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7 07:06최종 업데이트 23.06.2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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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계 각국의 노년층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노년의 삶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각국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노인의 경험을 사회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오마이뉴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전 세계 노년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2017년 7월 29일, 그린란드 누크에 도착한 핀란드 쇄빙선 MSV 노르딕카에 핀란드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2018 세계 행복 보고서'가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부패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156개국의 행복도 순위를 매긴 결과 핀란드가 살기 좋은 나라 순위 1위에 올랐다. ⓒ 연합뉴스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계 최고의 사회보장과 복지 시스템이 작동하는 북유럽, 그중에서도 핀란드는 국제연합(UN)이 발표하는 세계 행복지수 1위를 6년 연속 차지해 왔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서 노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떠할까. 고령화 추세는 핀란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021년 핀란드 인구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년 인구는 전체의 22.89%였고 2050년에는 28% 수준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핀란드에서 은퇴하기 전 큰 가게 종업원으로 일했던 부인 세이야(82)씨와 조그만 사업을 했던 남편 타우노(85)씨의 노후생활을 들여다봤다.


타우노씨는 20년 넘게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할머니의 간호를 받으며 함께 살던 할아버지의 상태가 5년 전부터 많이 악화되면서 할머니가 집에서 손수 돌보기가 어려워졌다. 2년 전 타우노씨는 사회복지사의 상담과 담당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공립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현재는 세이야씨만 홀로 집에서 살고 있다.

남편이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부인이 직접 돌봤기 때문에 핀란드 정부로부터 매월 가족 돌봄 보상금으로 세전 1700유로(238만 원), 세후 1450유로(203만 원)와 여러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물론 환자나 장애인의 증상 정도에 따라 돌봄 보상금이 달라진다. 타우노씨는 파킨슨병을 오래 앓은 중증 환자인 데다 늘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등 정도가 심해 지원 한도 최대치를 받았다. 시마다 다르지만 가족 돌봄 최저 보상금은 2023년 기준 월 439.70유로(62만 원)다.

타우노씨가 공립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세이야씨가 받던 가정 돌봄 정부 지원금이 끊겼다. 그리고 현재 타우노씨 연금의 85%가 공립요양원 생활비로 들어간다. 남편을 집에서 돌보던 기간에 세이야씨는 일반 직장인처럼 1년에 최장 한 달씩 휴가를 내 가정 돌봄에서 벗어나 쉴 수 있었고 남편은 시에서 정해준 임시 거주 요양소에 머물렀다.

핀란드 노인 대부분은 가능하면 오랫동안 집에서 노후를 보내길 희망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 권장하고 지원한다. 그러나 돌봐줄 가족이 없거나 홀로 자립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공립요양원 입주를 신청할 수 있다.

핀란드의 의료 보건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할 책임을 진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세금과 지방세로 재원을 충당한다. 공립요양원 입소자는 소득과 관계 없이 본인 연금의 85%를 요양원 거주비로 매달 지급해야 한다. 세이야씨는 남편 타오노씨의 연금 중 85%를 요양원에 지급하고 남은 15%로 세이야씨의 의복과 약품, 기타 위생 물품 등을 구입한다.

공립요양원은 사립요양원 비용의 절반 정도
 

부인 세이야씨(왼쪽)와 남편 타우노씨. ⓒ 권보미


정부 요양 시설에서는 개인이 내는 비용과 상관없이 동등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따라서 평소 받는 연금이 적은 사람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금액이 커지는 셈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요양원과 별도로 사립요양원이 있다. 전액 자부담으로 한 달에 3000유로(420만 원)에서 많게는 6000유로(840만 원)까지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24시간 집중 케어가 필요한 경우 한 달 평균 5000유로(700만 원) 이상 청구된다.

핀란드에는 현재 공립요양원 955개와 사립요양원 1034개가 운영 중이다. 공립요양원은 사립요양원 비용의 절반 정도다. 비용이 낮은 대신 공립요양원에 들어가려면 의사 소견서가 있어야 하고 보호자가 거주하는 곳과 가까운 요양원에 가려면 길게는 1년씩 기다리기도 한다. 

또한 핀란드에는 집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편의를 돕는 '서비스 바우처'(빨벨루 세뗄리)도 있다. 의료 보건기관에서 사용하거나 외부 인력의 가정 방문 도움을 받을 때 쓸 수 있는 무료 바우처를 제공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지원한다. 

간호조무사나 복지사의 방문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들이 이를 많이 이용한다. 서비스 바우처는 신청인의 소득과 연금, 매달 지출경비 등을 계산해 받는 것으로 개인마다 금액에 차이가 있다.

간호조무사의 가정 방문은 하루 최대 4차례 가능한데 주로 10~20분씩 방문해 약 지급이나 식사, 화장실 가는 것 등을 돕는다. 생활이 어려운 연금 수령자는 시에서 무료로 식사도 배달해 준다.

세이야씨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요양원에 있는 타오노씨를 거의 매일 방문한다. 보통 두 명의 간호조무사가 와서 휠체어에 의존하는 남편을 돌본다.

남편 타우노씨의 하루는 침대에서 아침 식사인 죽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후 세수, 면도, 화장실 가기, TV 시청, 점심 식사, 산책, 낮잠, 간식, 저녁 식사로 이어진다. 여러 약을 복용한뒤 잠시 TV를 보다가 잠드는 것이 일상이다. 필요하면 수시로 간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치매나 중증 환자의 경우 24시간 간호사와 의사가 상주하는 특수 요양원이나 병원에 배정되어 집중 관리를 받기도 한다.

휠체어에 앉은 타오노씨와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음식을 떠먹이는 일은 주로 세이야씨 몫이다. 그녀가 매일 요양원을 찾는 이유가 있다. 요양원 직원 숫자가 적은데 할 일은 많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남편 산책이나 밥 먹이기 등을 돕는다고 한다.

공립 요양원 시설이나 서비스에 불만이 없는지 묻자 세이야씨는 "전반적으로는 만족하고 불만이 없다"면서도 "물리치료사가 와서 그룹 재활치료는 해주지만 개인 치료 시간이 없어 아쉽다"면서 "한 달에 최소 6번 정도 남편에게 개인 재활치료 시간이 제공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자부담으로 물리치료사를 이용하면 시간당 100유로(14만 원)를 내야 하기에 부담이 크다. 사립에 비해 공립 요양원은 필수적인 사항만 제공되고 서비스 선택과 폭이 제한적이다. 지난 4월 1일 개정된 핀란드 사회보건법에 따르면 요양 보건 시설의 노인 1인당 최소 직원은 0.65명, 오는 12월부터는 0.7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세이야씨 인생에 있어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나 자신의 건강과 가족 손주들이다. 매일 매일 의미 있게 잘 살아가는 것, 죽기 전까지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 게 꿈이다. 그 이유는 남편 타우노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가지 않기를, 그를 끝까지 잘 돌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공립병원과 사립병원의 의료 수준 차이는 크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생활하는 시니까씨 ⓒ 권보미


두 번째로 만난 시니까(74)씨는 슈퍼마켓에서 은퇴하고 남편과 살았으나 16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집에서 살고 있다. 노인성 간질로 오래 고생한 남편은 처음엔 시니까씨의 돌봄으로 집에서 지내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 집중 관리를 받았다.

남편과 사별 후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 중심가 아파트에서 현재의 변두리 원룸 아파트로 옮겨 살고 있다. 연금 수령액은 월 세전 1750유로(245만 원)로 은퇴 직전 소득의 약 70% 수준이다.

핀란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노인 평균 연금 수령액은 월 1845유로(259만 원)다. 시마다 가족 구성원 수마다 다르지만 성인 기준 1인 월급이나 연금이 2119유로(297만 원)를 넘지 않으면 누구나 거주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

시니까씨는 건강하기 때문에 연금과 거주지원금 외 다른 지원금이나 서비스를 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필요시엔 병원이나 사회복지 관청에 가서 상담 후 사회복지사나 간호사의 가정 방문 돌봄이나 무료 서비스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

은퇴 후 받는 연금이나 가정방문 돌봄 서비스 등 사회보장이 잘 되어있는 핀란드에서도 젊어서 노후 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지 묻자 시니까씨의 대답은 "물론 준비해야 한다"였다.

핀란드에선 대부분의 의료 보건 서비스를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공립병원에서 신속한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 고관절이나 무릎 정형수술 등을 공립병원에서 받으려면 경우에 따라 1년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사립병원을 찾는 경우가 생긴다. 사립병원 이용비가 10배 이상 월등히 높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있어야 이용이 가능하다. 일반적 수준의 공립병원과 사립병원의 의료 수준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니까씨에게 핀란드에서 은퇴 후 노년기를 살아가는 노인으로서의 삶은 어떠한지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핀란드에서는 본인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집에서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살고 싶지만, 나중에 요양원에 들어갈 것을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는다. 만나서 교류할 친구들이 아직 많고 현재 건강해 좋아하는 예술, 스포츠 취미 활동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홀로 사는 고립된 노인들의 외로움은 종종 들어봐서 안타깝다."

사회 전체가 노인을 돌본다
 

핀란드는 꿀뚜리 꿈미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노인들의 외로움을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픽사베이


사회적 문제인 노인들의 외로움과 소득 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화생활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핀란드에서는 '꿀뚜리 꿈미'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꿀뚜리 꿈미'는 문화생활을 함께 하는 친구, 후원자라는 뜻이다.

먼저 이 프로그램이 후원하는 전시나 영화, 연극, 공연, 스포츠 경기 등 문화생활을 같이 할 친구의 나이와 성별을 정해 신청한다. 이후 맺어진 '꿀뚜리 꿈미'와 함께 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고 함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꿀뚜리 꿈미'는 혼자사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사회적 교류와 상호작용을 촉진시킬 수 있는 문화체험 공유 프로그램이다.

2013년 지방의 문화단체에서 고안한 아이디어로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현재는 많은 지역 지자체에서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노인뿐 아니라 이제는 남녀노소는 물론 핀란드 사회가 익숙지 않은 이민자들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알루에 할린또 비라스토(지역 행정감시 기관)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띠나 스트란트씨와 선임 책임자 빠이비 바이니오씨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 내용은 이렇다.

"알루에 할린또 비라스토는 핀란드의 8개 정부 부처를 대표하는 지역 행정 기관으로 정부를 대신해 여러 공공 및 민간기관이 적법한 운영을 하는지 현장조사와 감시, 감독을 한다. 평소 시민들의 불만도 접수한다. 조사 결과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시정조치, 개선명령 심지어는 즉각 운영 중단 명령도 내릴 수 있다.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시 경찰과 함께 사태를 조사하기도 한다."

가장 많은 시민 불만 사항은 요양원 직원 숫자 부족으로 인한 돌봄 서비스의 양과 질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사립 요양원의 직원 부족 등으로 인한 불만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공립 요양원에서도 이에 대한 불만들이 접수되고 있다. 이 분야의 낮은 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한 구직 기피, 요양원 서비스의 양과 질의 저하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세계 최고의 행복 국가'라는 핀란드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화와 질병, 사별로 인해 겪는 노년기의 고독과 요양원 노동력 부족 문제는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핀란드에서는 병든 노인을 가족이 홀로 짊어지지 않고 사회보장 시스템 안에서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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