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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국동테니스클럽에서 포즈를 취한 김성씨.
 여수 국동테니스클럽에서 포즈를 취한 김성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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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즐거움의 어머니이다"
 
위 글귀는 벤자민 디즈렐리(Benjamin Disraeli)가 주장한 말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밥을 먹고 직장에 출근해 매일 보는 동료들과 부대끼다 퇴근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을 산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아!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 지나간 시절의 기쁨을 되찾을 수는 없을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오늘은 어제와 다른 뭔가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무엇 때문에 삶의 자극을 잃어버렸을까? 일상탈출을 꿈꾸며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자연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나날이 늘어간다.

모든 일상이 시시해지고 시큰둥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방법은 변화이다. 할 수만 있다면 지겹도록 오랫동안 살고 있던 장소를 떠나 새로운 분위기에 취해보는 것도 괜찮다. 한 번도 만난적 없던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나태해진 삶의 방식을 바꾸고 내 안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보는 건 어떨까?

변화된 환경속에서 새로운 관심이며 취미를 개발할 수도 있다. 오래된 태도를 돌아보고 새로운 전망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음악이나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타인과 어울리며 동료의식을 느낄 수도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전진할 힘을 줄 수도 있고 내 영혼 속에 잠들어있던 본성을 되살려줄 수도 있다. 생각은 쉽지만 본격적으로 감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정년퇴임 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서울에서 35년간의 공직생활을 접고 여수에서 1년 살기에 나선 이가 있다. 벌써 7개월째 살고 있는 김성씨. 여수 국동항 인근 오피스텔에 자리를 잡고 국동테니스 클럽 동호인들과 어울리며 여수의 진면목을 맛보는 그를 만나 '1년 살기' 대상지로 여수를 택한 이유를 들었다.

만능 스포츠맨인 김성씨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테니스다. 서울 소재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 그룹에서는 최상위 그룹에 속한 그가 퇴근 후 동호인들과 라이트 켜진 테니스 경기장에서 운동하던 중 우연히 밤하늘에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보았다. "밤하늘에 왜 이렇게 벌레들이 많지?" 이상히 여겨 잠시 테니스를 멈추고 자세히 바라보니 벌레가 아니라 서울 밤하늘에 날아다니는 먼지였다.

"아니! 벌레인 줄 알았더니 먼지들이 이렇게 날아다니면 서울 공기가 얼마나 나쁘다는 건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 중 두 가지가 공기와 물인데….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집, 운동. 아! 지겹다. 이 생활을 벗어나 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은 없을까? 젊었을 적 패기는 사라져버리고 어느새 타성에 젖어버린 내 삶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고민 고민하던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은연 중에 암시했다. 퇴직하면 잠시라도 휴가를 가겠다는 아빠 생각을 지지해주던 딸이 동의해줬고 어렵사리 아내에게서 1년간의 허락을 받아냈다.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는 '1년살이' 대상지를 물색하기 위해 제주도, 남해, 동해안 등을 돌아다녔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특히 제주도는 관광지다 보니 한 달살기는 가능한데 1년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지를 검색하던 중 여수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여수 국동항 인근에 자리잡은 오피스텔이 눈에 들어왔다. 여수 국동항 인근 오피스텔을 대상지로 정한 후 자전거를 타고 국동항 인근을 돌아보니 2㎢ 정도에 걸쳐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여수 인근에서 바다낚시하는 김성씨 모습
 여수 인근에서 바다낚시하는 김성씨 모습
ⓒ 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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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가 고향인 그는 바다가 있고 낚시도 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여수 시내를 돌아보니 시가지가 깨끗하고 도시지만 시골 정취가 묻어났다. 특히 여수의 5월은 시가지의 아름다움을 흠뻑 맛볼 수 있는 계절이다.

여수 밤바다 야경, 해양공원 인근에서 벌어지는 버스킹 공연, 여수에서 승용차를 타고 나가면 한 시간이내에 유명관광지에 도달할 수 있다. 지리산 관광, 제주도 올레길에 버금가는 금오도 비렁길 탐방, 점점이 떠있는 365개의 섬들과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국동항 인근 오피스텔이 마음에 든 그는 서울에서 공직 생활하는 아내를 불러 함께 여수 인근을 돌아봤다. 아내가 "너무 좋다며 놀라더라고요" 아내의 동의를 얻어 오피스텔에 1년간 살기로 계약했다. 8평 방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관리비 10만 원이고 매월 35만 원의 월세를 낸다. 오피스텔에는 침대, TV, 인터넷, 유선방송 등 10가지 정도의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방에서 국동항을 내려다보면 1㎞쯤 바다 건너 경도가 보이고 27홀의 경도골프장도 보인다. 갈매기와 함께 바다를 오가는 배들과 낚시꾼들을 구경하다 초저녁 시가지를 바라보니 숙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테니스장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여수해양공원에서 열리는 버스킹 공연 모습은 멋진 볼거리 중 하나다.
 여수해양공원에서 열리는 버스킹 공연 모습은 멋진 볼거리 중 하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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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는 승용차타고 한 시간만 나가면 명승지를 만날 수 있다. 선소대교 야경 모습으로 여수밤바다 야경이 여수 해양공원에만 있는건 아니다.
 여수는 승용차타고 한 시간만 나가면 명승지를 만날 수 있다. 선소대교 야경 모습으로 여수밤바다 야경이 여수 해양공원에만 있는건 아니다.
ⓒ 강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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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귀는 데는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 그는 테니스 경기장을 찾아가 동호인들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테니스 시합을 했다. 필자가 김성씨를 만난 건 그와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부터다. 실력도 출중할 뿐만 아니라 회원들과 잘 어울리는 그는 단박에 클럽의 중심에 섰다. 동호인 클럽대항전에도 대표로 출전할 뿐만 아니라 겸손하고 예의 바른 그를 싫어할 회원들은 없없다.

서울에서는 테니스 코트가 부족해 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웠지만 테니스 라켓만 들고 오면 일주일 동안 공을 칠 수 있는 여수 국동테니스클럽에서 그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더군다나 화요일과 수요일 멤버들은 정년퇴직한 분들이 모여 운동을 한다.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 벌이는 시합은 치열하다.

8명의 화요일 수요일 테니스멤버들의 즐거움은 또 다른 데 있다.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 준비된 전기밥솥에 밥만 하고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테이블에 올리면 웬만한 식당 음식보다 맛있다.
  
국동테니스클럽 화요일 수요일 멤버들이 오전 테니스를 마치고 라커룸에서 식사 중이다. 회원 각자가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테이블에 올리면 웬만한 식당못지 않은 맛이 나온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담소는 덤이다.
 국동테니스클럽 화요일 수요일 멤버들이 오전 테니스를 마치고 라커룸에서 식사 중이다. 회원 각자가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테이블에 올리면 웬만한 식당못지 않은 맛이 나온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담소는 덤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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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점심 테이블에 오른 반찬을 세어보니 8가지다. 콩나물, 새우반찬, 갓김치, 닥대, 배추김치, 달래나물, 시금치, 닭발볶음, 김, 밴댕이젓갈, 배추쌈. 어디 이뿐인가? 식후에 먹는 뜨끈한 숭늉은 보너스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려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살아온 길이 다른 회원들의 무용담과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루한지 모른다.

코로나가 엄습한 세상에 함께 모여 밥해 먹고 커피를 마시며 사는 이야기를 하는 회원들은 퇴직 후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산다. 날씨 좋은 봄, 여름, 가을에는 가까운 인근 명승지를 찾아가 하루를 즐기는 이들.
  
여수 국동테니스회원들과 함께 명승지 관광에 나선 김성씨. 섬진강 대나무 숲에서 기념촬영했다.
 여수 국동테니스회원들과 함께 명승지 관광에 나선 김성씨. 섬진강 대나무 숲에서 기념촬영했다.
ⓒ 강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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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한 직장에 있다가 퇴직한 이들이 경험하는 공통점은 직장 동료나 이웃들로부터 멀어지는 상실감이다. 그런데 이들은 테니스란 공통분모를 통해 건강도 지키고 담소하며 사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서울에서는 테니스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거나 가까운 지인 몇 명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게 일반적 모습인데 사모님들이 마련해준 반찬이 너무 맛있기도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연말연시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크리스마스 전에 서울로 올라갔는데 너무 추워서 12월 30일날 아내와 함께 여수로 내려와버렸어요."
 
돌산의 유명한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부부가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찻잔은 설치미술작가 최병수 작품이다
 돌산의 유명한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부부가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찻잔은 설치미술작가 최병수 작품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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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적에는 불의를 보고 못 참았는데 지금부터는 순응하면서 살기로 했다"고 말한 그의 웃음소리가 여수 앞바다를 넘어 남해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여수에서 1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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