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장필순.

가수 장필순. ⓒ 연합뉴스

 
대학시절 '햇빛촌'이란 음악서클에 있다가 여성 듀엣 '소리두울'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장필순은 김현철이 작곡해 준 '어느새'로 솔로 데뷔하면서 알려졌다. 그녀는 그 후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내일이 찾아오면' 등의 노래들을 발표했고 이제는 대한민국의 중량감 있는 여성 포크 록의 대표가수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조동진', '들국화', '따로또같이', '하덕규', '강인원' 등 당시 핵심 포크 음악인들의 콘서트 때마다 장필순의 코러스는 공연에 빠져서는 안 될 정도로 중요했다. 지금은 김현아, 김효수같은 코러스의 탁월한 고수들이 국내 모든 가수들의 노래 코디네이터가 되어 음악을 완성시켜주고 있는데 당시는 단연코 장필순을 꼽을 수 있었다. 공연뿐 아니라 녹음실에서도 그녀의 듀엣 파트너(소리두울 멤버) 김선희와 같이 불러주는 코러스가 입혀지면 곡의 완성도가 높아지며 안정감이 들었다. 마치 흙과 비료가 잘 섞인 영양분이 가득한 봄 밭의 토양처럼 잘 자랄 것만 같은 신곡에 대한 기대로 가수들은 그녀와 함께하는 녹음실에서의 시간들을 행복해 했다.
 
노래에 있어서 그녀의 감성은 상당히 섬세하고 다양해진다. 노래 멜로디만 그려져 있는 홑껍데기 악보만을 던져주었는데도 스스로 대위화성의 절묘한 음들을 엮어내며 꾸며주는 그녀의 소리 라인으로 인해 풍부해지는 노래들은 원래 작곡된 의도를 훌쩍 뛰어넘는 변신을 하게 된다. 그런 그녀의 소리 다듬기는 상당한 음악적 철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 자신도 어떤 노래든지 자신의 코러스가 입혀지면서 그 노래의 느낌이 바뀌어져 가는 변화에 절정의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하니 장필순, 그녀는 초감각적인 노래 코디네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초감각적인 노래 코디네이터 장필순

그녀의 입담은 아주 유명했다. 음악 선후배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선 그녀가 풀어놓는 Y당, 난센스, 콩트 및 각종 개그로 인하여 모두들 포복절도했다.

그녀의 말에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발표 후 한국의 샤데이라고도 불렸던 그녀의 과거 별명은 봉천동 화자엄마, 봉춘이, 진개미 등 실로 다양했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유익종 형이 함께하는 자리에선 봉춘이 엄마의 입담이 날개를 단 듯이 더욱 활발해진다. 익종이 형을 말하자면 포크 음악인들 사이에선 개그 교장 선생님 격이고 그녀는 교감 선생님 격이니 두 사람이 함께 자리한 곳에서는 배꼽을 잡고 모두들 초긴장 상태가 되어야 한다.
 
1980년 중반 쯤, 바쁜 도시생활에 얽혀 일상의 사이클이 서로 다르게 돌아가는 바람에 한동안 나는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한여름 어느 날, 버스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느새'에 설마 봉춘이 엄마가? 하며 신기해서, 또 한편 밀려드는 반가움에 귀를 쫑긋 세워 노래를 끝까지 듣다가 내릴 곳을 놓쳐 당황하며 황급히 버스에서 내린 적이 있었다. 무명시절 나는 늘 왕복 버스비만 챙겨 집에서 나왔던 터라 버스를 갈아타고 되돌아가자면 집에 갈 버스비가 없어지는 상황. "어느새~"를 중얼거리며 할 수 없이 찌는 더위를 참고 지나쳐 버린 세 정거장 쯤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그녀는 확실히 그저 가수라기보다는 인생을 노래로 호흡하고 실감하며 살아가는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그녀의 유머 속에는 그녀만의 삶의 고락, 음악적 고통이 들키지 않게 깊숙이 자리잡고 앉아 그녀를 성숙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선배 음악인들에게 평소 "오빠!" 하다가도 문득 "야 임마! 자식이..." 하며 유머를 퍼부어댔던 그녀는 이제 중년의 원숙한 가수로 심지어 아이돌 여자 가수들에게까지도 존경을 받으며 제주도의 바닷 바람같은 유유자적한 뮤지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장필순 어느새 나의외로움이널부를때 내일이찾아오면 여성포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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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공연연출가, 기획자로 활동해온 대중 예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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