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가.
 
제임스 캐머런의 역작 <아바타> 시리즈는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우주 개척의 시대, 에너지 고갈 상태에 놓인 인간들이 행성 판도라를 찾아 자원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시리즈 첫 편이 시작됐다. 2009년 나온 이 시리즈는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 분)가 인간을 등지고 판도라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편에 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과 나비 족의 첫 대전은 나비족의 승리로 돌아간다. 인간들은 물러나고 설리는 나비족, 그 중에서도 숲 종족의 영웅 '투르크 막토'가 된다. 위험에 맞서 의를 향해 몸을 던지는 한 인간과 이익을 위해 약자를 짓밟는 또 다른 인간들의 대결은 마침내 행성을 수호하는 거대한 의지의 도움으로 나비족과 투르크 막토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이다.
 
캐머런은 관객이 인간이 아닌 나비족을 자연스레 응원하도록 이끈다. 관객이 시선을 같이 하는 건 나비족과 그들에게 동참한 인간 개체, 즉 제이크 설리다. 위험에 맞서 제 터전과 가족을 지키려는 이들이 나비족이며, 그들의 짓밟힘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이가 설리다. 관객들은 이들에게 크게 공감하게 되는데, 공감이란 나 아닌 남에게서 내가 아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기에 놀라울 밖에 없다. 인간인 관객이 나비족과 설리에게서 인간다운 무엇을 발견한다는 뜻이니까.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간과 체제, 그 오랜 대립을 새로운 땅에서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선 것은 누구인가. 판도라 행성을 개발하는 기업과 그를 뒷받침하는 법제도와 자본이 아닌가. 현재도 지구와 인류를 지배하는 작동원리이고, 어쩌면 <아바타> 시리즈가 그리는 수십 년 후를 지배할 체제이기도 하다. 현 인류가 채택한 체계와 그것이 겨냥한 것 사이에서 <아바타>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아바타>의 이 같은 선택은 속편 <아바타: 물의 길>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투르크 막토의 활약 이후 쫓겨났던 인간은 한층 진보한 기술력을 갖고 돌아와 판도라에 정착한 상태다. 숲 속 깊이 나아간 함선은 게릴라 전법으로 치고 빠지는 나비족에게 격추되기 일쑤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의 길>은 제목처럼 숲이 아닌 물, 그중에서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점차 영역을 넓혀오는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르크 막토는 투르크 막토이길 포기한다.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내려두고 가족과 함께 멀리 떠나기로 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노리는 건 숲이나 숲 종족이 아닌 저 자신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로부터 제이크 설리와 그 가족들이 저 멀리 바다부족에게 의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옮겨간다.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복수와 가족, 식상하다 vs 공감간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복수극이다. 첫 편에서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조 샐다나 분)에게 목숨을 잃은 쿼리치 대령(스티브 랭 분)이 다시 판도라 행성으로 돌아온다. 물론 죽은 그가 그대로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다. 복제된 정신이 아바타의 몸을 입고 돌아온 것이다.
 
이야기는 아바타로 화한 쿼리치 대령과 그의 부대원들이 제이크 설리와 그 가족을 쫓는 이야기다. 개인적 복수에다 판도라 식민지화에 가장 큰 장애인 투르크 막토의 제거작업이기도 하니 사활을 걸 밖에 없는 것이다. 설리 가족이 숲을 떠나 바닷가에 정착하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들과 그로부터 얻은 지혜,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싸움까지가 제임스 캐머런의 완숙한 솜씨 아래 빚어졌다.
 
제임스 캐머런의 오랜 비판자들은, 또 언제나 새로움만이 유일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들은 <물의 길>에 비판을 퍼붓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쫓고 쫓기는 추적극이며, 자연을 지키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 약자를 도우려는 자와 착취하려는 자의 이분구도가 이미 수천 년은 이어왔을 만큼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더해 남성과 여성의 선명한 구분, 성별에 따라 캐릭터가 나누어 가진 역할 등을 불편해 하기도 한다. 이는 아주 오랫동안 제임스 캐머런이 받아왔던 비판과 맥을 같이 하는데, 성별 외에도 부모와 자식,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 등 전통적인 가치를 그가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세계적 흥행 비결은 기술력만이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역시 그로부터 출발한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식,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등의 구분이 제 쓰임을 갖고 있는 탓이다. 제가 낳은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지키려는 어머니의 태도와 가족이란 울타리 안을 수호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저 편견이며 고정관념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영화가 강조한 오래된 가치들은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공감을 사는 주제이자 마땅히 장려돼야 할 미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이야기에서 들추어보자면 굳이 비판할 이유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전통적인 구도며 구분에 미덕을 심어낸 결정은 <물의 길>이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역대급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면 모든 인간에겐 인간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제약들이 있고, 또 그를 통해 다른 인간과 공감이며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불쑥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바로 그 같은 성질이 인간을 거듭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자본주의며 분업화의 폐해와 맞서 우리를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보여주듯.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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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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