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9 06:46최종 업데이트 24.02.09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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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CK STOPS here!' 명패 소개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녹화를 마친 뒤 박장범 KBS 앵커에게 집무실 책상에 놓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선물인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패를 소개하고 있다. 이 명패는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을 마치고 귀국하며 건넨 선물로 트루먼 전 미국대통령의 좌우명을 새긴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석열이형네 밥집 영상에서 '집무실 책상에 두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트루먼 대통령의 명패를 언급한 바 있다. ⓒ 대통령실

 
맹탕으로 끝난 윤석열 대통령의 KBS 대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통령 집무실에 놓인 명패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윤 대통령은 이 명패를 어루만지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자랑했다. 취임 후 한 번도 국정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윤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국가 최고책임자로서 과연 이 문구의 엄중한 의미를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부인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해명부터가 그렇다. 애초 사과는 기대도 안했지만 유감 표명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나온 게 "아쉽다"는 말이다. "김 여사가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윤 대통령 본인에게 아쉽다는 거다. 대통령 부인으로서 받지 말아야 할 물건을 받는 장면을 보고 충격받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고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문구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 몰염치하고 무책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윤 대통령의 해명 아닌 해명으로 앞으로의 상황 전개도 분명해졌다. 당장 김 여사에 대한 수사와 조사는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이 사건을 몰카에 의한 '정치 공작'이라고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니 검찰이 피해자인 김 여사를 어떻게 수사할 수 있겠나. 되레 '공작'의 당사자들에게만 칼날을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이번 입장 표명으로 명품가방 논란이 일단락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 여사 활동 재개의 명분이 생겼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 이미 여권 내에선 김 여사 외부활동 재개설이 파다하다. 본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잠시 세간의 눈을 피해있다 슬그머니 나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적어도 김 여사가 직접 국민 앞에 나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국민의힘에서도 더 이상 이 사안을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김 여사 명품가방 의혹에 "국민 눈높이" 발언만 한 달째 되풀이하고 있다. 그나마 김 여사 사과를 주장한 몇 안 되는 여당 인사들도 기민하게 태세를 전환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직접 선을 그었으니 누가 입에 올릴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안간힘에도 명품가방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00만 원 상당의 '디올 파우치' 현물이 존재하는 한 이 사건은 끝날 수가 없게 돼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은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보관된다"고 했지만 퇴임 후에는 어쩔 것인가.

대통령 부부가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받은 선물이라면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기면 되지만 '뇌물' 성격의 명품가방을 받아줄리 만무하다. 가방을 건네준 이에게 돌려주자니 떳떳하지 않은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니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적 매듭이 지어지지 않으면 명품가방 수수 논란은 풀리지 않는다. 불법을 인정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지 않으면 두고두고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고독한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윤 대통령의 국정을 보면 별로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제라도 그 말을 곱씹었으면 한다. 적어도 대통령을 하는 동안은 대통령에겐 인간관계도, 친구도, 심지어 가족도 없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도, 대통령의 가족도 모든 국민과 똑같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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