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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음료는 사회적 윤활제로 여겨져 왔다.
 알코올 음료는 사회적 윤활제로 여겨져 왔다.
ⓒ 스톡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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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서 술은 기분을 좋게 하는 흥분제 또는 성공과 여유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우리는 눈을 감고도 파티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고, 와인 잔을 짤랑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은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다. 

알코올이 행복 또는 적어도 기분 전환을 담보한다는 이미지에 학습된 우리는 퇴근길에 으레 캔맥주를 사기도 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와인 한두 병쯤은 가볍게 비우기도 한다. 하지만 알코올이 정말 우리에게 행복만 줄까? 

술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

'술은 싫어하는데 술 자리는 좋아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는 진짜 그냥 술을 좋아했다. 특히 위스키를 좋아했는데, 초콜릿만 있다면 위스키는 몇 잔이고 마셨다. 스트레스가 쌓여 녹초가 된 날 밤 위스키를 마시면, 내 마음은 가본 적도 없는 스코틀랜드 언덕 위를 달리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위스키로 유명한 하이랜드 지방의 풀냄새가 코끝을 간질일 정도였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나는 더 많이 더 자주 마시고 싶어지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렸다. 마치 밑 빠진 독에 위스키를 계속 붓고 있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도무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무력감이 함께 찾아왔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을 찾았지만, 술은 대부분 다른 수많은 문제를 낳았다. 나와 주변 사람들을 돌볼 시간이 없었고, 가장 근본적으로 수면의 질이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술 때문이라고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처음에는 자꾸 인생의 다른 부분을 고치려 했다. 우선 운동을 시작했다. 식단을 바꾸고 전 국민의 숙원 사업인 체중 감량에도 도전했다. 명상도 하고 책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별의 별걸 다 해봐도 우울감과 무력감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에 나는 술은 해결책이 아니라 대부분 문제의 근원이며 내가 술을 마시면서 돈·시간·에너지, 종국엔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잔혹한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될 기회를 매일 밤 위스키와 함께 섞어 마셔버리고 있었다. 

알코올의 위험은 한 방울부터

그동안은 학계에서도 기준량 이하는 괜찮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건 당연히 안 좋지만 레드 와인 한잔 정도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식의 헷갈리는 권고 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주 소량의 알코올 섭취도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1월 "건강에 안전한 적정 알코올 섭취량은 없다. 와인이든 맥주든 사이더든 모든 알코올의 위험은 한 방울부터 시작되며, 나이·성별·인종·주량·생활 습관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좋지 않다.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술은 마실수록 건강에 나쁘며, 더 적게 마실수록 좋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WHO에 따르면 매년 300만 명이 알코올의 유해한 사용으로 사망한다. 매년 인천광역시 인구만큼의 사람이 음주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특히 20~39세 젊은 층에서는 음주가 죽음이나 장애의 주요 원인이며, 총사망의 13.5%가 음주 때문으로 나타났다.

또한 알코올성 질환은 과음하는 사람에게만 발병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2022년 발표된 연구는 '하루에 알코올음료를 두 잔만 마셔도 5년이면 지나면 간이 손상될 수 있으며, 하루 네 잔을 마시는 사람 중 90%가 알코올성 지방간 증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알코올이 주는 기쁨은 내일의 행복을 대출해서 쓰는 것
우리는 숙취와 수면부족이라는 이자까지 내야 한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 외에도 알코올 섭취는 개인과 사회 전체에 상당한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유발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음주로 인한 경험 조사 대상자 중 16% 이상이 음주 후 좌절감을 느끼거나 후회한 경험이 있으며, 21% 이상은 술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음주가 일상 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준 적은 없지만 나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100을 할 수 있는데 80밖에 못하는 것이 음주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생활 습관 때문인 것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으로 사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게 있을까. 

내가 술을 마시며 치러야 했던 또 다른 잔혹한 대가는 바로 잠을 깊이 잘 수 없었다는 것. 흔히 술을 마셔야 잠이 잘 온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술은 진정 효과를 내며 졸음과 노곤함을 불러올 수 있지만, 수면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며 수면 시간을 줄인다고 밝혀져 있다.

더불어 음주를 하는 사람들은 불면증 증상과 수면 무호흡을 경험한다. 수면재단은 2022년 연구에서 알코올과 수면에 관한 연구에서 남성은 2잔 이상, 여성은 단 1잔만 마셔도 수면의 질이 39.2%나 낮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음주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접근 필요... 더 적게 마시고, 더 많이 살자

미국 국립 알코올 남용 및 중독 연구소 소장인 조지 쿱은 지난 23일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가볍게 술을 마시는 사람도 음주량을 약간이라도 줄이면 큰 도움이 된다"며 "절주 후 기분이 나아졌다면 당신의 몸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미 ​​건강과 웰빙 트렌드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논알코올 음료를 점점 선호하고 있다. 이미 미국 로스엔젤레스나 뉴욕 등 해외 대도시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폭넓은 선택지를 갖춘 주점이 늘어나고 있으며, 국내에도 논알코올 또는 저알코올 맥주가 판매량이 늘어나는 등 MZ 세대의 알코올 섭취량이 기성 세대보다 더 줄어드는 경향도 포착되고 있다. 

그렇다면 완전히 술을 끊는 게 답일까?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 국립 물질 연구소 소장 팀 니아미 박사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알코올을 덜 마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라고 말한다. 

내가 난생처음 알코올과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주변 술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네가 술을 끊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주 가던 바 사장님들은 "어디 아픈 건 아니죠?"라고 물으며 혼자 와서 조용히 객단가 높은 바틀만 마시던 단골의 '단주'를 아쉬워했다. 술을 모든 감정의 해결책으로 생각했던 내로라하는 애주가였던 터다. 

하지만 술을 못 마셔서 제일 아쉬운 건 사실 나였다. 단주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곧 신들의 분노를 사 아무리 목이 마르고 배고파도 눈앞에 있는 과일과 물을 마실 수 없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탄탈로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을 깰 수 있는 자만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알코올 섭취를 중단 할 생각이다. 

우선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음주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단기간이라도 술을 아예 끊는 단주를 해보는 것이다. 과음하는 경향이 있다면 일정 기간 알코올을 일절 섭취하지 않으면서 알코올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세 번째는 알코올 총섭취량을 줄이는 방법 고안하는 것이다. 아예 끊기가 어렵다면, 저알콜 음료를 마시는 등 총 알코올 섭취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제는 음주의 잔혹한 대가 그 보이지 않는 가격표를 읽고 헤어질 결심을 할 때다. 

태그:#음주, #금주, #단주, #알코올중독, #적정음주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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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 단주요정. 내로라하는 애주가였다가 첫 100일 단주에 성공한 후, 긍정적 효과에 탄복하여 단주요정이 되었다. 모두가 적게 마시고 더 충만한 삶을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사람들의 단주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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