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0 20:35최종 업데이트 24.03.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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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있지(ITZY)가 2월 20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코카-콜라 한정판 프로젝트 제품 '제로 한류(K-Wave)' 글로벌 출시 행사에서 제품을 소개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겉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태평하다. 국력은 어느 면으로나 세계 10위권에 들고, 'K'라는 이름을 단 문화는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공공기반과 편의시설, 통신 서비스망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이다.

그러나 화려한 현상 뒤 삶의 질과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실상이 드러난다. 일부러 나쁜 것만 보려는 과장이나 엄살이 아니다. 전쟁의 위험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한반도는 벌써 시작된 올해 한미연합훈련으로 돌발적 상황에서 핵전쟁 위험까지 그 무엇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우리 정부에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일방적 추종, 일본에는 면죄부를 남발하며 한반도에 신냉전 체제를 쌓아 올린다.


급격한 기후 위기의 결과로 계절과 날씨가 크게 변하고 다음 세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생태계가 위험천만하지만, 정부의 대응이나 기성세대의 인식은 한가하기만 하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은 군이나 면 단위는 물론 웬만한 시(市)도 소멸을 염려할 수준이다. 광역시에 살아도 공부하거나(학업), 아프거나(병원), 일하려면(취업) 수시로 서울을 드나들거나 이주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남녀 사이의 임금 격차도 여전하다. 택배나 대리운전으로 어렵게 몇백만 원을 벌어도, 부동산이나 금융소득으로 앉은 자리에서 수천, 수억 원을 번다는 소리를 들으면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

그 결과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율이 해마다 최저점을 찍고 있다. 2021년 현재 전 세계 합계출산율이 1960년대의 절반인 2.3명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58명이지만, 우리나라는 2018년 1명 이하로 떨어진 후 매년 더 바닥을 찍으며 2023년은 0.72명이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가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 세계 4위다. 한해에만 1만 3000명, 매일 3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대통령 임기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경남 사천시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을 찾아 한 건어물 매장에서 아귀포를 시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는 바로 이런 난제를 해소해 국가와 사회가 나갈 길을 밝히고, 국민에게 살 의욕을 심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원수이면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인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난제를 풀어내기는커녕 스스로 문제를 더욱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그는 작심한 것처럼 보인다.

의사 파업에 대한 강한 대처로 뜻밖의 반짝 지지를 확인한 듯 총선을 앞두고 해당 부처도 검토한 적이 없다는 건설 및 국토개발 사업, 청년 지원계획을 거침없이 남발하고 있다. 세수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재벌과 금융, 부동산 부자들은 세금을 깎아주는가 하면 그린벨트 해제를 내세우고 재생에너지 대신 화석연료 정책으로 퇴행하는 등 기후 위기 대책은 아예 관심 밖이다.

반면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조를 적대시하고 탄압하며 안전과 복지를 후퇴시키고 있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더 망가지고, 한반도가 얼마나 더 위험할지 두렵기까지 하다. 

둘러보면 한국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도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최근 10년여 사이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극우 정치가 크게 힘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만큼 세계와 한국에 영향력이 큰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 여부가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재선에 실패하면서 의회 폭동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았던 그가 4년 만에 다시 적지 않은 당선 가능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미국은 제조업 중심의 전통적인 블루칼라 산업을 중국 등 주로 아시아 신흥국에 떼어주고, 금융, 보험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대책 없이 내 던져진 전통산업 노동자들의 불만은 쌓이고,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큰 위기에 빠지면서 정치권 전체에 불만이 폭증했다.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공화당)이나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은 속수무책이었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대테러 전쟁을 통해 관심을 밖으로 돌리며 불만을 애써 봉합하려 했다.

이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했다. 중국과 대립하고,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을 귀환하게 하며, 진입장벽을 높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등 철저히 미국 중심주의를 내세웠다. 경제적 효과는 미미했지만 정치적 효과는 대단했다. 그는 반대층을 설득할 마음이 없었기에 지지층에 집중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중도층에게도 미국을 위해 '한다면 하는 사람'으로 각인되며 다시 11월 대선을 기다리고 있다.

총선에 큰 지각변동 일어나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29일 앞둔 12일 인천 미추홀구 한 유치원에서 인천시선관위 주최로 열린 '4월 10일 엄마 아빠 투표해요' 어린이 모의사전 투표체험에서 한 어린이가 투표함을 들여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어떤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대다수 국민은 갈수록 암울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개선하고 극복할 정치세력을 찾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기대를 한 몸에 모아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정부에 국회와 지방의회까지 몰아주었지만, 집값 폭등과 무능하고 위선적 운동권 이미지를 뒤집어쓰면서 정권을 잃었다.

많은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이지만, 대안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은 반사이익도 챙기지 못했다. 이럴 때 정치인이 내세우는 것은 포퓰리즘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노동, 연금, 의료 분야를 개혁 과제로 설정해 대화를 거부하고 철저히 밀어붙였다.

특히 이번 의사 파업에 대한 강한 대처로 힘을 얻은 그는 트럼프처럼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대통령' 이미지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투톱이 되어 총선 승리는 물론 정권 연장까지 꿈꾸려 할 것이다. 미국도, 한국도 극우적 포퓰리즘 정치를 막아낼 비결은 파당 정치, 전쟁 정치, 승자독식 정치가 아닌 정책과 상식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정상 정치의 회복일 것이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의 참회와 변화를 기대한다. 정권과 의회, 지방의회까지 몰아준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것을 깊이 사죄하고 크게 변해야 한다. 그러나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을 불과 며칠 남겨둔 상황에서 원론적인 주문만 할 수는 없다.

개혁진보 정치의 맏형을 자임하는 민주당은 이번에도 몇몇 정당과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다가 떴다방처럼 선거 때만 반짝 손잡는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이 아니라 우당(友黨)의 약진에 진심으로 힘을 실어 주는 개혁진보 연합정치로 국민의 마음에 호소하면 좋겠다.

그러나 항상 당면한 정치 현실만 전부인 정당과 정치인이 스스로 각성하여 자기 목에 방울을 달며 자발적으로 정치를 개혁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유권자의 표심으로 정치개혁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까지와 같이 정당과 기성정치인이 자신의 당선과 승리를 쉽게 예측할 수 없도록 끝까지 알 수 없는 판세가 계속되고, 총선 결과 양당 중심 체제에 안주하여 더는 안전히 정치할 수 없는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신명 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민심과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다 짜놓아 공감되지 않는데 답을 찾아내라는 강요 때문은 아닐까? 이제는 국민이 출제자가 되어 정치권에 한국 사회의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더 좋은 문제를 낼 수는 없을까? 이번 총선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 어쩔 수 없어서라도 정치개혁에 나서게 되는 파격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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