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4 07:14최종 업데이트 24.03.1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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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성평등의 시선으로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길 바라는 유권자의 DM ⓒ 오마이뉴스

 
"일·가정 양립이라는 이 시대의 너무나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엄마만 희생하면 돼요. 남성은 (돌봄 노동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거는 늘 주변 여성의 일이었거든요. 왜냐하면 한 번도 여자들이 파업을 한 적이 없어요. 이 돌봄 노동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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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된장국>, <KBS 시사기획 창>, 신성은 님 인터뷰 중에서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을 쓴 신성은 작가는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이다. 그녀는 암 투병 중인 딸을 간병하기 위해 퇴사했다. 돌봄을 전담하며 느낀 고통을 드러내며 신 작가는 말한다. 이것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부부 모두가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노동환경,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윤석열 대통령은 말한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윤 정부는 여가부를 해체하고 인구부로 통합시켜, 이를 저출생 정책의 컨트롤 타워로 삼겠단다. 여가부 업무를 인구부에서 다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여성을 단순히 '아기 낳는 그릇' 정도로 보는 것 같아 심히 불쾌하다. 마치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정책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공공연한 선언처럼 보인다.


민주당 역시 놀라울 정도로 성평등 의제에 관심이 없다. 정부에서 여가부 폐지를 추진하는 동안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저출생 대책에 대해서는 앞 다퉈 현금성 지원을 약속한다. 신혼부부한테 1억 원을 대출해주고, 애를 하나 낳으면 이자 감면을, 둘 낳으면 5000만 원을 원금에서 탕감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자궁을 거래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다. 아이 둘에 빚 5000만 원을 탕감해준다면 아이 하나당 2500만 원이라는 말인가? 그 돈 보고 애를 낳기도 힘들지만, 그 돈 보고 애를 낳아도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여야의 저출생 대책, 실효성은 있나
 

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이 70만 원을 버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면 본인의 생계를 걸어야 한다. ⓒ unsplash


임신과 출산의 주체는 여성이다. 아무리 인구 소멸이니 국가적 위기니 해도, 여성에게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보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성별을 떠나 어떤 동물이든 마찬가지다. 본인의 생존이 위협받는 환경에서 번식에 몰두하는 동물은 없다.

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이 70만 원을 버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면 본인의 생계를 걸어야 한다. 여성은 임신·출산·육아 사이클을 거치는 동안 임금 노동시장에서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한다는 제도가 실제로는 '여성'만의 일·가정 양립을 유도하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단추는 출산휴가부터 시작된다. 출산휴가는 여성에게만 90일이 의무적으로 부과된다. 남성에게는 10일이 주어진다. 여성의 9분의 1이다. 육아휴직은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다지만 실제로 이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의 70퍼센트는 여성이다.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 역시 사용자의 90퍼센트가 여성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돌봄의 핵심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여성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돌봄의 책임자가 되어 함께한 시간에 비례해 육아 지식과 경험이 늘어난다.

반면 남성에게는 보조자로서의 시간이 허용된다. 출산휴가가 10일밖에 주어지지 않고, 육아휴직을 쓰려고 해도 돌봄을 남성의 몫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사용하기가 더 어렵다(육아휴직을 쓴 여성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초기 경험의 차이는 관계의 차이로 나타난다. 남성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으므로 여성만큼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다소 어렵다. 일·가정 양립제도는 남성에게서 부성을 체계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또한 일·가정 양립제도는 여성에게 모성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과로를 조장한다. 출산휴가부터 그렇다. 생후 100일까지 두 시간마다 깨어 울고 밥 달라고 보채는 아기를 여성 혼자 돌보는 것은, 교대 근무자 없이 24시간 근무를 홀로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산후우울은 실제로 수면박탈에 의한 결과라는 연구가 있다. 직장에서는 육아휴직, 육아기 단축근무 등을 쓸 수 있는 만큼 집에서 돌봄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쓸 것을 요구받는다. 매년 통계청 조사에서 맞벌이를 할지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가사노동을 3배가량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배경이다.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동등하게 일하기를 원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생계부양자다. 직장에서는 동일 임금을, 가정에서는 동일 노동을 바란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 순간, 직장에서 임금이 낮아지거나 경력이 단절될 각오를 해야 하는 반면 집에서 무급으로 가사노동을 하는 시간은 늘어난다. <82년생 김지영>의 삶을 목격한 여성들은 생각한다. '아, 내 커리어를 지키려면 애를 낳지 말아야겠구나.' 낮은 출생률은, 엄마가 된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아닐까.

아기 엄마가 되면 돌봄 파업을 할 수가 없다. 엄마가 돌봄을 그만두면 그 뒤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아기 엄마가 되지 않음으로써 돌봄 파업을 벌인다. 정부에서는 여가부를 없애 출생률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나는 출산하지 않은 여성들이 내게 엄마가 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출생률을 떨어뜨린 여성들이 아니었더라면 정부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육아의 사회화를 위한 인프라를 이나마도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성평등의 시선으로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야
 

올해 초등학교 취학아동 숫자 30만명 대로 떨어졌다 저출생 현상이 이어지면서 불과 2년 뒤인 2026년 우리나라 초·중·고교생 수가 500만명을 밑돌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30만명대로 떨어진 초등학교 1학년 취학아동 숫자는 2년 만에 20만명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12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24~2029년 학생 수 추계' 자료를 보면 전국 초·중·고교생 수는 올해 513만1천218명에서 2026년 483만3천26명으로 줄어 500만명 선이 무너질 전망이다. 사진은 13일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 연합뉴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일·가정 양립은 왜 아빠에게는 요구되지 않는가? 아니, 왜 아빠들은 이를 요구하지 않는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육아가 여성 운동의 의제인 것 자체가 문제적이다. 육아는 남성의 성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살 난 아기를 키우는 아기 엄마로서 격하게 동의하는 바다.

정부는 그간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0조를 투입(2006년~2021년)했으나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에 우려한다. 그 돈을 부부가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동등하게 사용하는 데 써보라. 성별에 관련 없이 출산휴가 3개월을 쓸 수 있도록, 육아휴직은 최소 6개월 이상씩 쓰도록 의무화해 보라. 남성이 여성과 똑같이 돌봄의 권리를 보장받고 그 책임을 발휘할 때, 직장과 가정 내의 성평등이 형식적으로나마 실현될 기미를 보일 때, 그리하면 한국사회에서 2세를 낳을지 고민해 볼 것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남녀 모두의 요구다. 2023년 직장갑질 119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저출생 대책으로 꼽은 1위는 '부부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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