꾸 모르는 노래만 부르고, 난 졸려서 꾸벅꾸벅 소파에 앉아 존다. 그러다 하나는 불러야겠다 싶어서 빅뱅의 '붉은 노을'을 예약했다.

난 초등학생이자 빅뱅 열성팬이었다. 마이크를 잡는데, 아빠가 신나게 따라 부른다. 아빠가 어떻게 알지? 알고 보니 원곡이 이문세였다. 우리는 그 다음 날 오고 가는 길에서 하루종일 함께 붉은 노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이쯤 되니, 허무함과 함께 이상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더 이상 새 것을 좇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제의 헌 것이 오늘 신선한 것이 되고, 오늘의 새 것이 내일의 익숙함이 된다. 짬뽕 시대다. 내가 진로를 택하고, 엄마가 과일소주를 택하고, 아빠가 세계맥주를 마시듯.

두꺼비는 새 집을 들고 깡총깡총 돌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웃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처음부터 내 것이었는데.

태그:#진로, #소주, #뉴트로, #레트로, #MZ세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