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5 16:44최종 업데이트 24.03.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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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족의 상을 포용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원하는 유권자의 DM ⓒ 오마이뉴스

 
한국에서 누군가와 가족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결혼, 나머지 하나는 출산 혹은 입양입니다. 만약에 둘 다 원하지 않거나 또는 선택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족 말고 다른 이름을 지닌 '내 편'을 만들 순 없을까요. 

비혼, 비출산을 선택한 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노후에 대한 저주입니다. "나이 들면 외롭다", "늙어서 아프면 어떻게 할 거냐" 등 여러 말이 쏟아지지만, 결국 가족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입니다. 든든한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 없다면 말년을 버티기 힘들 거란 의미인데요. 하지만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꿈꾸는 가족이 있습니다. 마음에 맞는 친구, 지인, 동료로 이뤄진 대안 가족의 꿈입니다. 이 꿈이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건 생활동반자법입니다.

비혼·비출산 느는데 가족제도는 그대로 
 

더 이상 청년 세대는 '오손도손한 가족'을 꿈꾸지 않습니다. ⓒ unsplash

 
더 이상 청년 세대는 '오손도손한 가족'을 꿈꾸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홀로 살기를 택하며 결혼과 출산이 아닌 비혼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 변화'에 따르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은 3명 중 1명(36.4%)에 불과하였습니다. 특히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청년이 50%를 넘었으며 청년 10명 중 8명(80.9%)이 비혼 동거나 비혼 출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흔히 가족 하면 떠오르는 전통적인 상은 결혼한 남녀와 자식으로 이뤄진 형태입니다. 결혼해야만 가족이 될 수 있고,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국민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022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보면 혼인,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10명 중 7명(67.5%)이 동의하였습니다.


한 집에서 같이 끼니를 하면 '식구'라는 말처럼 결혼하거나 혈연으로 묶이지 않아도 함께 살아간다면 가족이라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가족 제도는 여전히 결혼, 그것도 이성애적 관계에 묶여있습니다. 즉, 사랑에 빠진 여성과 남성만이 결혼할 수 있는 겁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혼인신고 '접수'가 가능해진 지난해 3월 이후 15쌍의 동성 커플이 혼인 신고를 접수하였지만, 수리되지는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결혼제도라는 비좁은 틈을 지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서로를 사랑해도 가족이 될 수 없고 지켜줄 수도 없습니다. 가족이 아니라면 위급 상황 시 수술 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고 출산휴가, 전세대출, 주택청약 등 다양한 사회 복지 혜택 또한 누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데 가족을 포용하는 법적 범위도 확대해야 합니다. 그 대책으로 생활동반자법을 제안합니다.

잘 키운 동반자 하나, 열 배우자 안 부럽다

생활동반자법은 지난 2014년 진선미 의원실에서 준비했지만, 보수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발의되지 못했고 9년 만인 지난 2023년에 국회 문턱을 밟았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이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생활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이는 생활을 함께하는 동반자에게 동거 및 부양·협조의 의무, 일상가사대리권, 친양자 입양 및 공동 입양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서로 부여하게 합니다.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결혼하지 않아도 자식을 함께 키울 수 있고 중요한 의료결정 시,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있으며 훗날 상주가 될 권리를 갖습니다. 또한 신혼부부처럼 주택 정책 수립에 있어서 고려 대상도 됩니다. 결혼한 부부만 누릴 수 있던 사회적 혜택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할 수 있다면, 사회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요? 대한민국엔 참고할 수 있는 사회적 모델이 있습니다.

이미 법적 부부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 유형을 보호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한 유럽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프랑스는 1999년 이른바 '시민연대계약'이라 불리는 '팍스(PACS·Pacts Civil De Solidarite)'를 제정하였습니다. 팍스를 맺은 커플은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동일한 법적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 역시 혼인 부부의 아이와 똑같은 법적 보호를 받습니다.
 

유연해진 가족의 법적 범위로 더 많은 사람이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산다면, 개인의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 unsplash


'팍스' 도입 이후 프랑스는 1.80명의 출생률(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을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아이를 많이 낳는 것만이 '팍스'의 이점은 아닙니다. 팍스를 맺은 커플은 결혼, 혹은 동거 형태의 커플보다 남녀 간 가사 노동의 비중이 동일했고 여성 배우자가 근로하는 비율 또한 가장 높았습니다. 기존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서 유지되었던 여성, 남성 간의 성 역할에서 벗어나 평등한 관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특히 팍스를 맺은 커플이 다른 커플보다 자녀에게 성평등한 인식을 심어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입니다.

프랑스의 '팍스' 사례처럼 대한민국이 생활동반자법을 도입한다면 여러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출생률 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는데다 서로의 파트너십에서 존중받고, 더 다양해진 가족의 모습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평등과 다양성을 가르칩니다. 유연해진 가족의 법적 범위로 더 많은 사람이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산다면, 개인의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지난 2월, 정교회 국가로서 최초로 동성 결혼과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을 합법화한 그리스 국무장관 아키스 스케르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변화는) 이미 일어난 일로 사회는 의회의 허락 없이도 변화하고 발전한다." 후보자님, 세상은 변화했고, 사람들은 새로운 가족 형태를 원합니다. 마음 놓고 "당신은 나의 동반자~"를 부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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