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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단 사건은 유독 바닷가에서 일어났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도를 펼쳐놓고 간첩단 발생지를 점찍어보면 해안선을 따라 주르륵 이어진다. 철책으로 막혀있는 북쪽보다는 해안이 간첩 활동에 적합할 것이다. 그렇기에 해안이나 섬에서 간첩단이 주로 발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해안이나 섬에서 발생했던 간첩사건의 상당수가 국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어부는 어선을 타고 물고기 떼를 쫓는다. GPS가 없던 과거 물고기를 쫓다 보면 간혹 북방한계선을 넘기도 했다. 북방한계선을 넘었다가 북한에 나포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북한에서 일정한 조사를 받고 다시 남한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고초를 겪고 돌아온 어부를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는 관리대상으로 삼고는 가족들까지 모두 감시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통해 곶감 빼먹듯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간첩단 사건으로 둔갑시키고는 했다. 울릉도나 삼척 간첩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안기부는 어부와 가족까지 엮어 수십 명 규모의 간첩단을 만들고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민주노총 압수수색, 기시감이 든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18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평화쉼터에 주차된 차량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제주서도 국보법 위반 관련 압수수색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18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평화쉼터에 주차된 차량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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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간첩단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 수많은 안기부의 간첩단 조작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간첩단은 과거와 조금은 다르다. 과거 안기부가 만들어낸 간첩단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소수가 활동하거나(울릉도, 삼척 간첩단) 자체적으로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인민혁명당 사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최근 윤석열 정부가 극도로 각을 세우고 있는 민주노총으로 이어졌다.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이석기의 내란·선동 사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을 잠시 차치해 둔다면, 이석기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의 해산까지 끌어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당시 통합진보당과 극렬한 각을 세우고 있었다. 사실 이석기의 내란·선동 사건은 당원들을 모아 놓고 유사시 비비탄 총을 개조해 국가주요시설을 공격하자는 강의를 하는 등 몽상가 수준의 행동에 불과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하였으니 정당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역시 이석기의 이른바 RO 조직과 통합진보당을 같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통합진보당이 이석기의 내란음모 사건을 옹호한 점이 문제되었을 뿐이다.

이번 간첩단 사건은 회계 문제에 이어 화물연대, 건설노조에 이르기까지 윤석열 정부의 계속된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 속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지난 18일 국정원과 경찰은 민주노총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민주노총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그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유 
 
18일 오전 국정원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 항의하는 민주노총 관계자들 18일 오전 국정원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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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양보해 민주노총 관계자 중 몇몇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민주노총 본부를 포함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은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 국정원은 대대적인 사찰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간첩단을 만들어냈다.

납북 어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얻은 정보가 안기부의 손에서 간첩 행위로 둔갑했다. 국정원이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한다면 어떤 정보를 어디까지 가져갈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정보가 어떻게 조작되어 새로운 간첩단으로 탄생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국가보안법이 다시 돌아오고, 역사책에서나 볼 줄 알았던 간첩단이 다시 등장하는 지금이 과연 과거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의 범위에 따라서만 압수수색이 가능하기에 이러한 걱정은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무작위로 압수한 증거 속에서 새로운 범죄를 찾아 또는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함께 대한민국 양대 노총이다. 윤석열 정부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단결권에 따라 결성된 민주노총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적대시하는 정부의 국정원과 경찰이 민주노총을 대대적 압수수색한다면 그것이 몇몇 관계자들의 국가보안법 혐의에 한정될 것이라 믿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정부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것과 같이 윤석열 정부 역시 간첩단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총을 와해시키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덧붙이는 글 | 김광민 기자는 현직 변호사이자 경기도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입니다.


태그:#민주노총, #간첩, #국가보안법, #김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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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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