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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산재 사망 유가족들이다. 왼쪽은 고 이한빛씨의 아버지 이용관씨, 오른쪽은 고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
 3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산재 사망 유가족들이다. 왼쪽은 고 이한빛씨의 아버지 이용관씨, 오른쪽은 고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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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산업통상자원부 쪽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자가) 최소한 얼마까지 죽어도 되는지 노동부에서 알려달라'고. 이런 인식들이 정부부처에 깔려 있습니다."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의 발언에 토론회장 곳곳에서 헛웃음과 탄식이 나왔다. 3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다. 서 차장은 "저희가 그 자리에서 굉장히 항의를 했던 기억이 있다"라며 "경제와 재정을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발상들이 정부부처에는 있는 것 같은데, 이것들부터 깨져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을 때 사업주는 물론 원청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법 적용 첫 해였던 지난해 1년간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611건, 사망자는 644명으로 전년 대비 사망사고는 54건, 사망자는 39명 감소했다. 하지만 경영계 쪽에선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었던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했을 때 지난해 사망자가 256명으로 전년(248명)보다 오히려 8명 늘었다며 이 법의 실효성을 문제 삼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선 정부와 검찰이 지난 1년간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집행하지도 않았는데 실효성 논란부터 불거진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건 총 229건 중 고용노동부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34건뿐이었고, 이중 검찰이 실제 기소한 것은 11건에 불과했다. 사업주가 처벌된 것은 '0'건이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법이 시행된 지 불과 1년을 맞은 시점에서 법의 효과를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고, 제정된 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지도 않으면서 이 법이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다혜 변호사 역시 "법의 명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법 적용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지난 2016년 CJ E&M에서 일하다 숨진 고 이한빛 PD(당시 28세)의 아버지 이용관씨도 "중대재해법에 의한 처벌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고, 논란만 하다 1년이 지나갔다"라며 "검찰과 노동부는 수사와 기소의 주체로서 법 집행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중대재해법이 모호? 그럼 배임죄는?... 판례 쌓이면 구체화되는 것"
  
3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3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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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중대재해법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 "그렇게 따지면 중대재해법보다 배임죄가 더 모호하지 않나"라며 "법 적용 범위는 판례가 쌓이면서 구체화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권 교수는 "중대재해법의 조문 구조와 다른 법령과의 정합성 등을 살펴보면 '경영 책임자 등'과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개념이 모호한 것도 아니다"라며 "형벌 법규가 법원의 해석에 의한 의미 보충 가능성조차 배제돼야 할 정도로 명확해야 한다면, 그간 수많은 형법각론 체계서들은 왜 출판된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며 최근 법령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정부여당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권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행정법이 아니다. 사고가 나기 전엔 개입할 방법이 없고, 사람이 죽고 나서야 수사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는 법"이라며 "좀 솔직해지자. 중대재해처벌법은 예방을 위한 법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예방법은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개별 사업장에 대해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사전에 검사하는 것은 산안법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죽었을 때 누군가 책임을 지라고, 종국적인 마지막 수단으로서 '처벌'을 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하는 일이죠.

애당초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생겼습니까. '김용균법', 즉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된 이후에도 산안법상 안전보건의무위반치사죄로 기소된 법인 사업주에 대해 선고된 벌금액이 평균 692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 가족이 죽었는데 거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벌금이 700만 원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응보 감정'이 해결되겠습니까?

근대국가에서 '복수'를 하지 말라는 이유가 뭡니까? 개인의 응보 감정을 국가가 해결해준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형사사법체계가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들이 수긍할 만한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법을 신뢰하겠어요? 이거야말로 근대국가의 사회계약이 파탄 나는 거죠."


산재 유가족의 쓴소리 "노동부, 대대적으로 바꾸십시오"
  
3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3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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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1월 '처벌'이 아닌 '자율 예방 규율'을 중심으로 중대재해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1월 11일엔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출범시켰다. 노동계에선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처벌 규정 완화 등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 법령 '개악'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토론회 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가 '답정너' TF"라는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의 비판에 대해 강검윤 고용노동부 중대재해감독과 과장은 "저희가 답을 정해놓고 한다는 얘기는 굉장히 잘못된 얘기"라며 "정정해달라"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강 과장은 "근로감독관이 안 보인다고들 하시는데, 80%의 산업 안전 근로감독관들이 예방 사업에서 일하고 있다"라며 "감독관들은 중대 산업재해 수사를 위해 굉장히 힘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강 과장의 발언이 끝나자, 토론회장에 있던 유족 중에서 곧장 쓴소리가 나왔다. 지난 2019년 부산 경동건설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고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는 "고용노동부 과장님께서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 1년 동안 애쓰고 고생하셨다고 하지만, 그간 고용노동부는 단 1%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저희 유가족들은 노동부가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기업의 편에 있다는 것을 너무 뼈저리게 느낍니다. 5년 전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건 때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고용노동부 청장(부산고용노동청 동부지청장)이 구속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지난해 현대산업개발 광주 붕괴 참사 때도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고용노동부가 감독하러 간다고 미리 전화를 해준다는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을 겁니다."

정씨는 "경총이나 기업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정말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제발 제 의견이 고용노동부 전체 직원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했다.

2시간여 진행된 중대재해법 토론회가 끝났을 무렵, 서울 서초구의 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50대 하청 노동자가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롯데건설이 시공하던 공사장에서 일하던 이 노동자는 건물 철거 작업 도중 천장을 받치고 있던 지지대가 쓰러지면서 사망했다.

태그:#중대재해처벌법, #산재, #사망, #중대재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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