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6 17:25최종 업데이트 23.12.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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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경력이 오래됐지만, 대리 운전은 매번 긴장된다. ⓒ pixabay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 단지 택배기사로서의 일상을 넘어 우리가 일하는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좋은 교훈도 함께 나누겠다고 했다. 나는 택배 일만큼은 아니지만, 한동안 대리운전 기사로도 꽤 일한 적이 있다.

대리운전 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9년 노숙인 쉼터 시설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우리 쉼터는 그해를 끝으로 시설을 폐쇄하기로 한 상태라 나는 부득이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 쉼터에 입소해 있던 한 분이 대리운전 기사였다.


그는 매일 늦은 오후나 초저녁에 일을 나가 새벽에 들어와 한낮까지 잠을 자는 뒤바뀐 생활을 매우 부지런히 해 나갔다. 하는 일로 밤낮이 뒤바뀌다 보니 다른 사람과는 거의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혼자만의 일상을 채워갔다. 스스로 매일 O시부터 O시까지는 무조건 나가서 일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아주 성실하게 지켜나갔다.

본래 우리 쉼터는 입소인의 자활을 독려하기 위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아침에 무조건 나가 늦은 오후에 들어오는 게 규정이었다. 그러나 직업이 밤에 하는 일이었기에 그분만은 예외였다.

전에도 말했듯이 목회와 운동을 한편에 두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은 전업이 어려워 배달이나 운전 같은 일이 가장 무난했다. 그분 역시 쉼터의 폐쇄를 알고 있던 터라 대리운전 일을 상의하니 대번에 아주 좋다고 내게 권했다. 운전만 할 줄 알면 특별한 진입장벽도 없고, 자기가 일하는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용기가 났다.

목사의 또다른 생계수단, 대리운전

쉼터가 폐쇄되기 얼마 전부터 시험 삼아 퇴근길에 콜(고객의 운행 요청)을 잡아보았다. 저녁밥을 서둘러 먹고 전투에 나가는 군인의 심정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긴장하며 기다렸다. 쉼터 지인의 조언대로 반경 1.2km 안에서 부르는 첫 번째 콜을 잡아 고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예정대로 쉼터가 폐쇄된 후 제법 오랫동안 나는 대리운전을 했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이 가운데도 대리운전하거나 부르거나, 또 해 볼 마음이 있는 분도 있을 테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 아침나절에도 콜을 잡기도 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거의 밤에만 집중되었다.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용 콜을 잡을 수 있는 대리운전 중개회사에 가입해야 한다. 회사의 앱을 깔고, 매월 콜 사용료와 함께 운행할 때마다 수입의 20%를 수수료로 공제한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보험에도 가입하여 월 보험료도 낸다.

대리운전할 정도면 운전에 어느 정도 자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목회자에게 교회 봉고차 운전은 필수였던 시절이라 1990년 25살이던 신학대학원 1학년 때 학교 학생부가 운전학원과 연결해 마련한 속성 과정에서 몇 달 만에 1종 보통 면허를 순식간에 땄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도로 주행 시험이 없던 때라 면허를 따도 차를 몰 줄도 몰랐고, 몰 일도 없었다. 나도 한동안 소위 '장롱면허'였다. 그러나 몇 년 후 교회 차를 몰아야 한다는 직업 정신은 역시 빠른 시간 안에 일취월장 실력을 키워주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3인 좌석, 5열씩 무릎이 닿을 정도로 촘촘하게 배열된, 당연히 수동인 15인승 승합차를 후진 주차하면 여성 교인들이 감탄하였고, 나는 설교할 때보다 더 으쓱했다. 오래된 얘기다. 수동 기어 차나 트럭, 봉고 같은 요청도 가끔 들어온다. 운전경력이 오랜 우리 같은 기사가 빛을 발할 순간이다.

그런 나도 대리운전은 매번 긴장된다. 생전 처음 운전해 보는 남의 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종류의 차들이 있는 데다가 주로 중형차이고, 외제 차도 정말 많다. 같은 차종인데도 차마다 계기의 위치와 작동방식이 다를 때도 있다.

매번 쉽지 않다. 사실 운전석 앞 유리에 비치는 속도 계기판과 좌석에 앉을 때마다 좌석 위치가 자동조절 되는 것도 대리운전하면서 처음 알게 된 일이다. 대리운전하지 않은 지 벌써 몇 년 사이에도 아마 훨씬 더 다양하게 바뀌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유자에게는 갈수록 기능이 편리해져 가는 것이겠지만, 대리운전 기사에게는 급속한 변화가 부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술 취한 고객을 상대하는 일
 

차 기능을 물어볼 때 "그런 것도 모르냐"라며 면박을 주며 가르치는 손님을 보면 분한 마음이 든다. ⓒ unsplash


그래서 매번 차에 탈 때마다 계기판을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대부분은 보거나 찾으면 금세 알겠는데, 가끔 아무리 둘러봐도 도무지 원하는 기능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면 모르면서 남의 차를 아무 데나 작동해 볼 수가 없어 당연히 '어떤 기능이 어디 있는지' 고객에게 묻는다.

대부분은 잘 대답해 주지만, 가끔 '그런 것도 모르냐'는 표정을 지으며 면박을 주며, 고까운 표정으로 가르쳐 주는 분도 있다. 한 번은 기능을 묻자 도무지 못 믿겠다는 식으로 소리소리 지르더니 대리 취소하겠다는 막무가내 고객도 있었다. 술을 마신 진상이라 그렇다고 스스로 위로해도 분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대리운전은 어차피 술을 마신 후 부르는 것이라 진상 고객은 당연히 있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 만취 승객이 많던 것에 비하면 회식문화가 많이 사라진 최근은 식사와 더불어 간단히 한 잔씩 한 분이 많아 대개는 점잖게 간다. 운행하는 내내 서로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많다.

반면, 도착할 때까지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거나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또 고객이 있는 곳까지 열심히 달려가 보면 다른 대리를 또 불러 가버리거나 예정보다 조금 늦게 왔다고 취소한다며 우기는 분도 있다. 1, 2만 원 벌겠다고 10여 분 이상 거의 뛰며 달려온 애타는 심정을 너무 몰라줄 때는 정말 야속했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차라리 주무시는 고객이 편하다. 자기 집이니 가는 길이야 자신이 더 잘 알겠지만 우리는 내비게이션을 이용하기에 어느 방향이 최단거리며, 안 막히는 코스인지 잘 모른다. 도착할 때까지 뚫어지게 주시하며 사거리를 지날 때마다 "어, 더 빠른 데 있는데, 왜 이리 가지?"라며 혼잣말을 하면 정말 신경쓰인다.

그러면 나도 "우리는 내비게이션만 보고 가니, 더 잘 아시는 길이 있으면 아예 가르쳐 주실래요?"라고 하면 "아녜요. 상관없으니 알아서 가세요"라고 대답하고서도 여전히 길마다 한 마디씩 덧붙인다. 어쩌라는 건지! 어떤 분은 택시와 혼동하여 "왜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느냐?"며 따지는 분도 있어 우리는 택시가 아니니 오해 말라고 설명해 주기도 했다.

대리기사의 임무는 고객이 원하는 곳에, 주차까지 해주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촘촘히 늘어선 좁은 주차 구역선에 고객이 원하는 만큼 정확하게 주차하기 위해서는 신경이 곤두선다. 내가 볼 때는 거의 1자로 잘 주차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고객이 더 정확하게 해 달라고 하면 여러 번 들락날락하며 막판에 긁지라도 않을까 정말 긴장된다.

그 무렵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 목적지까지 잘 도착했는데,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 여러 번 후진 주차를 시도하다가 뒤 범퍼가 긁혔다. 일제 고급차였다. 난감했지만 보험처리하는 것으로 연락해서 진행하는데, 수리비용이 대리운전 보험의 한도를 넘어 초과분은 추가 정산하란다. 이런, 2만여 원 받고 크게 한건 했다. 주차선 안에 잘 들어가 좌, 우에 문 여는데 큰 어려움 없으면 너무 주차 부담 주지 않으면 좋겠다. 곧 눈이 오고 빙판길이 되면 더 수고할 대리기사 분들에게 안전과 평안을 기원하며, 마음 다해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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