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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부터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다. 2020년 10월 마스크 착용 의무화 이후 27개월 만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팬데믹) 종료 선언을 위한 조건, 시기, 방법 등을 논의하는 중이다. 바야흐로 코로나19의 긴 터널도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갈림길에서

고통의 시기에 '재난 자본주의'를 향유하며 탐욕을 채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재난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인류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캐나다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쇼크독트린 :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라는 책에서 자연재해, 대공황, 전쟁 등의 상황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행위를 '쇼크 독트린'이라고 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재난 자본주의'는 대중의 공포심을 이용해 기득권 지배체제를 확대 재생산한다.

미국의 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재난 상황 속 죽음에 근접한 경험이 공동체에 대해 오히려 다른 감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본다.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주먹밥'으로 대표되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난이 만들어 낸 디스토피아적 상황 속에서 인류의 상호부조와 이타주의 정신이 깨어난다는 것이다. 솔닛은 "재난은 파괴와 죽음의 절정인 동시에 시작이요 개방이다"라고 말한다.

'재난 자본주의'이건 '재난 유토피아'건 둘 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코로나 시기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어떤 선택을 해 왔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은 정부가 좋다? 도그마는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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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사피엔스 : 새로운 도약> 표지 .
ⓒ 인풀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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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달라진 세상의 지표로 삼아야 할 가치와 내용은 무엇일까. 책 <코로나 사피엔스 : 새로운 도약>에서 방향키를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 8인이 공동집필한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사회 경제 전반의 공유와 협력, 배려와 연대의 공동체적 감수성 회복을 역설한다.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가 사회적 가치, 공공적 가치, 생태적 가치에 대한 준엄한 경고"(23쪽)라며 "한국사회의 모습은 연대와 포용이 결여된 '사회가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 국가는 감염병으로부터 국민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불평등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에 속합니다." (33쪽)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는 현 위기를 IMF 경제 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소수의 승자가 독식하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도태되는 '압정형 사회'의 출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적 고정관념들이 대부분 깨져버렸다. 정부 개입은 적을수록 좋다는 도그마도 깨졌다"(49쪽)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그 핵심에는 '복지'가 있다"(61쪽)고 강조한다.

국가재정 지출이 복지를 향해야 하는 데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도 견해를 같이 한다. 홍 소장은 세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뉴딜'(New Deal)의 개념에 대해 "한국 정부가 뉴딜을 중장기적 수익률을 계산하고 뽑아낼 수 있는 금융사업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며 "사회적으로는 매우 절박하고 중요하지만 금융시장의 논리에서 보면 수익성이 낮아 소외되고 정체되어 있는 사회 각 계층과 분야에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본래 뉴딜의 의미"(92쪽)라고 설명한다.

뉴딜의 새로운 제안에는 '기본소득'도 포함된다. 최배근 건국대학교 교수는 "노동력이나 자본 투입의 증가를 통해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향후 성장은 생산성, 즉 혁신의 역량에 달려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는 복지를 넘어선 경제정책으로 기본소득에 접근해야 한다"(126쪽)고 주장한다.

퇴행하는 한국 사회,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저자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작은 정부'를 표방해왔다. 이는 2023년 정부 예산안에서 드러났다. 2023년 총예산 639조원 중 복지분야는 205조8천억원으로 5.6% 증가에 그쳤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10.4%)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7.5%), 박근혜 정부(7.7%)에 견주어도 낮은 수치다.

윤석열 정부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작은 정부'다. 동국대학교 이주하 교수가 '복지동향' 1월호에 쓴 '우리나라는 큰 정부인가?'라는 기고문에 따르면, 한국의 2020년 기준 GDP 대비 일반 정부 예산 비율은 8.76%로 OECD 평균인 18.45%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대표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 유형에 속한다. 2021년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표한 'OECD 주요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 현황'에 따르면, 한국은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2019년)이 12.2%로 OECD 평균인 20.0%에 훨씬 못 미친다. 

이처럼 지표만 놓고 봐도 대한민국을 큰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가깝다. 정부의 크기가 평균을 밑돌 정도로 이미 충분히 작은데도, 더 작은 정부로 가겠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국민의 시간과 정부의 시간이 따로 흘러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현실 인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은 잠깐 겪고 지나가는 감기와 같은 단순한 '교란' 차원의 위기 아닙니다. 자본주의 전체가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게 되는 변곡점이며, 그렇기에 '포스트 코로나'의 세상은 이전의 세상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냐' 혹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냐'의 두 가지 답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85쪽)
 
책을 덮으면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 시스템 자체를 뒤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 국면에서 감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대전환을 책임질 정부의 무능과 정치 역량의 부재가 아닐까. 재난이 일상이 되는 시대, 자본주의의 재편과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 대한민국 대표 석학 8인이 신인류의 지표를 제시하다

김누리, 장하준, 홍기빈, 최배근, 홍종호, 김준형, 김용섭, 이재갑 (지은이), 인플루엔셜(주)(2021)


태그:#코로나19, #코로나 사피엔스, #작은 정부, #팬데믹, #공공사회복지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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