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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호숫가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 오창환
 
2023년 새해를 맞아 검은 토끼를 그려보려 하였으나, 아직 마땅한 대상을 못 찾았다. 그래서 대상을 바꿔 검은 거미를 그리려고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을 향했다. 그곳에는 루이스 브루즈와의 거미 <마망>이 있다(2021년 9월 설치).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 창업자이신 이병철 회장이 삼십여 년간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기 위해 1982년에 개관했다. 지금 이건희 컬렉션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그 집안의 미술품 사랑은 선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아호 호암(湖巖)은 호수처럼 맑은 물과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준엄함을 뜻한다.

호암미술관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시간당 300명이 예약가능한데, 예약을 하러 들어가니 시간당 예약자가 한두 명 밖에 없다. 전시장이 문을 열지 않고, 전통 정원 희원(熙園)만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암미술관은 벚꽃 피는 봄에도 사람이 많이 몰리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와 리노베이션으로 전시장을 오랫동안 운영하지 않았는데 올해 4월 김환기 회고전으로 전시를 다시 시작한다.
 
왼쪽 사진은 호암미술관 입구에 있는 돌호랑이상인데 해학적인 모습이 귀엽다. 오른쪽 시진. 겨울이 한창인 정원이지만 가지 끝에는 이미 봄이 와 있다. ⓒ 오창환
 
호암미술관은 월요일은 휴관이라 내가 간 3일이 올해 첫 개방이었다. 미술관은 예상대로 텅 비어 있었고 눈 덮인 희원을 내 앞마당처럼 누릴 수 있었다. 꽃이 만발한 정원도 아름답겠지만 눈 덮인 정원도 좋다. 희원은 한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서 마당 한가운데 사각형 연못을 파 놓았고 정자도 있다. 

희원 안에는 다양한 나무들을 심어 놓았고, 불상과 석탑, 석수와 동자상 등 다양한 석물을 배치해 놓았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이곳에 모여 있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밤에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이 석물들이 살아나 회의라도 할 것 같다.

희원을 지나서 미술관 입구로 가면 호수가 나오는데 루이스 브루즈와의 <마망>은 호수 가운데 섬에 위치해 있다. 섬과 연결된 작은 다리도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191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2010년 98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그녀의 집안은 가업으로 태피스트리를 수리하는 사업을 하였는데, 그녀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도와 그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공부하였는데,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미술로 방향을 바꾼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아내를 학대하고, 노골적으로 외도를 하고, 미술로 전공을 바꾼 그녀를 무시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트라우마가 되어 두고두고 그녀의 작품 속에 나타난다.

그녀에게 미술은 치유의 과정이었다. 돌아가시기 3년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예술은 내 자신의 정신분석학이자 나만의 공포와 두려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에 대해서 직시하고 알아야만 한다. 그런 고찰이 당신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GQ 2008.10.)

그녀는 1938년 미술평론가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40년대부터 조각에 몰두해서 1949년 첫 번째 조각 전시회를 한다. 그러나 그녀의 황금기는 뒤늦게 찾아왔다.

페미니스트들이 그녀의 작품을 주목하면서 그녀의 주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황금기는 거의 60대에 시작하여 71세였던 1982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여성 작가 최초로 회고전을 열었고, 88세였던 19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90을 넘어서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마망(Maman)>은 불어로 '엄마'라는 뜻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끊임없이 거미줄을 자아내고 모성애가 강한 거미를 보면서 엄마를 생각한 것이다. <마망>은 1999년 영국 테이트 모던 갤러리 개관에 맞춰 제작한 작품으로 현재는 캐나다, 미국, 일본, 카타르 등에 7의 에디션이 있고, 리움미술관 야외에 설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리움미술관에 <마망>이 있던 자리는 지금은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이 설치되어 있고 <마망>은 오랫동안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작년 가을 호암미술관 호숫가에 자리 잡았다.

기온은 낮았지만 햇볕에 의자를 펴고 앉으니 바람도 불지 않고 따뜻하다. 일기 예보를 보고 수채화 물감이 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럴 걱정은 없다.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서 그런지 얼굴에 열이 올라온다. 호숫가에도 사람이 없어 나 혼자만의 전용 호수다.

먼저 청동 조각인 거미 몸통과 여덟 개의 다리를 그리고 뒤에 있는 눈 내린 산을 그렸다. <마망>은 유명한 갤러리에서 소장 전시 중이라 모두 도심 한가운데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숲 속 호숫가에 풀어놓은 거미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참 장관이다.
 
눈덮인 산을 배경으로 한 <마망>.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오창환
 
그런데 펜스가 있어 50m 떨어져서 봐야 한다. 이렇게 큰 조각은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봐야 하며, 특히 <마망>은 아래에서 위를 보기도 하는데, 이런 작품 설치로는 50미터 밖에서 한쪽 면만 봐야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리움에 전시될 때에는 이 거미 말고 작은 아기 거미도 같이 있었다. 그래서 제목이 '엄마'가 된 것인데, 그 작은 거미는 또 어디로 갔는지.

지금이라도 관람객이 더 가까이 가서 작품을 볼 수 있게 전시를 바꾼다면, 더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 같다. 내게 <마망>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태그:#루이스부르주아, #마망,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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