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7 15:03최종 업데이트 23.08.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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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모호하게 처리된 부분이 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는 대목이다.

현행 헌법 전문(서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3·1운동의 결과로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이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다.


물론 그때부터 대한민국이 온전한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 나가라'며 독립을 선언한 이 시점을 대한민국의 첫 페이지로 보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3·1운동의 정신으로 자주독립과 민주공화를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 정부가 수립된 것은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1789년 4월 30일이지만, 독립선언문이 선포된 1776년 7월 4일이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인정된다. 1776년에 '영국 나가라'며 독립을 선언해놓고도 1789년에 미국이 건국됐다고 처리하면, 독립선언 이후 13년간에도 영국의 지배를 받아들였음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1776년 미국 건국론은 이런 모순을 제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정부수립 시점이 아닌 독립선포 시점을 건국의 첫해로 인정하는 것은 이처럼 대한민국 밖에서도 인정되는 관행이다.

윤 대통령 의중 전해준 박민식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 참석해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듯 우리 헌법 전문에서 1919년 건국을 못 박았고, 이것이 국제적 관행과도 부합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건국'이 아닌 '건국운동'이라는 표현을 던짐으로써 대한민국 건국 연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헌법은 분명히 1919년 독립운동으로 건국이 이뤄졌다고 선포했는데도, 윤 대통령은 그것이 건국이 아닌 건국운동이었다고 발언했다.

1919년에 건국이 완성되지 않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런 발언은 '1948년 정부수립 때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극우세력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지지는 아니다. 1948년에 건국이 완성됐다고 딱 부러지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독립운동을 '건국'과 연관시킨 것은 1919년 건국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 역시 완전한 지지는 아니다. 건국이 이뤄졌다고 하지 않고, 건국운동을 벌인 것이라고 표현했다. 헌법에 명확히 규정된 사안을 놓고 대통령이 이처럼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모호한 발언을 던졌다.

1919년이라는 건지 1948년이라는 건지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그런 발언에는 윤석열 정권의 의중이 담겨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의 16일 발언에서 그것이 잘 드러났다.

광복절 다음날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편집인 포럼'에 초청된 박민식 장관은 "대통령의 건국에 관한 인식은 '과정'이라는 것"이라며 "건국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냐?"라는 말을 던졌다. 건국은 과정이므로 어느 하루를 건국 시점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헌법 전문을 무시한 채, '건국은 과정'이므로 특정 시점을 못박을 수 없다는 자의적인 헌법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박 장관은 뒤이어 "1919년 건국론, 1948년 건국론이 그렇게 생산적이냐, 상당히 소모적인 것 아니냐?"라는 말로 윤 대통령의 또 다른 생각을 전달했다. 이 논쟁이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라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런 발언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있다. 윤석열 정권은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 윤 정권이 '1948년에 건국됐다'고 명확히 선언하지 못하고 '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라며 건국 시점을 모호하게 처리했다.

이는 윤 정권이 1919년 건국을 부정할 만한 명쾌한 논리를 아직까지 개발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집권 15개월이 지난 시점에 와서 '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라는 모호한 명제를 내놓은 것은 헌법 전문에 못 박혀 있는 1919년 건국의 대명제를 깨는 게 쉽지 않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헌법을 바꾼다고 될 일도 아니다. 3·1운동이 대한민국의 법적 기초라는 점은 역대 헌법에서 항상 인정됐다. 정부수립 당시에 나온 1948년 헌법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선언했고, 이 문구는 1952년·1954년 헌법 및 1960년 6월 및 11월 헌법에 똑같이 계승됐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나온 1963년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라고 선언했다. 이 표현은 1969년·1980년 헌법에 계승됐다. 1972년 헌법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처럼 역대 헌법은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됐거나 3·1운동에 기초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는 건국 원년에 관한 논쟁을 차단하는 의미를 갖는다. 1919년 이외의 다른 시점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주장이 나오지 못하게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토대가 1919년에 있음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3·1운동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헌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개헌이 아니라 제헌이다. 실질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행위다. 윤석열 정권이 그런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윤석열민국'을 세우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1919년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끊는 것은 그처럼 힘든 일이다. 1919년 건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집권 1년이 넘도록 이를 부정하는 논리를 개발하지 못한 것은 윤석열 정권이 이 문제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위험한 '건국' 논쟁 부추기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에 대한 대결 의지를 천명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반국가세력과 등치시킨 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라며 이들에게 속거나 굴복하지 말자고 추동했다.

이렇게 윤석열 정권은 반국가세력과의 한판 대결을 8·15 경축사에서 선포했다. 그런 윤석열 정권이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언제인지 아직도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국가의 출발점이 언제인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반국가세력과 싸우겠다고 나서는 것은 윤석열 정권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대결을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위험한 대목이 있다. 윤석열 정권이 1919년과 1948년 중 어느 하나를 자신 있게 택하지 못하면서도, '건국운동'이라는 표현으로 이 논쟁의 확산만큼은 은근히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윤 정권은 반국가세력에 대한 경고문을 경축사에 집어넣어 친윤석열세력과 반국가세력의 대결을 조장했다. 이런 윤석열 정권이 논쟁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애매한 절충설을 선택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모호한 메시지를 던져 논쟁을 한층 조장할 목적에서 그렇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건국절은 대한민국의 근간과 관련되는 쟁점이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지키고자 한다면 이런 논쟁은 가급적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서슴없이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는가를 의심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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