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5 11:51최종 업데이트 24.01.25 11:51
  • 본문듣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위안부를 매춘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지난해 10월 26일 대법원이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는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재판장 정금영)이 '위안부는 매춘부' 발언을 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19년 9월 21일 <프레시안>에 공개된 연세대 사회학과 '발전사회학' 강의 녹취록에 따르면, 그달 19일 강의 때 류석춘 당시 교수는 "그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매춘하러 간 거다", "지금도 매춘 들어가는 과정이 딱 그렇다"라며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고 발언했다.


그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공저한 <반일종족주의>의 주요 내용 중 하나를 "위안부, 전부 거짓말이라는 거다"로 정리한 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온갖 거짓말이 만들어지고 퍼진다"라고 한 뒤 "실제 있지도 않은 일을 사실로 믿고 일본을 미워한다"고 주장했다. 이영훈 교수의 입을 빌려 위안부들의 증언을 거짓으로 규정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의 발언은 피해자 개개인을 향한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향한 추상적 표현"이라면서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해당 발언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류 전 교수의 주장이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관계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9년 강의 당시 류 교수는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획'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위안부 피해자 수십 명의 증언이 있었는데도 그런 증언들을 거짓으로 규정한 채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믿느냐는 수강생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른바 정대협이 끼어들어 와서 할머니들 모아다 교육하는 거다. 정대협 없었으면 그분들 흩어져서 각자 삶을 살았을 거다. 과거 삶을 떠벌리지 않았을 거다. 지금은 일종의 떠벌리는 거다. 텔레비전 나와서 떠들고 있잖아요. 일제가 끝난 직후에는 쥐 죽은 듯이 돌아와서 살던 분들이다. 그런데 정대협이 끼어서 '국가적으로 너희가 피해자'라고 해서 서로의 기억을 새로 포맷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정대협을 비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렇게 일부 무죄, 일부 유죄를 선고하면서 재판부는 "헌법이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볼 때, 교수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위안부는 사기라며 혐한 시위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목적이 학문 추구에 있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피해 배상과 역사 청산을 훼방하고 일본 국민들의 의식을 옥죄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일본 극우를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어느 재판부도 일본 극우가 정치적 목적으로 그런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류석춘 전 교수는 이영훈 전 교수나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등과 더불어 일본 극우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들의 연대가 순수한 학문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류 전 교수의 발언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22조 제1항의 보호를 받는 것은 보편적 상식에 비추 쉽게 이해되기 힘들다.

24일 정의기억연대는 입장문에서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 "대학 교수는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미래세대를 길러야 할 엄중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류석춘 교수는 일본 우익의 전형적 표현과 유사한 발언으로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고 비판했다.

류 전 교수의 주장이 학술적 발언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일본 극우의 정치 활동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에도 기인한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부였다는 그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주장을 모방한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의 일본제국과 일본군 가해자들의 주장을 본뜬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 위생병이었던 마쓰모토 마사요시가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을 증언하고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사과를 촉구했다는 보도가 2013년에 있었다. 이런 전직 일본 군인도 있지만, 훨씬 많은 수의 전직 일본 군인들은 위안부들이 자발적이었다는 거짓 주장을 펴면서 가해 사실을 합리화하고 위안부 피해를 부정했다.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26일 대법원 3부는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날 오전 박 교수가 서울 대법원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위안부는 군대 성노예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자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제시한 "육군 소위"도 그런 일본 군인에 속한다. 이 육군 소위는 "그녀들은 주둔 부대의 일원처럼 되어 있었습니다"라며 "또 장식품이랄까, 위안부가 없는 주둔 부대는 과자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처럼 폼이 안 난달까"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그녀들을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라고 한 뒤,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를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위안부들도 그에 부응해서 휴일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선물을 가지고 와서 빨래를 해주거나 진지 옆에서 기관총을 손질하는 군인 옆에서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거나 꽃을 꺾거나 하기도 했는데,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노래하니 평화로운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이 말을 한 뒤 그는 "주둔지에서의 군인과 위안부 관계는 어디든 이런 게 아니었나 합니다"라며 일부 사례를 위안부 전체의 현상인 양 일반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박유하 교수는 "전쟁터에서의 강간의 대상이 된 '적의 여자'와 위안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며 "가족과 떨어져 전방에 나가 있는 군인들을 부인처럼 신체적·정신적으로 위무하고 사기를 북돋는 역할, 그것이 위안부들의 원래 역할이었다"라는 주장을 끌어냈다.

일본제국이 읊조리던 논리 모방

가해를 합리화하는 일본 군인들의 모습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안연선 교수의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에서도 확인된다. 전직 일본 군인들과의 인터뷰에 기초한 이 책은 그들이 가해를 어떻게 미화하는지를 보여준다. 2020년에 <석담논총> 제76집에 실린 이진아 동아대 교수의 논문 '조선인 위안부를 둘러싼 제국 남성의 시선과 언어'는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에 소개된 일본 군인들의 진술을 이렇게 정리한다.

"대부분의 군인 남성들은 다음과 같이 위안소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합리화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위안소 제도가 기존의 공창제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는 점, 즉 위안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유의사로 매춘부가 된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전직 일본 군인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자 거짓 증언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당시의 일본제국이 이런 인식을 갖게끔 조장한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군은 실제로는 자신들이 운영하면서도 민간 위안소가 운영하는 것처럼 하고, 군인들이 위안부에게 군표를 지급하게 함으로써 일반적인 거래행위처럼 비쳐지게 만들었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는 류석춘 전 교수의 주장은 일본제국이 조장한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일본 군인들이 자신을 합리화하고자 내놓는 논리와도 다를 게 없다. 지금의 일본 극우뿐 아니라 과거의 일본제국과 일본 군인들이 읊조리던 논리를 모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학문 연구의 결과라고 말하기 힘들다.

일본제국주의가 전쟁범죄를 합리화하고자 조장한 논리를 강의실에서 되풀이하는 것은 대학을 학문의 장이 아닌 정치투쟁의 장으로 타락시키는 일이다. 류석춘 전 교수의 주장을 보호하는 것이 학문의 자유의 보호가 아니라, 대학 강의실에서 그런 주장을 못 하게 하는 것이 학문의 자유의 보호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자명하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