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31 11:57최종 업데이트 24.01.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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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마현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 일본 시민단체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억울하게 죽은 이에 대한 종교적 경외감은 일본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본 종교인 신도에 어령(御靈) 신앙이 있다. 말 그대로 '혼령을 제어한다'는 이 신앙은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재앙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종교 의례다. 죽은 이를 달래어 고이 잠들게 한다는 진혼(鎭魂)도 이런 목적을 띤다.

과거의 일본 정부들이 재난 희생자에 대한 추모제를 지낸 것은 원령들이 재앙을 일으키지 않도록 한다는 발상에서였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무사들에 관한 문학작품이 나오는 것도 그런 서술을 통해 그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관념과 관련이 있다. 일본 연극인 가부키도 비슷한 배경에서 태생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전통에 역행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쿄에서 서북쪽 자동차도로로 대략 100km를 달리면 나오는 군마현에서 한국인들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하는 비정한 사태가 일어났다.

군마현 정부는 다카사키시 '군마의 숲' 현립공원에 있는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일명 조선인 추도비)'의 철거 작업을 29일 개시했다. 2004년 4월 24일 군마현이 현의회 및 시민단체와 함께 설립한 이 추도비는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한국인들의 넋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지방정부가 극우세력의 압력하에 이런 비석을 철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재일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을 일본 극우가 상당 부분 좌지우지하는 최근 양상을 반영하는 일이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으로 한국에도 보도된 야마모토 이치타가 2019년부터 현지사로 재임 중인 것도 지금 상황과 무관치 않다.

강제징용과 대학살의 흔적... 그런데 추도비가 철거된다니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군마의 숲' 입구에 29일 높은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군마현 당국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에게 준 피해와 고통을 알리고자 시민단체가 2004년 세운 추도비 철거 등을 위해 이달 28일부터 내달 12일까지 공원을 전면 폐쇄하기로 했다 ⓒ 연합뉴스

  
군마현에서 한국인들의 넋을 기리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세계적 탈냉전으로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1990년대다. 1995년에 이곳에서 군마현 시민행동위원회가 결성됐다.

1997년 4월 4일자 <조선일보> 20면 우상단에는 군마현 시민행동위원회 사무국장 등이 자신들이 발굴한 한국인 희생자 6명의 명단을 들고 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들은 "유족들에게 이를 알리고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에 오게 됐다"며 군마현 지역의 6개 전범기업과 일본 기업을 대신해 사죄했다. 이런 움직임은 1998년 9월 추도비 건립 모임의 결성으로 이어지고 2004년의 추도비 건립 실현으로 귀결됐다.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記憶反省そして友好の追悼碑を建てる会)'이 작성한 '추도비 건립에 즈음하여'라는 비문은 "20세기의 한 시기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하여 지배했다"라며 "또한 지난 대전 중에는 정부의 노무동원계획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전국의 광산이나 군수공장 등에 동원되었고 여기 군마 땅에서도 사고나 과로로 인하여 귀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라고 기술한다.

일본인들이 이런 조형물을 남긴 것은 감사하고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위 문구만으로는 군마현에서 한국인들이 겪은 일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위 비문에는 "20세기의 한 시기"로 언급되고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에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로 언급된 그 시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만 군마현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것은 아니다.

착취와 수탈의 일제 경제정책 때문에 더는 한국에 살 수 없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대학살을 당한 한국인들도 군마현에 있었다. 1923년 11월 3일 일본 법원에서 일본인 피고들에게 징역 3년형이 선고된 어느 사건이 이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재판은 군마현에서 일본인들이 29세 일본인을 살해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수도권인 간토(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한창 혼란스러울 때인 그해 9월 4일이다. 일본인 피고들이 이 일본인을 살해한 것은 그를 한국인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동년 11월 6일 자 <조선일보> 3면 좌상단은 이 사건을 "조선 사람이라고 잘못 알고 죽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일본인도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한국인으로 오인돼 학살을 당하는 일이 있었던 간토 대학살 당시의 이 장면은 군마현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수도권 대지진으로 인한 민심이반을 최소화하고자 대중의 분노를 한국인들에게 돌렸다. 그런 일본 정부의 방침이 이 같은 비극을 낳았던 것이다.

당시 군마현의 참상을 기록한 일본 조사반의 메모가 1982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 우단 특집 기사에 실렸다. 메모 내용은 이렇다.

"자경단과 2백여 명의 군중이 군마현 등강(藤岡)경찰서 유치장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어쩔 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은 밖으로 뛰어나가 지붕 위로 도망쳤다. 자경단원들은 사다리를 걸쳐놓고 쫓아가 죽창과 일본도로 마구 찌르고 쳤다. 1시간 30분 만에 이쪽저쪽으로 쫓기던 한국인 14명이 모두 죽고 말았다."

군마현 후지오카경찰서에서 발생한 이 참상을 보도한 것으로 보이는 1924년 5월 6일자 <동아일보> '조선인 ○○사건'이란 기사에는 "작년 구월 일본 관동 디방에 진재가 잇슬 때에 군마현 등강뎡(藤岡町)에 잇는 황정자(荒井滋) 외 이십십사명이 모도혀 경찰서 류치장에 잇든 조선인 최명개(26) 외 십륙 명을 끄러내어 ○○○○○○○○○○○○ 사건"이란 문장이 적혀 있다.

아라이(荒井)라는 성을 쓰는 일본인을 포함한 폭도들이 조선인 16명을 끌어내 모종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됐다. "이십십사명"을 "이백십사명"의 오기로 보면, 1924년 기사와 1982년 기사(2백여 명)가 상호 일치한다. 한국인 피해자가 1924년 기사에 16명으로 적히고 1982년 기사에 14명으로 표기된 것은 언론사의 취재 결과와 조사반의 조사 결과 사이의 불일치로 볼 수 있다.

범행 내용이 동그라미 12개로 대체된 것은 1924년 당시의 언론 통제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읽으면 분노할 만한 내용이 열두 글자로 적혀 있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참상이 경찰서'에서만' 벌어졌을 리 없다. 경찰서'에서도' 벌어졌다는 것은 한국인 학살이 얼마나 심했을지를 상상케 한다. 군마현에 살았던 한국인들이 강제징용뿐 아니라 이런 대학살로도 죽임을 당했으니, 일본인들이 죄스러운 마음을 담아 추도비를 건립하는 일이 일어나게 됐던 것이다.

그런데 2012년 추도제 때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하는 정치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일본 극우세력이 철거를 청원했고, 2014년 7월 군마현 정부는 추도비 설치 허가의 갱신을 거부했다. 이로 인한 법적 분쟁이 그해 11월 시작해 2022년 6월에 끝났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갱신거부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따른 철거가 29일에 시작된 것이다.

추도비를 다른 데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철거 자체가 반역사적 의의를 충분히 갖는다는 점이다. 육사가 홍범도 흉상을 철거한 뒤 다른 데로 이전하겠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 극우세력의 압력으로 한국인 추도비가 훼손되는 장면이 연출됐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철거 뒤에 어디로 옮기느냐는 부차적 문제다.

실망스러운 대한민국 정부, 안일하고 무책임하다
     

30일자 <아사히신문> 사설 ‘조선인 추도비, 지사는 철거를 중지하라’ ⓒ 아사히 신문 홈페이지 캡처

 
상황이 이쯤 되면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마땅하다. 일본인들이 일본에 세운 추도비가 철거되는 사안이라고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 억울하게 죽은 한국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조형물이 부당한 이유로 철거될 판국에 놓았다면, 죽은 자국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적극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30일에 나온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은 실망감만 남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일본 시민단체 그리고 또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 등으로 일본 내에서도 관련 절차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안은 또한 일본 지자체와도 관련된 사안이어서 우리 정부로서는 양국 우호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 측과 필요한 소통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외교부 대변인이 밝힌 정부 대책의 기본 전제는 "양국 우호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이다. 이 방향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아니라 해결되기를 기대하면서 일본과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일본 측과 얼굴을 붉히거나 싫은 말을 할 의향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인들이 반발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추도비를 철거하겠다고 나선 일본을 상대로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철거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한국 정부와 달리, 30일자 <아사히신문> 사설 '조선인 추도비, 지사는 철거를 중지하라'는 "이해할 수 없는 폭거"라며 "즉각 중단할 것을 야마모토 이치타 지사에게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또 "공원에서 '강제연행'을 말하는 것을 일률적으로 금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며 전쟁 전의 일본을 미화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렇게 일본 언론조차도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우리 외교부는 우호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소통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언론보다도 못한, 너무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응이다.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대한 무관심·무성의는 자신들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에 둔감한 윤석열 정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일 우호관계가 최우선인지, 자국민을 보호하고 명예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인지 관심조차 갖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의 현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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