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목격자들... '순살 아파트', 누가 만들었나

[아파트 철근공 잠입취재-에필로그]
샌드위치 판넬 창고의 달방을 떠나며

지난 4월 인천 검단 신도시에 지어지던 GS건설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 부지가 무너졌다. 입주를 불과 7개월 앞둔 이 아파트가 붕괴한 이유는 다름 아닌 ‘철근 누락’.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 9월 한달간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며 보고 겪은 현장을 전한다. [편집자말]
대전의 한 모텔 뒤편에 있는 샌드위치 판넬 창고. 이 모텔은 건설 인부들만 이곳 창고에 따로 분리시켜 달방을 줬다. 현금으로 월 60만원, 카드로 월 66만원 짜리 달방이었다. 이 모텔은 건설 인부들에겐 주차장 이용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진 속에 보이는 문이 각각 하나의 방이다. 창고 안에는 열개 정도의 방이 있었다. (사진 왼쪽) / 하루 종일 공사장에서 철근 일을 하면 철에서 나온 녹과 흙먼지로 온몸이 범벅이 됐다. ⓒ 김성욱
"노가다 하슈? 그럼 이쪽으로 오셔."

대전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 취업을 확정하고 급히 숙소를 구하던 참이었다. 방이 딱 하나 남았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찾아간 모텔의 주인은 '달방'을 원하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객실이 아닌 모텔 뒷문을 가리켰다.

건물 밖으로 나간 주인이 멈춰선 곳은 모텔 바로 뒤에 있는 낡은 샌드위치 판넬 창고였다. 타이어공장 간판 자국도 채 떼지 않은 창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습하고 쿰쿰한 악취가 났다. 해가 들지 않는 창고 구석엔 곰팡이 핀 침대 매트, 책상, 가죽소파 등 모텔에서 갖다 버린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가득했다. 갑작스런 어둠에 적응이 된 뒤에야 창고 안쪽으로 열 개쯤 되는 방들이 보였다. 방문 앞엔 빨래 건조대가 있었는데, 널려있는 건 죄다 건설 현장에서 쓰는 헤진 조끼와 땀복, 두꺼운 양말들이었다.

나중에 안면을 트게 된 모텔 청소부는 "먼지투성이 꼴의 노가다 아저씨들이 모텔 안을 드나들면 다른 손님들이 싫어해 달방을 따로 분리시킨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하루 종일 공사장에서 철근을 지고 나면 온몸이 철근에서 나오는 녹과 흙먼지로 범벅이 됐다. 신발 밑창에선 덜 굳은 시멘트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마침 모텔 뒤편 타이어공장이 창고를 비우고 떠나면서 모텔 주인이 이를 개조해 인부들 전용 숙소를 만들었다는 거였다. 이 모텔은 인부들에게 주차장마저 못 쓰게 했다. 공사장 흙탕물을 뒤집어쓴 차들이 미관상 안 좋으니 알아서 주변 길가에 대라는 식이었다. 이 창고 달방의 가격은 현금으로 월 60만원, 카드는 66만원이었다.

대전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 이종호
어둠 속의 공사장 안
"솔직히 저도 모르겠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순살 아파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질 무렵이었다. 건설업계 관계자·기술사·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어떻게 순살 아파트 같은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가장 많이 돌아온 대답은 '이해가 안 된다', '잘 모르겠다'였다. 심지어 한 원청 건설사 협회의 관계자는 순살 아파트 사태의 시작이었던 GS건설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의 원인이 '철근 누락'에 있었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를 두고 "철근 몇 가닥 빠졌다고 무너진다는 게 말이 되냐"면서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진 못했다. 어떤 변호사는 "건설 관련 재판을 하면 내부 구조가 하도 복잡해 판사들 이해시키는 데 애를 먹는다"고 했다. 한 전직 전문건설업체 사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이 정도 난리가 나면 온갖 교수나 전문가란 사람들이 나와서 전부 한마디씩 떠들잖아요. 뭐 해야 된다, 뭐 해야 된다… 근데 순살 아파트는 어때요? 생각나는 얼굴 있어요? 없죠? 왤까요? 책에 나오는 당연한 소리들 말고, 공사장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책상머리들이 노가다를 아냐고요. 거기다 건설사들이 돈이 좀 많아요? 언론이나 법조계, 정치권 꽉 잡고 꽁꽁 틀어막는데. 저는 사실 기자님도 별로 안 믿어요."

돌이켜보면 건설 문제는 늘 뉴스의 단골 소재다. 작년 한 해만 402명이 건설 현장에서 죽었다.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 874명 가운데 46%에 달하는 압도적인 비중이다.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인 제조업(184명·21%)의 두 배가 넘는다. 근래 순살 아파트 같은 부실공사 사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1월에도 현대산업개발이 짓던 광주 화정 아파트가 39층부터 23층까지 무려 16층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인명 사고가 없었던 이번 GS건설 사고와 달리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관심은 금세 식었고, 현대산업개발은 아직 행정처분조차 받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아파트를 짓고 있다.

순살 아파트의 목격자들
철근공들이 벗어 놓은 신발들. ⓒ 김성욱

2021년 기준, 전체 국내 가구의 절반이 넘는 51.5%가 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벽, 바닥, 기둥, 계단 속엔 모두 철근이 들어있다. 그 무거운 철근들을 일일이 옮기고 집어넣는 건 결국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높고 비좁은 곳이라도 어떻게든 철근을 져 올리고 묶어내는 사람들. 새벽 5시부터 출근해 어깨가 터지고 손에 누렇게 녹이 배도록 철을 잡는 이들이었다. 떨어지고, 기계에 맞아 죽어도 철근에 평생을 바친 충청도의 기술자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앳된 베트남의 노동자들이었다. 만약 철근 빠진 '순살 아파트'가 있다면 이들이 가장 확실한 목격자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 사회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샌드위치 판넬 창고 구석 달방에 격리돼있기 때문이다. 매년 사백명 넘게 죽어도 다들 그러려니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30~50년 한 '전문가'인데도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순살 아파트 사태와 관련한 정부조사 때도 마이크가 돌아간 건 오로지 학위나 자격증 있는 전문가들 뿐이었다. 이들, 사라진 목격자들을 부르는 이름은 '노가다'다.

이들의 존재가 소거될수록 공사장 펜스는 더 높아지고, 그 안은 점점 더 우리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곳이 되어간다. 어쩌면 '순살 아파트'도 그 결과 아닐까. 나 역시 그곳을 다 알지 못한 채, 한 달 만에 공사장을 떠났다.

한달간 철근공으로 일했던 아파트 공사 현장. 공사장 둘레로 펜스가 쳐져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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