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7 14:57최종 업데이트 23.09.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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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채 상병의 안장식이 지난 7월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는 가운데 채 상병 어머니가 아들 영정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다. 채 상병은 지난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 연합뉴스

 
지난 16일, 해병대사령부 공보정훈실은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 상병의 이름을 언론 보도 시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대신 '호우피해 복구 시 순직 해병', '호우피해 복구 시 순직한 고 채 상병', '고 채 상병'으로 표기해달라고 했다. 아들의 이름이 계속 보도되어 채 상병 부모님의 정신적 고통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고 현장에서 나라에 구명조끼 살 돈이 없었냐는 채 상병 아버지의 황망한 절규가 잊히지 않는다. 많은 국민들이 자기 일처럼 아파했고, 우리 사회가 더할 수 있는 최선의 예우를 갖춰 채 상병을 떠나보냈다. 어쩌면 그게 최선이라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영결식이 끝나고 유가족은 함께 아파해 준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군에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주문을 남겼다.


사랑하는 자식을 떠나보낸 마음이 무엇으로 위로될 수 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만났던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의 마음 언저리엔 늘 비슷한 매듭이 놓여있었다. '원인을 알고 싶다'

죽음의 원인을 알아야 생이별을 현실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일수록 더욱 그렇다. 무엇을 애도해야 하며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알아야 슬픔도 온전한 슬픔이 된다. 원인이 규명되지 않으면 아픔도, 분노도, 답답함도 늘 사고가 일어났던 그날을 맴돌 뿐이다.

국가에는 유가족이 지옥을 살게 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하여 수사기관은 세상의 모든 죽음에 원인을 찾아 남긴다. 병원에서 의사가 사인을 남기듯, 병원 밖에서 벌어진 황망한 죽음마다 수사기관이 알아낸 사인이 따라붙는다. 그 절차를 '변사사건수사'라고 한다.

사고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아무 것도 된 게 없다. 사고가 났던 날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나질 못했다. 대신 변사사건 수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온 나라의 뉴스를 잠식하고 있다. 알고 싶었던 것은 사고의 원인인데 사고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원인을 찾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던 수사, 그런데...
 

고(故) 채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군 검찰단 출석이 예정됐던 박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7월 28일 금요일 오후, 해병대수사단은 채 상병 유가족을 만나 수사 결과를 설명했다. 군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군사경찰은 규정상 수사 중간에 한 번, 끝날 때 한 번 유가족을 대상으로 수사설명회를 하게 되어있다. 사고 발생 상황, 원인, 그리고 원인의 책임 소재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설명을 들은 유가족이 더 알아봐 주길 바라는 부분이 있으면 추가 수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견이 없으면 수사는 종결 수순을 밟는다.

수사가 종결되면 군사경찰은 민간경찰에 사망 원인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수사 의뢰한다.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망 원인 관련 범죄는 군사경찰에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민간경찰은 군사경찰로부터 통보받은 범죄 인지의 경위, 근거, 관련 기록을 검토하고 대상자들을 수사한 뒤에 검찰 송치 여부를 판단한다.

이 날 유가족에게 설명된 수사 결과는 대략 이렇다. 지휘관들의 작전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장병들이 현장에 투입됨에 따라 임무수행에 필요한 로프, 구명조끼 등을 휴대하지 못했고, 지휘관들은 안전에 관한 지휘관심을 소홀히 하여 실질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전을 실시하였으며, 사단장의 작전지도 중 지적사항 등으로 예하 지휘관이 지휘부담을 느껴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하게 되어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병대수사단은 해병 1사단장 임성근 소장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민간경찰에 수사의뢰할 예정이었다.

그에 앞선 7월 28일 오전,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사령관에게 똑같은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7월 30일 일요일 오전에는 해군참모총장에게, 오후에는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했다.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모두 보고를 받은 뒤 보고서에 확인 서명을 했다.

이들이 수사 결과를 보고받을 수 있는 건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라 군사경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휘·감독권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조는 지휘관이 군사경찰을 지휘·감독할 때에는 공정한 수사를 위해 직무 수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과거에 헌병으로 불리던 군사경찰은 수사 외에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법령은 군사경찰의 여러 임무 중 범죄 수사에 관한 사항만 특별히 꼬집어 독립성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법경찰관이 아닌 군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해 함부로 범죄 수사에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국방부장관 등 군 지휘관들은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을 권한은 있지만 그렇다고 수사 방향을 뒤틀거나, 절차에 간섭하거나, 수사 대상자를 선별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에 개입할 권한은 없다. 만약 지휘관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개입한다면 이는 명백히 법령을 위반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여하간 별일 없이 보고를 마친 박 대령은 부대로 복귀해 다음 날 진행될 수사 결과 언론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날 오후 무렵 해병대사령부로부터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수사결과보고서를 보내주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 박 대령의 설명이다. 종결되지 않은 사건의 수사 기록은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기밀이다. 대통령실이 검찰, 경찰에 개별 사건 수사 기록을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군대도 마찬가지다.

결과보고서 제출을 거부하자 국가안보실은 언론 브리핑자료를 요구했고, 이에 사단장 등 8명을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긴 브리핑 자료를 보냈다고 박 대령은 밝혔다.

국방부의 적반하장
 

이종섭 국방부장관이 지난 7월 20일 오전 경북 예천스타디움에 마련된 해병대 숙영지를 방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7월 31일, 언론브리핑을 위해 국방부로 향하던 박 대령은 갑자기 브리핑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문도 모른 채 부대로 복귀한다. 국방부와 해병대에서 계속 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 무렵에, 박 대령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전화를 받았으며, 수사 의뢰를 할 때 사람 이름과 죄명을 다 빼라는 압박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세상에 범죄인지를 통보하면서 혐의자와 혐의 죄명을 안 적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비상식적인 요구는 8월 1일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박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에 언론브리핑 자료가 들어간 뒤로 장관이 보고 받고 결재한 수사를 장관이 다시 뒤집는 해괴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박 대령은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8월 2일 오전 10시경,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경상북도경찰청에 사단장 등 8명을 수사 의뢰한다.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군사경찰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가 발생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는 등 범죄를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반면, 수사 의뢰를 통보 할 때 군사경찰이 지휘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지체 없이' 통보할 의무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군사경찰이 범죄를 인지해 놓고도 수사권이 있는 민간 경찰에 빨리 통보하지 않고 뭉개면 그사이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등 수사를 방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휘라인을 따라 일일이 보고하다가 수사 의뢰 계획이 새어나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법령대로면 군사경찰은 변사사건수사 종결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든 민간경찰에 수사 의뢰를 할 수 있다. 다만 관행적으로 변사사건수사를 종결할 무렵에 지휘관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민간경찰 수사 의뢰 통보 예정 사실도 보고하는 것뿐이다. 즉, 수사단장이 국방부장관 등을 찾아가 수사 결과 보고를 했던 건 승인을 얻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사단장 등 8명의 수사를 의뢰하고 기록을 이첩한 때로부터 9시간이 지난 오후 7시경, 군검찰 조직인 국방부검찰단을 경북경찰청에 보내 채 상병 관련 수사 기록을 모두 가져간다. 절차상 군기문란의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였다. 장관이 결재까지 해놓고 군기문란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런 식의 기록 회수 과정은 분명한 위법이다.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말이 좋아 회수지, 사실상 권한 없는 사람이 사술을 써서 수사 기밀을 탈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수사기관이 다른 수사기관으로 수사기록을 넘기려면 법령이 정한 공식 이첩 절차에 따라야 한다. 수사기관끼리도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함부로 기록을 돌려볼 수 없다. 그런데 채 상병 사건의 경우 해병대수사단은 국방부검찰단에 사건을 이첩한 적이 없다. 따라서 검찰단은 채 상병 사건 기록을 들여다볼 권한이 없다. 기록 회수를 하려면 해병대 수사단이 했어야 맞다.

그런데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에 가서 기록을 아예 통째로 들고 온 것이다. 그 순간부터 채 상병 사건 수사기록의 기밀성은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다. 권한 없는 검찰단이 임의로 기록을 집어왔으니 누가 돌려봤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면 누군가 몰래 기록을 복사해서 피의자들에게 갔다 줬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국방부는 적반하장으로 박 대령을 보직해임하고 항명죄까지 걸어 형사 피의자로 만들었다. 전광석화로 압수수색까지 했다. 국방부장관이나 해병대사령관은 수사의 구체적 내용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 수사 대상자를 빼고 더할 수 없고, 수사기관 간의 범죄 인지 통보에 관여할 수도 없다. 애초에 명령이 존재할 수가 없는데 항명을 운운하며 야단법석을 벌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뒤론 국방부에 장군 출신 국민의힘 의원까지 가세해 박 대령을 집단린치하고 있다. 박 대령이 정치군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수십 년을 군인으로 살아온 박 대령이 보직에서 해임되고 연금이 날아가는 징역형을 각오하면서까지, 사단장 등에게 있지도 않은 죄를 무리하게 덮어씌워 민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저 수사책임자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한 것뿐이다. 그런 사람을 국방부와 정부 여당이 한마음으로 손가락질하며 파렴치범으로 만들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지만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책임 회피하는 국방부·해병대... 국회 국정조사가 필요하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임태훈 소장(오른쪽)과 김형남 사무국장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고(故)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카카오톡 단톡방 대화 등 제보 내용을 토대로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직도 채 상병 유가족의 달력은 2023년 7월 19일에 멈춰있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채 상병 사건만 나오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 아픔도, 분노도, 답답함도 그날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게 7월 19일이 한 달째 반복되고 있다. 원인 규명과 애도만으로도 모자랄 시간이 점입가경의 싸움판으로 점철되고 있다. 아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유가족의 마음에 숙연해질 뿐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전하는 해병대의 태도는 온당한가? 정말 뉴스에 채 상병 이름이 덜 나오고 이름을 '호우피해복구 시 순직 해병'으로 바꿔 쓰면 유가족의 고통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가? 채 상병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코자 자원해서 해병대에 입대하여 재난으로 실종된 국민을 수색하다가 순직했고,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했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타인의 귀감이 되어 해병대에서는 앞으로 훈련병들에게 그의 이름을 붙인 상도 수여한다고 했다. 그런 아들의 이름이 뉴스에 반복되어 고통스러운 건, 보도하는 기자들 때문이 아니라 자꾸만 이상한 뉴스거리를 생산해내는 자들 때문이다. 멀쩡하게 수사를 종결하고 수순대로 절차를 진행하면 될 일을 지저분한 음모와 황당한 항명 논란으로 비화시킨 것은 국방부와 해병대인데 지금 고통의 책임을 어디다 전가하고 있는 것인가.

일련의 사태를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는 것이 유가족의 고통을 덜어내는 길이다. 국방부, 나아가 대통령실까지 의혹의 당사자로 언급되는 가운데 더 이상 채 상병 사망의 원인 규명을 국방부에 맡겨 둘 수가 없다. 국회의 국정조사가 필요하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서는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에 관한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5만 명이 청원에 동의하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안건으로 회부된다. 8월 17일 현재 청원 하루만에 1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동참한 상태다.(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011CAFDB95170DF7E064B49691C1987F)

끝으로 고 채 상병을 '호우피해복구 시 순직한 해병'으로 불러달라는 해병대 공보정훈실에 전한다. 채 상병은 해병대의 무리한 수해 실종자 수색으로 순직했다. 호우피해복구인 줄 알고 온 장병들을 갑자기 준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해서 사고가 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 아직도 뻔뻔스럽게 피해 복구를 운운한단 말인가. 네이밍 하나에도 제 살길 찾으려고 면피에 급급한 이들의 절박함이 느껴져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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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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