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30 10:54최종 업데이트 22.12.30 10:54
  • 본문듣기

일본 공명당 대표 접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2022.12.29 ⓒ 대통령실 제공

 
강제징용(강제동원) 문제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안부 메시지를 갖고 29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했다.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맞서 한·일 양국이 긴밀하게 안보 공조를 펴나가야 하며, 이와 함께 한일관계 현안이 조속히 해결되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했습니다"라고 전했다.


근래 들어 한·일 양국은 최대 현안인 '한·미·일 대북 공조'와 '식민지배 문제(강제징용·위안부)' 중에서 후자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16일 채택된 일본 안보문서인 <국가안전보장전략>에도 이 문제가 "2국 간의 제반 현안"으로 두루뭉술하게 표기돼 있다. 명칭을 제대로 부르기 힘들 정도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대통령실 브리핑에 나오는 "한일관계 현안"이 강제징용을 의미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대통령실은 '한일관계 현안'을 윤 대통령이 언급했다고만 했을 뿐, 야마구치 대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야마구치 대표는 준비된 입장을 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일본 TBS 방송이 운영하는 'TBS NEWS DIG'의 30일 자 기사인 '공명당 야마구치 대표 한국 대통령과 회담, 일·한의 연대 강화 방침 확인(公明党 山口代表が韓国大統領と会談 日韓で連携強化の方針確認)'에 따르면, 야마구치는 징용에 관해 대화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전체적으로 관계 개선이 진전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는 당의 입장을 전했다"고 답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한일관계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공명당이 맡겠다는 의사를 윤 대통령에게 표명했다는 것이다.

한일관계 AS하러 왔나

야마구치가 구체적 해법을 논의하고자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이에 관한 논의는 양국 정부 수반과 외교부 장관 및 외교부 국장급에서 이뤄지고 있다. 야마구치의 역할은 기시다 총리의 조력자이므로, 그가 윤 대통령에게 한 발언은 기시다 내각이 진행해온 한·일 협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기시다 총리나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과 똑같은 말을 하려고 한국까지 온 것 아닐 것이다. 자민당 정권의 방침을 존중하되, 자민당이 하기 힘든 공명당만의 역할을 모색하고자 왔다고 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가 이 민감한 시기에 안부 메시지를 주면서 공동여당 대표를 보낸 것은 자민당이 할 수 없는 일을 공명당이 해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시다 내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징용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거짓 주장을 자국의 '일관된 방침'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등이 사과하고 배상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방침을 존중하되 성의 표시만큼은 요구하겠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성의 표시 요구에서마저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26일 피해자 대리인단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및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입장문에 따르면, 최근에 외교부는 '한국 정부 산하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의 손해를 변제해주는 방안'을 피해자 측에 제안했다. 1965년에 다 끝났으므로 일본 기업을 관련시키지 말라는 일본 측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외교부는 피해자 측에 "한국 기업들의 재원으로 피해자에게 변제를 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 (피고 기업을 제외한)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나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을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문제를 마무리하고 피해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면, 그 뒤에 전범기업을 제외한 일본 기업들이 금전을 기부하거나 일본 정부가 유감 표명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먼저 마무리하면 일본이 성의 표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 윤 정부의 방침은 기시다 내각과 거의 일치해 있다. 구체적인 협의가 더 이상 필요 없는 단계에 임박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윤 정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일본 측의 요구대로 이 문제를 최종 봉합할 경우, 국민의 반발을 초래하고 한일관계가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기시다 내각은 윤 정부가 국민 여론에 구애받지 않고 강행해주기를 바라지만, 윤 정부로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밀어붙였다가 국민의 반발과 한일관계 악화를 초래한 박근혜 정부의 선례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공명당 대표가 방문한 핵심 목적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전체적으로 관계 개선이 진전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는 당의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윤 정부가 문제를 봉합한 이후 한일관계 악화를 막는 해결사 역할을 보증하는 것이 그의 방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당의 입장을 전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명당은 한국 정부가 징용 문제의 종료를 선언한 뒤에 한일관계 악화를 막는 역할을 자처하는 쪽으로 당론을 정리해두고 있다. 야마구치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한일관계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으니, 야마구치의 이번 방한은 '애프터 서비스'를 보증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명당은 자민당과 함께하기는 하지만 이미지가 크게 다른 정당이다. 일본 불교인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하는 이 정당은 평화정당이나 대중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공명당 홈페이지 역시 교육·육아·의료 등에 대한 당의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공명당은 역사 문제에서도 자민당과 결이 다르다. 일례로 2017년 하반기에 한국에서 '위안부 기림의 날' 지정이 추진되자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은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고 반발한 반면, 야마구치 대표는 그해 11월 26일 '이것은 한국 국내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창가학회나 남묘호렌게쿄라는 말이 익숙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공명당은 한국과도 인연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도 접견 때 이에 관한 말을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은) 공명당과 야마구치 대표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온 것을 평가하면서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브리핑했다.

윤 대통령은 야마구치와의 접견에서 강제징용과 관련해 "한일관계 현안이 조속히 해결되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이 발언 역시 공명당과 한국의 인연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공명당 아닌 자민당

지금처럼 한국 대통령이 한일관계와 관련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시기에 야마구치 대표가 한국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한국 대통령을 찾아오는 일이 이전에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내각이 위안부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2015년 10월 8일에도 야마구치 대표가 청와대 대문에 들어섰다. 야마구치는 아베의 친서를 들고 있었고, 7일 뒤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의향을 표시했다.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보도록 야마구치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 흐름이 이어지다가 그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됐다.

야마구치는 제6차 북한 핵실험 2개월 보름 뒤인 2017년 11월 23일에도 아베 친서를 들고 문재인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은 문화적으로 큰 은혜를 준 나라'라고 말하면서, 대북 압박을 위한 한·일 공조를 촉구하고 돌아갔다.

당시의 문재인 정부는 10월 말에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 기권하고 11월 6일에는 독자적인 대북제재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일견 모순돼 보였던 이 상황에서 야마구치 대표가 청와대를 찾아가 대북제재와 한·일 공조 쪽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유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민당 정권이 한국 정부에 대한 막판 설득으로 고심할 때마다 야마구치 대표가 한국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그는 자민당과 다른 이미지를 풍기며 공명당과 한국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가 놓고 간 메시지는 항상 자민당의 의중을 담은 것이었다.

야마구치는 이번에는 윤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방한했다. 윤 정부의 방식대로 강제징용 문제가 봉합될 경우 국민 반발로 한일관계가 악화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그는 공명당이 한일관계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대통령의 입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이제 끝났다'는 선언이 나오도록 하기 위한 일본 측의 공세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지금 상황이 공명당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마구치 대표의 보증을 믿었다가는 예측불허의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 최종 책임은 어디까지나 자민당 정권에 있다. 그 자민당이 하기 힘들어 야마구치에게 맡긴 것이다. 이는 문제 봉합 이후의 한일관계 파국을 막을 역량과 자신감이 자민당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