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6 07:06최종 업데이트 23.09.2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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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통해 경험했듯 우리의 건강, 나아가 삶과 죽음의 불평등이 사회적·정치경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이러한 요인은 마스크 대란과 백신 불평등 사례에서 보듯 국경을 넘어 지구적 수준으로까지 연결되어 있다. '글로벌건강리포트'를 통해 탈세계화 혹은 재세계화 시대, 격변하는 국제정치경제 속에서 우리의 생명과 건강이 어떤 맥락에 처해 있는지 이슈별로 진단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78차 국제연합(UN) 총회가 지난 5일부터 26일까지(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 중이다. 취임 후 두 번째로 총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4박 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23일 귀국했다.
 
"이번 유엔총회 일정은 엑스포 총력전이자 경제 총력전"이라는 공언과 함께 출국한 윤 대통령은 5일 동안 무려 41개국 정상과 연쇄 양자회담을 진행했다. 태평양도서국 정상 오찬, 카리브공동체 정상 만찬까지 고려하면 만난 국가가 48개국으로 늘어난다. "양자회담을 최대한 많이 잡으라"라는 대통령 특별지시였다는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는 정체성은 참 한결같다.
 
유엔총회는 매년 전 세계 193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총회의 하이라이트로 여겨지는 일반토의에서 각 정상은 15분간의 기조연설 기회를 갖는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국제 정세에 대한 진단과 자국 입장을 표명할 기회이나 긴장 관계에 있는 국가나 정상을 비난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마치 전 세계를 소유한 것처럼 구는" "악마"라고 부르기도 했고(2006년 61차 총회), 쿠바 혁명으로 집권한 피델 카스트로 당시 쿠바 총리가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역대 최장시간인 4시간 30분을 연설하기도 했다(1960년 15차 총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스스로와 정권을 위해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인" "로켓맨"이라고 부르며 필요하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라고 협박한 것도 유엔총회 연설이었다(2017년 72차 총회).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러시아와 북한 군사 거래"를 비판하는데 1분 남짓 시간을 썼다. 그럼 나머지 14분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41개국과 양자회담이라니, 총회 일정을 소화할 여유는 있었을까.
 
이번 유엔총회는 우리의 삶에 엑스포보다 훨씬 더 중대한 영향을 미칠 의제를 다뤘다. 총회 기간에는 일반토의 외에도 다양한 회의와 부대행사가 열리는데, 올해는 기후목표 정상회의(Climate Ambition Summit)가 주인공이었다.
 
기후목표 정상회의 연설자 명단에 이름을 못 올린 이유
 
올해 기후목표 정상회의 관전 포인트는 '연설자 명단에 누가 올랐나'였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 상한선을 지키기에 각국 기후대응이 너무나 느린 상황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칭찬하기/망신주기 전략을 택했다. 야심찬(ambitious) 기후목표를 추진하는 국가는 연설할 기회를 얻었지만, 전 세계 기후목표의 발목을 잡는 국가는 연설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100개국 이상이 연설 의사를 표했지만 최종 34개국만이 연설자로 선정됐다.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에는 브라질, 캐나다,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만 연설을 했고, 한국을 포함해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등 주요 탄소배출국 대부분이 연설자에서 제외됐다. 반면 기후위기 책임이 가장 작은데도 가장 큰 피해를 겪고 있는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섬나라 중에는 7개국 정상이 야심찬 기후계획으로 연설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연설을 허용하라고 유엔 사무총장을 압박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결국 마땅한 이유도 없이 총회 자체를 불참했는데, 지난해 10월 취임 후 첫 유엔총회였을 뿐 아니라 영국 역사상 총리의 유엔총회 불참은 유례가 없어 사실상 참석 거부였다고 해석되고 있다.

수낵 총리는 참석 거부로도 모자라 기후목표 정상회의가 열린 같은 날(20일), 전 세계 정상이 더 야심찬 기후목표를 발표하는 와중에 도리어 기존에 공약한 기후목표를 후퇴시키는 발표를 내놨다. 대부분 자신이 재무장관으로 있던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 내각 하에서 이뤄진 공약들이다.
 
애초 2030년으로 설정한 내연기관 자동차 신규판매금지를 5년 늦추고, 2026년으로 설정한 일부 주택의 신규 화석연료난방 금지시한도 9년 연장했다. 영국은 주요 탄소배출국 중 처음으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에 선도적이었던 만큼 수낵 총리의 발표에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쟁 정당인 노동당과 차별화를 노린다는 해석이지만, 영국 정부의 행보가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에까지 미칠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를 구하느라 영국 국민을 파산시키지는 않겠다"라는 수낵 총리 내각의 교활한 정치적 수사에 솔깃할 정치지도자가 한둘일까.
 
한국의 기후 책임은 원조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취약국들이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면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그린 ODA(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녹색기후기금(GCF)에 3억불을 추가 공여할 것입니다. 녹색기후기금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재정 기여를 기대하며, 기후 격차 해소를 위한 국제사회의 의지가 결집되어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에너지(CFE : Carbon Free Energy)를 폭넓게 활용할 것이며, 이를 기후위기 취약국들과 공유함으로써 그들에게 이 혜택이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작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0여 분의 짧은 시간 동안 무려 21번 "자유"를 외쳤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총회에서 6번의 "부산"과 14번의 "엑스포"를 외쳤다. "기후위기"도 주요 주제 중 하나로 등장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윤 대통령이 엑스포 총력전을 위해 만난 태평양도서국, 카리브공동체 국가들은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크게 겪고 있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돕겠다'고 공언한 "기후위기 취약국"이다. 이들 국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가장 작지만, 대한민국보다 더 야심찬 기후대응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년 연속 세계 10위 온실가스 배출국이며, 1950년대부터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은 하위 100개 국가를 합친 것보다 크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라는 의미다. 반면 기후변화 대응 성과는 온실가스 배출 상위 60개국 중 57위로 '매우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후목표 정상회의 첫 번째 연설자로 선정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지난 9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 아프리카 기후정상회의 주최국 자격으로 정상회의 결과물인 '나이로비 선언'을 소개했다. 루토 대통령은 화석연료거래, 항공·해운, 국제금융거래에 대한 보편적 과세를 통한 공정한 기후재원 조달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의 낮은 탄소배출은 유일한 강점입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아프리카는 새로운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과 기존 인프라를 탈탄소화하는 것 사이에 선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재 가진 인프라가 아주 낮기 때문입니다. (중략)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은 자선이나 원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성입니다. 공정한 금융시스템, 녹색 자산‧제품‧서비스에 대한 공정한 시장 접근성,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공정한 국가적‧지역적 무역기전입니다.
 
산업부문 감축 완화하고 국제감축 늘리더니 원전수출 위한 원조 노리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원전을 활용할 것이며, 심지어 이를 "기후위기 취약국들과 공유"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공언은 영국 정부의 기후목표 후퇴 발표만큼이나 국경을 넘어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관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보도참고자료를 보자.
 
탄소중립에 대한 기업들의 자발적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RE100과 같은 민간 이니셔티브가 추진되고 있지만, 이행수단을 재생에너지로만 한정하여 국가·지역별로 상이한 이행 여건과 기업별로 다양한 전력사용패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재생에너지 여건이 불리한 나라에 소재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비용부담이 커서 또 하나의 무역장벽으로 인식하는 기업들도 많다. (중략)
 
공적개발원조(ODA)와 연계하여 개도국의 무탄소에너지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우리 기업과 협력하여 개도국에 기술과 전문인력, 컨설팅 지원도 가능하다.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위상을 더 높이는 일이기도 하고, 원자력·청정수소와 같이 우리나라가 경쟁력있는 분야의 해외진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환이라는 국제 규범과 노력에 초를 치는 것도 모자라, 원조를 구실로 한국 원전의 수출기회를 노리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불리한 재생에너지 여건' 운운하면서 결국 기업들의 비용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올해 1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기존의 30.2%에서 21.6%로 하향 조정하고 대신 원전 비중 목표를 23.9%에서 32.4%로 상향한 바 있다. 3월에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기존의 '2018년 대비 40% 감축' 수준을 유지하면서 산업부문의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6%로 완화시켜줬다. 대신 국제감축 부문의 목표를 늘렸다.
 
산업계는 부담이 줄지만, 산업계의 부담이 전가된 국제감축 부문에서 정부가 세금을 써야 하는 결과다. 국제감축은 고소득국이 중‧저소득국에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 등을 설치해 온실가스 감축을 돕고, 감축분 일부를 국가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는 제도다. 정부 계획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마치 준비해 둔 것처럼 "원전수출과 연계된 한국형 국제감축모델"을 주장하는 입장문을 내놨다.
 
'기후정의행진' 외침에 응답하라
 

23일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9.23기후정의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남영역 방향으로 행진 중 바닥에 눕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매년 유엔총회 기간에 맞춰 뉴욕 현지는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기후행동이 열린다.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지난 23일, 석탄·화석연료발전 중단은 물론 탈핵·탈원전을 요구하는 시민이 서울에서만 3만 명 넘게 모였다.
 
기후정의행진은 "기후정의에 입각한 온실가스 감축과 국제적 생태부채 해결을 위한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 폐기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에 책임을 물라"고도 했다.
 
2030년 엑스포 유치를 준비하는 부산에서도 200명의 시민이 따로 모였다. 부산시민들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가속 시키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 중단"을 요구했다. 부산 엑스포 개최에 맞춰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 중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환경파괴는 물론 졸속 계획과 추진에 따른 안전성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정의로운 기후대응은 고소득국, 부유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할 것을 요구한다.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만, 고소득국, 부유한 사람들은 삶의 질이나 건강에 아무런 영향 없이 소비감소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과학적 근거다.
 
'시민들은 이미 준비됐다.' 부산 엑스포 총력전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응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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