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게> 메인 포스터

<힙하게> 메인 포스터 ⓒ JTBC

 
엉덩이는 만지지만, 성추행은 아니다? JTBC 드라마 <힙하게>는 이 아이러니한 주장을 '맥락'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방영 전부터 예고편 속 여자 주인공의 사이코메트리(초능력)가 사실상 성추행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김석윤 감독은 "사실 맥락이 중요하다"라며 "앞뒤 맥락이 없는 상태로 보면 다른 느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전혀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 방송을 보시면 해소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드라마는 까봐야 안다지만, <힙하게>를 향한 우려는 방영 후에도 여전하다. 엉덩이를 만지면 기억이 읽히는 예분(한지민 분)의 사이코메트리로 범죄 사건을 해결한다는 <힙하게>, 왜 하필 남의 몸을, 그것도 '엉덩이'여야 하는가.
 
엉덩이를 만지는 여자? 그러나 현실은
 
 <힙하게> 화면 갈무리

<힙하게> 화면 갈무리 ⓒ JTBC

 
<힙하게> 속 예분에게 처음부터 초능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소 진료에 나섰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에 맞아 '엉덩이 사이코메트리'가 생겼다. 진료하는 반려동물의 엉덩이를 만지면, 마치 속마음을 읽은 듯한 명의가 따로 없다. 이 능력, 사람에게도 통할까? 고민하던 예분은 버스에서 소매치기범을 발견한다.
 
이유 없이 만지면 범죄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소매치기범. 그래서 예분은 '신이 주신 기회'라며 그의 엉덩이를 만진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어쩔 수 없이 스친 것처럼 지분거리다 형사 장열(이민기 분)에게 잡힌다. 경찰 조사에서 사죄하기는커녕, 예분은 오해라고 억울해한다. 피해자가 소매치기범이었다고 말하자, 장열은 "소매치기면 엉덩이 만져도 돼?"라고 묻는다.

그러자 예분은 '증거가 있냐'고 따지며 증거 없이 사람을 잡아두는 거냐고 화낸다. 그의 행동이 담긴 영상을 몰래 삭제하려다 걸리고 풀려날 때는 장열에게 "당신, 후회할 거예요"라고 협박한다. 이후에도 예분은 남의 엉덩이를 여러 번 만진다. 넘어지는 장열을 도와주려다가 그의 엉덩이를 덥석 잡고, 남자 후배에게 담요를 덮어주려다 엉덩이를 스치게 된다.

드라마는 타인의 신체를 만지는 역할로 '여성'을 배치하였지만, 현실은 반대다. 성추행 피해자는 대다수 여성이다. 그들은 일상 공간이나 일터에서 피해를 겪고 위계 관계에서 비롯된 범죄인 경우, 신고조차 어렵다. 또한 '증거 없다'는 예분의 말처럼 명백히 타인의 신체를 만졌지만, '증거 불충분' 혹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은 사례도 빈번하다.

현실과 대비되는 <힙하게>의 캐릭터 설정은 남의 엉덩이를 만지는 사이코메트리가 현실 속 성추행을 연상하지 않기 위한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여성들이 겪는 현실은 분명하며, 성별을 전환해도 타인의 신체를 만지는 행위는 어떤 맥락이든 결코 유쾌할 수 없다. 기존 사이코메트리 수사물과 차별점은 분명하나, 현실 속 여성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아쉽다.
  
어딘가 삐끗대는 <힙하게>의 여성들
 
 <힙하게> 화면 갈무리

<힙하게> 화면 갈무리 ⓒ JTBC

 
<힙하게>에는 예분 외에도 그의 친구인 '옥희', 이모인 '현옥' 등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캐릭터마다 확연한 개성을 선보이며 서사를 이끌지만, 그가 묘사되는 방식은 어딘가 삐끗댄다. 현옥은 30년 전, 강력반 반장 종묵과 치명적인 사랑으로 얽혔다. 종묵의 사연을 아는 동료는 한 문장으로 현옥을 요약한다.

"첫사랑을 독한 X을 만났대요."

한편, 옥희는 학창 시절 소위 말하는 '일진'이었다. 그 시절, 함께 놀았던 후배들과는 아직도 끈끈한데 화려했던 과거만큼 현재의 모습도 심상치 않다. 누구는 신분 세탁해서 시집을 잘 갔고, 누구는 '남자 후리는 건' 여전해서 위자료를 두둑하게 챙겼다. 옥희 또한 여전히 문제아 취급 받는다.

제각기 다른 <힙하게>의 여성들은 모두 여성 혐오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실하게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현옥은 종묵 앞에선 '독한 X'이 되고 옥희는 남동생에게 '미친 X'이라 불린다. 또한 옥희의 친구들은 혼자의 힘이 아닌 결혼과 이혼을 오가며 남성의 신분과 재산을 통해 살아가는 인물로 표현된다. 남성 캐릭터에 의한 부적절한 호칭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답습한 캐릭터 설정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힙하게>의 아쉬운 여성 캐릭터 묘사는 핵심 서사인 범죄 사건에서도 마찬가지. 2화에서 예분이 수의학과 후배 종혁의 엉덩이를 만지자, 그가 여성을 폭행하고 끝내 살해한 듯한 기억이 읽혀진다. 해당 장면은 가해자와 제3자의 시선을 오가며 피해 여성이 애원하고, 축 늘어진 채 끌려가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이와 같은 적나라한 폭력 묘사는 되려 피해 여성의 고통을 압도할 뿐이다.
 
<힙하게>가 찾아야 할 맥락
 
 <힙하게> 스틸컷

<힙하게> 스틸컷 ⓒ JTBC

 
봉예분이란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힙하게>인 만큼 새로운 여성 서사를 기대하게 되지만, 여성을 향한 혐오적 시각을 답습하고 피해 여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등 아쉬운 점이 있다. 그래도 남은 회차 동안 <힙하게>가 들려줄 이야기가 남았다.

그 전에, <힙하게>는 시청자가 '엉덩이 사이코메트리'를 합리적으로 납득할 맥락을 찾아야 한다. 예분의 사랑스러움도,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사이코메트리의 이점도, 결국 '타인의 엉덩이를 만지는 건 성추행'이란 비판을 상쇄할 수는 없다.
JTBC 힙하게 한지민 이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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