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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제목의 서적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칭찬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말했던 이 책에서 당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칭찬에 인색했었는지를 엿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살짝 뒤집어 생각해 보면 고래의 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 교육에서도 학생들에게 칭찬이 인색했던 적이 있었다. 

교사는 늘 근엄하고 진지해야 하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지던 교실 수업은 어느새 시대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학생 중심 수업이라는 형태로 느리지만 그래도 바꾸려는 꾸준한 노력이 있어 '혁신 학교' 또는 '학점제 운영의 교육과정'이라는 고민의 흔적이 남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러한 흔적은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의 학습 형태다. 앞으로 학생을 중심으로 한 여러 교육과정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여전히 수능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쟁 중심의 서열 나누기 교수학습평가를 지향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영재로 키워준다는 AI 학습지 광고가 하루에도 수십 번 볼 수 있게되고, 언론마저도 '인재'라는 단어가 서슴지 않고 쓰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무분별하게 인재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하고 비판적 시각을 갖추지 못한 채 수용하면 그것이 상식이 되고 정상이 되는 것 아닐까.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시절 우리 교육은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가 있었다. 자원과 국토가 한정되어 있던 시기에 물질적 수준 높이기 위한 명목으로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었던 그 이름이 포장지만 바뀐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기가 아닐지 고민해보자.

엊그제 영상매체를 통해 8, 90년대 유행했던 '양심 냉장고'라는 제목의 프로를 봤다.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 그 프로는 90% 이상 정지선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의식 성장을 도왔다. 

과연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차별을 가르치지 않을까? 장애인인권교육, 학교 폭력 예방 교육 등을 통해 차별금지와 다양성의 이해를 가르치고 있음에도 학교를 하교하는 우리 아이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학부모의 인식이 많이 성장하였다고 하여도 인문계 고3 학생을 방과 후에 대체로 어디로 보내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대학의 서열화에 따른 학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은 어디까지일까? 

경쟁과 차별이 정말 뗄 수 없는 관계일까? 이제 겨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우리에게 과연 인식의 성장을 도울 만한 것은 교육에 있고 교육을 통해 차별을 없애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거듭나야 하는데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여전히 예전 경제 성장의 화려함만을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함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다. 내실을 다지는 일에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고로 경쟁이라는 단어와 인재라는 단어는 겉으로 나타나고 보이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화려함에만 노출되고 자존감이나 자의식의 성장에는 무방비로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 과연 고래의 선택일지 아니면 그것을 보고자 하는 자의 선택일지 두고 보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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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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