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월 24일 서울 시내 주택단지의 가스계량기.
 1월 24일 서울 시내 주택단지의 가스계량기.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도시가스요금 상승 이후 여기저기서 관리비로 앓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주변에도 자녀가 있는 지인이 꽤 많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집은 절실히 알겠지만, 여름이야 선풍기로 버틴다고 해도 겨울 냉골바닥에 유치원생을 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위 극복은 절약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물론 몇천 원이라도 줄이려 가스비 절약 팁을 공유하기도 한다. 단열 에어캡을 창에 붙여라, 짧게 집 비울 때는 보일러 외출 모드로 하지 마라, 패딩 조끼나 내복을 껴 입어라 등 십수 년 전부터 구전돼 오던 짠돌이 생존법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우리 집도 가격 인상의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가스요금이 오를 것이라는 예고를 접하고서 나름 적극적 대비를 했음에도 앞자리 숫자가 바뀐 가스비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첫 감정은 일단 쓰라림이었다. 당장 예상치 못한 목돈 지출에 생활비 계획을 다시 세워야 했다. 그러나 두 번째 감정은 분노라기보다 막막함에 가까웠다. 태풍에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기후 변화로 북극의 찬 바람을 가둬두던 '극 소용돌이'가 약해졌다. 여름 바다에 누적된 에너지가 태풍이 돼 몰아치듯, 북극 한파가 내려오지 못하게 막아주던 바람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극지방은 온난화 진행 속도가 지구의 다른 부분보다 빠르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이 변화에 직접적으로 책임지지 않는다. 마치 러시안룰렛처럼 북극 한파가 북반구 어딘가로 밀려 내려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이 나도, 기후위기가 엄습해도
 
실리콘 팩에 뜨거운 물을 부어 사용하는 보온 물주머니. 핫팩 대용으로 애용 중이다.
 실리콘 팩에 뜨거운 물을 부어 사용하는 보온 물주머니. 핫팩 대용으로 애용 중이다.
ⓒ 이준수

관련사진보기

 
북극 기후 변화와 별개로 우리나라만의 사정도 있다. 정부에서 해명하듯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여파로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했던 것도, 미리 대규모 계약을 맺느라 현재의 낮은 천연가스 가격을 실시간 반영하지 못한 것도 일면 이해는 된다. 한국가스공사의 적자가 누적돼 경영정상화가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추후에 전쟁이 끝나서 가스요금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다고 해도 이상 기후로 인한 겨울 한파는 반복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난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다지 춥지 않은 겨울,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스요금은 과거의 유산이 될 확률이 높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의 장기화를 예측하지 못했듯 여러 변수로 인해 석유와 가스 같은 화석 연료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겨울에 난 절실히 느꼈다. 이웃 국가 시민들이 추위에 떤다고 해서 헐값에 연료를 넘기는 산유국은 없다. 오히려 가스관을 걸어 잠그고 '당신들 겨울 목숨이 내 손에 달려있다'며 은근히 협박하기 바쁘다.

에너지 자원 대부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자원이 무기가 되는 시대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에너지 분야에 문외한인 일반 시민으로서 내가 느끼는 불안이 그리 유별난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매 겨울 한파와 난방비를 걱정해야 한다면 봉급생활자 입장에서는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고민이다. 

내게는 외국의 분쟁이나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내려오는 것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렇지만 과도하게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난방 시스템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가스보일러 대신 전기장판을 까는 집도 있지만, 결국 우리나라의 전기는 해외에서 수입한 연료를 전기로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혹자는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로 지어서 전력을 끌어올려 해결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원전폐기물 처리 문제를 유예하는 무책임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예측 범위를 넘어선 쓰나미 한 방에 원자력 발전소가 무너졌다. 국토가 일본보다 좁은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한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처럼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들이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국력을 쏟아붓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와 비전이 있는 것이다.

태양열은 묵묵히 일했다
 
아내의 부모님 댁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발전 장비.
 아내의 부모님 댁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발전 장비.
ⓒ 이준수

관련사진보기

 
얼어붙는 추위를 경험한 이후 두려운 마음에 개인이나 작은 그룹 단위의 자구책을 생각해봤다.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양가 부모님은 모두 주택에 산다. 아랫집, 윗집에서 보일러를 틀면 어느 정도 열 효과를 함께 보는 아파트와 달리 지은 지 30년이 넘은 주택은 열효율이 떨어진다. 외풍도 심하고, 노후화로 인해 곳곳에서 열이 새어나간다. 

기름보일러를 썼던 아내의 부모님은 치솟는 등윳값에 대응하기 위해 두 가지 선택을 했다. 도시가스가 보급되지 않은 지역이라 가스보일러는 불가능했으므로 2000년대 초반에 연탄보일러로 바꿨다. 연탄실에 매캐한 냄새가 배고, 수시로 불씨를 살펴봐야 해서 불편했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다섯 식구의 난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같은 가격에 훨씬 효과적으로 추위에 대처가 가능했다. 연탄 또한 화석 연료이기는 하지만 한국 내에서 난방 연료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서민 가정에서는 주머니 부담 없이 현실적으로 겨울을 나는 방법이었다. 

연탄보일러의 효과를 본 뒤 아내의 부모님은 전기요금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하여 2019년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실비 180만 원가량을 내고 옥상에 3kW 규격의 태양광 발전 장비를 설치했다. 월평균 450kW 내외의 전력이 생산됐는데, 냉장고 두 대와 에어컨, 온열 침대를 제한 없이 사용하고도 남는 양이었다.

도시가스 공급이 되지 않는 주택가에서 태양열 발전은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당연한 말이지만 태양열 발전기는 서부텍사스유의 가격이 치솟아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중에도 묵묵히 전기를 생산했다. 적은 액수의 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예민해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재생 에너지는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최근에는 주차장과 건물 옥상 등 도시의 유휴부지에 태양광 보급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환경운동연합은 2022년 8월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주차장의 태양광 잠재량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준에 부합하는 수도권 지역 282개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할 경우, 2020년 기준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정하는 국내 전기차 총 전력수요 300GWh보다 1.4배 많은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재생에너지의 힘

나도 아파트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 장비를 설치하고자 알아봤으나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우리 아파트의 경우 잦은 강풍에 따른 안전상의 위험, 외부에서 봤을 때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커뮤니티 내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컸다. 다음에 여건이 마련되면 작은 태양광 패널을 달아서 전기를 만들어 볼 계획이다. 

정부는 2분기 이후 전기요금과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스값이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버틸 수 있을까. 정치적 불안과 갈등은 항시 존재하는 것이고, 자원의 무기화 흐름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북극의 온난화로 인한 '극 소용돌이' 약화 현상 또한 반복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외부 요인에 무관한 재생 에너지원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OPEC의 눈치를 보며 기름값을 체크하지 않고, 산유국의 전쟁에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으려면 바람과 햇빛 같은 에너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효율이 낮아 보이겠지만, 대규모 투자가 집중되면 기술은 차차 혁신되리라는 것이 비전문가인 나의 바람이다. 발열 내의에 수면양말을 신고서 글을 쓰다 보니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뚜렷해진다.

태그:#태양열, #재생에너지, #북극한파, #도시가스, #기후위기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