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1 18:34최종 업데이트 23.08.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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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4일 오후 4시 55분]
 

대기업 건설 공사현장 노동자들 출근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우희철


한해 2000명의 노동자가 일을 마친 뒤 퇴근하지 못하고 있다. 7월에만 74명이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살아서 봅시다'란 인사가 어찌 일터에서 나온단 말인가. 이런 불상사는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내팽개친 '사건'들이다.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묻힌 채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묻게 된다. 누구의 잘못인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죽게 했는지 묻고 또 묻는다. 두렵고 고통스럽다. 우린 많은 노동자들과 뜻하지 않은 이별을 하고 있다. 이제 그 이별들과 이별해야 한다.


최근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재건축 공사 현장에선 지하 전기실 양수작업 중 물에 빠져 숨졌고, 부산 연제구에선 아파트 6층 창호교체 작업 중 추락사했다. 디엘이앤씨(옛 대림산업) 노동자 사망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벌써 7번째로 모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창호전문기업 '윈체' 충주 공장에선 폐기물 운반 지게차가 전도돼 숨졌고, SPC 계열사인 샤니 제빵공장 50대 노동자는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문제는 롯데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대기업 건설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잇따른다는 점이다. 대기업 현장 사망자는 2021년 71명, 2022년 74명, 올해(8월11일까지) 79명으로 점차 느는 추세다.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건설업은 공정진행에 따라 현장의 위험한 기계와 장비가 수시로 변하고, 참여하는 협력업체와 근로자가 달라져 안전관리가 어렵다. 기본만 지키면 안전한데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자기규율 예방체계만 구축해놓고 이행을 게을리 하고 있다. 기업은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안전 관련 서류만 잔뜩 작성한다. 거의 한 보따리다. 현장의 안전관리는 뒷전이고 형식적인 서류작업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 이들은 산업안전보건법(고용부) 중대재해처벌법(고용부) 건설기술진흥법(국토부) 재난안전관리법(행안부) 등의 적용을 받는다.

산업재해의 뿌리는 생명과 안전보다 수익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먹고 사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개발공화국 당시의 일그러진 유산이다. 무조건 빨리하면 된다, 시키면 어떻게든 한다, 열심히 오래 일하면 된다는 식의 과거 패턴이 여전하다.

위험의 이주화... 머나먼 이국땅에서 죽는 외국인 노동자들
 

9일 붕괴 사고가 발생해 2명이 매몰된 경기도 안성시 옥산동의 한 신축 상가 공사장 모습. 이날 사고는 9층 규모의 건물에서 9층 바닥면이 8층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일어났다. 매몰된 2명은 베트남 국적의 형제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 연합뉴스

    
막노동 할 당시에 느낀 점도 건설사의 안전대책이 현장에 들어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절대 뛰지 마라, 뛰면 죽는다. 빨리빨리 하면 다친다.' 작업할 때 그 말만 되풀이한다. 그런데 막상 물량이나 검사, 공사 기간 닥치면 말짱 도루묵이다. 업체선 돈하고 관련된 건 단축하고 서두른다. 그러다가 사고 난다. 서류만 잔뜩 작성하고 안전교육은 형식적일 때가 많다. 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노동자들은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도 문제는 있다. 이 법은 처벌 일변도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만 묻고 있고 어떻게 사고를 예방할 것인지를 다루는 항목은 기존 법에 의존하고 있다. 제재 방식도 실형과 같은 처벌 위주다. 때문에 영국처럼 벌금형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노·사·정 3자가 참여해 사업장에서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이주노동자) 사망사고도 잇따른다. 안성 공사장 붕괴 사고로 베트남 국적 노동자 2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형제였다. 경남 합천군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선 신호수로 일하던 미얀마 국적의 20대 근로자가 토사를 하역하고 이동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인천 송도의 주상복합 신축 현장에선 하청업체 소속 30대 외국인 근로자가 줄걸이 작업(크레인에 운반할 화물에 달기기구를 걸거나 벗기는 작업)을 하던 중 떨어져 숨졌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사고 사망자 수는 총 402명이었는데 47명(11.7%)이 외국인이었다.

일반 건설현장은 외국인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을 만큼 크게 의존한다. 한국인 노동자가 기피하는 힘든 작업들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대략 84만 명 정도인데 불법체류까지 합하면 120만 명이 넘는다. 대부분 기존 동료나 회사에서 간단한 업무만 익힌 채 투입되다 보니 사고로 이어진다. 의사소통과 정보 획득의 어려움, 열악한 근무환경, 안전교육 미흡, 상대적으로 낮은 안전의식 등으로 인해 산업재해에 취약하다. 일부 사업주들은 일감이 적을 때 다른 공장으로 보내 일을 돕게 하는 일종의 품앗이를 한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더욱이 이주노동자를 주로 고용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하청업체인 까닭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위험의 이주화(내국인에서 외국인으로 위험 전가)'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들도 한국 노동자처럼 합당한 대우와 안전관리를 받아야 한다.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소리 없이 주검이 되는 건 개죽음이다. 외국인노동자의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외국인근로자 안전보건 확보 위한 안전표준 제정 △외국인노동자용 간단 위험성평가 △외국인 지원기관과 산재예방 간담회 실시 △안전보건교육 통역원 인력풀 구축 △의사소통능력(원어민 통역사 양성) 및 안전보건 프로그램 강화 등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노동의 참가치고 본질이다. 퇴근이 선택일 수는 없다. 온전한 몸으로 귀가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다. 

이제 이별과 이별합니다 -나재필

아, 지게차에 깔릴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20m 바닥으로 떨어질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 짐승 같은 냉골이 또 얼마나 두려웠을까
수렁의 숨골이 차오를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살려달라는 비명 터질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꽃잎처럼 떨어진 가여운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날 70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70명이 퇴근하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출근한 날이 됐습니다
차디찬 콘크리트 주검을 가슴에 묻습니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 그 절규를 가슴에 묻습니다
묻고 또 묻은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상이건만
푸른 꿈을 꾸다 스러져간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이별을 납득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떨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이 떨어져나갔습니다
스러져간 노동자여, 스러진 노여움이여
떨다간 아픔이여, 떨어져나간 슬픔이여
천상의 꿈으로라도 다시 피어나소서
이제 이별과 이별합니다

 

대기업 건설 공사현장 노동자들 출근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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