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2 13:21최종 업데이트 23.12.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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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정문. ⓒ 권우성

 
육군사관학교가 지난달 30일 홍범도 장군 등 독립 영웅을 기리는 독립전쟁 영웅실을 철거했습니다(<뉴시스> 12월 8일 자 '육사, 충무관 확대개편 완료…홍범도 등 독립영웅실 철거'). 독립전쟁 영웅실은 지난 2018년 홍범도·김좌진·이회영·지청천·이범석 등 독립운동가 5인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습니다. 그러나 올해 가을 육사는 충무관 앞에 세워져 있는 5인 흉상의 철거 계획과 함께 독립전쟁 영웅실을 철거하고 '국난극복사 학습실'로 개편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흉상 철거는 시민들과 독립운동 기념 단체들의 반발로 육사 측에서 당장 올해 안에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만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는 끝내 강행한 것입니다. 육사 측은 "특정 시기와 인물 중심에서 벗어나 시대별 국난극복 역사 전체를 학습하는 공간으로 개편하는 공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철거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누가 봐도 육사에서 독립영웅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더불어 충무관 앞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여 외부로 이전하겠다는 방침에도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올 하반기 '역사 전쟁'의 한복판에서 홍범도 장군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안타깝지만 올가을부터 시작된 지난한 역사 전쟁이 새해에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올해의 투쟁을 돌아보고 앞으로 이어질 싸움에 대한 각오를 다져보고자 합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8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 연합뉴스

 
[나는 이렇게 싸웠다 ①] 전국 역사학도 서명운동

올해 8월 육사 측의 홍범도 흉상 철거 계획 발표를 접하고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심정이었습니다. 한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홍범도 장군이 말도 안 되는 모욕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며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역사학도로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역사를 전공하는 전국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했습니다.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 서명운동에는 국내외 60개 대학의 역사학도들이 동참했습니다.

원래는 역사학도 한정이었으나 흉상 철거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서명에 참여한 결과 일반 시민까지 포함해 총 455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서명운동을 마무리한 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앞으로 장관직 사퇴 및 흉상 철거 백지화 요구를 담은 성명과 함께 명단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추가 서명을 받아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에 9월 5일까지 추가로 서명 운동을 해 누적 인원이 952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해당 명단 역시 권영호 육군사관학교장 앞으로 발송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군 당국에 전달했습니다.

서명운동을 마무리한 뒤 곧바로 '2차 성명'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국회의 '홍범도장군흉상철거반대결의안' 채택, 윤석열 정권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 백지화 및 책임자 처벌 등의 요구를 담은 성명을 기초한 뒤 전국 41개 대학 사학과 사무실에 메일을 돌려 연명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그렇게 한국광복군 창설 83주년이 되는 9월 17일 역사학도들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관련기사: 젊은 역사학도 164명 모였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https://omn.kr/25oem)
 

2023년 8월 31일 국립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역 앞에서(서명운동 명단 헌정식) ⓒ 김경준

 
[나는 이렇게 싸웠다 ②] 대통령실 앞 1인 시위

9월 초 (사)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서 육군사관학교 및 광화문광장 앞 '1인 시위'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에 저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하자고 거꾸로 제안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육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을 시사했고, 국가보훈부 역시 홍범도 장군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서훈 취소를 검토 중이라는 흉흉한 소식이 연일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태를 중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수수방관하며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첫 번째 타자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습니다. 시위를 하는 동안 시민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흉상을 옮기지 말아야지", "힘내시라"며 응원을 건네는 시민들을 보면서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릴레이 시위로 기획했으나 생각보다 참여율이 저조했습니다. 다시 한번 역사학도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전국 대학 사학과에 1인 시위 동참을 독려했으나 선뜻 나서는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서명운동의 열기를 오프라인 시위로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절감했습니다.
 

2023년 9월 11일 용산 대통령실(국방부) 앞 1인 시위 모습 ⓒ 김경준

 
[나는 이렇게 싸웠다 ③] 전통활쏘기대회

이제는 서명운동과 1인 시위 외에 색다른 방식으로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를 청년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저는 취미로 전통활쏘기(국궁)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에 '홍범도장군배 활쏘기대회'를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홍범도 장군은 포수 출신으로 활이 아니라 총으로 유명한 분이었지만, 활과 총 모두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썼던 호국 무기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컸습니다.

마침 육사가 자리한 노원구에서 실내국궁장을 운영하고 있는 노원사계 스포츠클럽(대표 이훈) 측에서 제 아이디어에 찬동하며 대회를 개최해 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기간이 촉박했기에 145m에 이르는 정식 활터를 빌릴 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후원처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는 규모를 축소하여 실내국궁장에서 하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대회 이름 역시 "홍범도장군배라는 타이틀은 내년에 정식으로 대회를 개최하게 되면 그때 붙이자"는 내부 의견에 따라 '제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 전통활쏘기대회'로 바꿔서 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기획 의도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었기에 주인공 역시 홍범도 장군이었습니다. 우리는 참가자들로부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서명을 받았습니다.

또 대회장에 홍범도 장군의 약력을 전시하고,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참가자들에게 소설 <나는 홍범도>(송은일 작), <범도>(방현석 작) 등을 상품으로 지급했습니다. 특히 단체전 1등 상을 '홍범도상'이라 명명한 뒤 홍범도 장군의 약력을 기재한 특별한 상장을 만들어 시상했습니다.

활쏘기대회를 통해 '백발백중 명사수'였던 홍범도 장군의 무용(武勇)을 기리는 동시에 참가자들이 자연스레 홍범도 장군의 삶과 업적 그리고 흉상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한양대·광운대·경희대·인덕대·한성대·서울여대·세종대·덕성여대·성신여대·서울과학기술대 등 서울 지역 대학 국궁동아리 학생들과 공항정·석호정 등 서울 지역 활터 사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대회는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순수한 스포츠 경기에서 왜 서명을 받느냐",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것 같아 찝찝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이 무색하게도 참가자 104명 중 91명(87.5%)이 서명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홍범도 장군에 대한 청년들의 뜨거운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관련기사: 애국가가 다르네? 특이한 활쏘기 대회가 열렸다 https://omn.kr/26je2).
 

제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 전통활쏘기대회 단체사진 ⓒ 김경준

 
2024년에는 기쁜 소식 들려오기를   앞서 말했듯 육사는 당장 올해 안에는 흉상 철거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홍범도 장군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마음이 일궈낸 성과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철거 계획의 '완전한 백지화'입니다. 2024년 새해에는 부디 흉상 철거를 백지화한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고대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언제까지나 지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앞으로 호국의 방패가 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귀감이 되어주길 바랄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인스타그램 '독립로드 (@kiaquot)'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운동 소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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