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6 20:29최종 업데이트 24.03.2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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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열린 열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시절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탈원전으로 망가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여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결론적으로는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것일뿐, 딱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또한 세상을 구할 신기술인 양 SMR(소형모듈형 핵발전소) 연구개발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강남에 SMR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 심상정 후보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또한 이재명 후보가 던진 'RE100(재생에너지100%)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는 'RE100이 뭐죠?'라며 되묻고, EU 택소노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해 논란을 빚었다.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 김보성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전기본)에는 2036년까지 원전을 비중 22%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38%로 늘리겠다는 계획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를 완전히 정반대로 돌려놓았다. 원전 비중을 35%로 10% 이상 증가시키고, 재생에너지는 30%로 줄여 10차 전기본을 확정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총 26기의 원전이 설치되어 있고, 영구정지 2기, 건설 중 2기, 건설 예정 2기를 포함하면 총 32기의 원전을 갖게 된다. 여기에 더해 올해 발표 예정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 원전 3~ 4기의 추가 건설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으로 원전 최강국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울진 지역에 건설 예정인 신한울 3·4호기까지 생각하면, 모두 9기의 원전이 모여 있게 되어, '원전 밀집도' 세계 최대가 될 것은 확실하다.


원전 밀집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내 가동 중인 원전 총 24기 중 고리2(2024), 고리3(2024), 고리4(2025), 한빛1(2025), 한빛2·월성2(2026), 월성3·한울1(2027), 한울2(2028), 월성4(2029), 한빛3(2034) 11기의 원전이 줄줄이 설계수명만료가 다가와 있다. 원전 비중을 확대하려면 필연적으로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잘못된 탈원전 정책을 바로잡는다며,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원자력발전소의 계속운전 신청 시기를 최대 5년 앞당기기로 했다. 제도가 시행되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수명 연장 가능성이 있는 원전이 현행 10기에서 최대 18기로 늘어난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 2월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 웹사이트에 '원전 사고·고장' 정보로 분류돼 있는 모든 사건 보고를 분석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리 1호기'에서 1979년 1월24일 증기발생기 수위 저하로 원자로와 터빈발전기가 정지한 사건부터 2023년 12월13일 '한빛 2호기' 출입통제건물 전열기 제어판이 화재로 손상된 사건까지 45년간 원자력 안전규제 당국에 보고된 사건은 모두 776건이라고 한다.

원자력 사건 등급은 경미한 고장인 0등급부터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7등급까지 8단계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1등급은 '기기 고장, 종사자의 실수, 절차의 결함으로 인하여 운전 요건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 2등급은 '사고를 일으키거나 확대시킬 가능성은 없지만 안전계통의 재평가가 요구되는 고장'으로 정의된다.

녹색전환연구소는 국내 원전에서 고장 발생이 1990년대 이후 전체적으로 감소했지만 '운전 요건을 벗어난 비정상적 상태' 혹은 '안전계통의 재평가가 요구'되는 1·2등급 고장은 증가했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하며, '원전의 노후화'가 1·2등급 고장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비록 중대사고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원전 수명연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정작 가장 중요한 원전 안전에 관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일례로 가동원전의 고장과 사고 최소화를 위한 혁신 예측 기술과 피해 최소화 대응 연구개발 등의 안전 예산을 30% 이상 삭감했고, 원전 안전 부품 기술개발 관련한 예산은 94%나 삭감시켰다.

현재 원전 부지마다 고준위핵폐기물이 꽉 차있어,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에 관한 연구와 공론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더 이상 원전을 가동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이는 원전 확대 정책을 위해 원전 지원 관련 예산을 15배 가까이 증액한 상황과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다. 원전 가동 정지 같은 안전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SMR 개발 등 원전 안전에 대한 부분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원전 정책,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가는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이 2022월 6월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생산현장(원자력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23년 세계 원자력 산업 현황 보고서(WNISR)에 따르면, 원전 투자 규모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꾸준히 확대되다가 그 이후로는 증감을 반복하며 연간 500억 달러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투자는 태양광 3000억 달러, 풍력 약 1700억 달러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가운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신규 재생에너지 보급 용량이 507GW에 달하며, 이는 2022년 보급용량보다 50%가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2025년 초에는 역사상 최초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화력 발전량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원전 건설 추이를 보면, 1979년 최고치(234기)를 찍은 후에 급격히 감소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늘어났으나,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전 세계 원전 발전량 비중도 1996년을 기점으로 계속 줄어들어 2022년 9.2%를 기록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차 에너지 대비 재생에너지 비율(2.1%)이 가장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목표는 낮추고 원전 발전량 비중 목표는 높였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그 어느 나라보다 파격적인 에너지 전환 목표를 수립하고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기후위기, 원전은 대안이 될 수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참사 13주기인 지난 11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가 "탈핵, 안전, 기후정의 투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보성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각 국가들은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최악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산업화 이후 지구 기온의 상승 폭을 이번 세기말까지 1.5도씨 이내로 억제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기후과학 자문단에 따르면, 현재 지구 기온의 상승 폭은 이미 1.4도씨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기에 축적되어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의 온실가스는 주로 화석 연료의 생산과 연소에서 발생하고, 이미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인 가뭄, 홍수, 폭염, 혹한, 산불 등 기후재난이 심각해졌고, 빙하와 영구동토층에 얼어있는 메탄층이 녹아 나오면 지구온난화는 예측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 이에 '1.5도 목표'는 기후위기를 막을 마지막 기회가 될 수밖에 없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각국 정부는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설정했지만, 이를 모두 지킨다고 하더라도 2100년에는 기온 상승이 최소 2.8도씨에 달해 수십억 인구와 지구 생태계에 재앙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원전은 일단 석탄이나 가스 발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 보인다. 그래서 기후위기의 대안이 원자력 발전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으나, 그 속 내용을 살펴보면 원전은 기후 위기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청정에너지도 아니다. 연료에 사용되는 우라늄 채굴부터, 핵연료로의 가공과정, 마지막 고준위핵폐기물 영구 처분까지 생각하면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원전 노동자들이 입던 차폐복 등 중저준위 폐기물은 300년을, 사용후핵연료 같은 고준위핵폐기물은 방사능이 낮아지는데 10만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동안 지하수 오염 가능성 등이 없는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원전을 운영하는 나라는 모두 고준위핵폐기물 처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준위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을 운영하는 나라는 현재 핀란드밖에 없을 정도다.

그리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원전 사고는 삶의 터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만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세계 각국은 원전의 비중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핵 진흥 정책은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며 기후위기와 경제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 있다. 2023년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8.2%로 이는 25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는 2002년에 438기였지만, 2023년에는 407기로 줄었으며, 지금도 새로 가동되는 원자로보다 영구 폐쇄되는 원전이 더 많은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은 태양광과 풍력에 비해 온실가스 순배출량 감소에 대한 잠재적 기여도는 더 적고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위기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은 원전의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2018년 기록적 폭염으로 프랑스에서는 냉각수로 사용하던 강물 온도가 지나치게 상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페센하임 원전 4기를 가동 중단시킨 적이 있다. 핀란드 로비사 원전도 냉각수로 사용하던 발트해의 수온 상승으로 원자로 출력을 낮춘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폭염 등의 기상 이변으로 해수 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원전의 출력을 줄이거나 가동을 중단해야 할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해양 생물로 인해 원전이 멈추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실제로 해양 생물 '살파' 때문에 두 차례나 한울 1,2호기의 가동이 중단된 적이 있다.(2021.3.22/4.6) 살파가 원전의 취수구에 대량 유입되며 가동이 중단된 것이다. 살파는 독도 주변과 남해에 서식하는 대형 플랑크톤의 일종으로, 해수온도가 높아질수록 더 쉽게 나타난다.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이 심화될수록 살파와 같은 해양 생물이 유입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원전, RE100,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감도 ⓒ 용인시

 
윤석열 정부는 지난 1월 총 622조 원이 넘는 민간 투자를 통해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클러스터를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필요한 전력 규모를 감당하려면 10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신규원전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산업부는 2050년 완공 목표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LNG 가스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동해안의 원자력발전소 등의 전력을 장거리 송전선로를 신설하여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아마존, 애플, 구글, BMW, GM, 등 다국적 기업들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RE100 채택을 필수로 선택하고, 납품 업체에도 RE100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연합의 경우, 비관세 무역장벽의 하나인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범 실시하고, 2026년부터 철강 등 6개 품목은 탄소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가 명운이 걸렸다고 주장하는 용인반도체 클러스터에는 RE100이 없다. 반도체를 생산한다고 해도 화석 연료 기반과 원전으로 생산한 전력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수출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에너지정책으로는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정책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형성된 대량생산과 소비, 무한 성장 중심의 사회 시스템 전체를 바꾸어야 하는 사회적 문제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기후 적응과 정의로운 전환 방안이 촘촘하게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 등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세심한 정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오로지 '원전'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정말 답답할 따름이다.

에너지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지금처럼 원전만 앞세우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과 2050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현실로 만들 수 없다.

원전은 기후 위기의 대안이 아니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진흥 정책은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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