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9 09:48최종 업데이트 24.05.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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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눈물의 여왕>의 한 장면 ⓒ tvN


최근 인기리에 끝난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보셨나요? 재벌 집 딸인 홍해인(김지원 분)이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백현우(김수현 분)와 결혼해 이혼의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러브스토리입니다. 높은 시청률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극 중에서 홍해인은 자신을 짝사랑하던 윤은성(박성훈 분)이라는 인물에게 자신이 경영하던 '퀸즈 백화점'을 빼앗깁니다. 윤은성은 홍해인을 돕는 척 접근해 '퀸즈 그룹'의 지분을 모으고 주주총회를 열어 홍해인 일가를 내쫓습니다. 그리고 홍해인과 뜻을 같이 하는 주인공 백현우를 부정행위 혐의로 대기 발령시킵니다.


사실은 백현우를 내쫓고 싶은데 백현우가 제발로는 나갈 것 같지 않으니 모욕감을 줘서 내보내려 한 것인데요. 백현우는 제 일을 빼앗긴 채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벽을 바라봅니다. 동료들의 수군거림 속에 묵묵히 모욕을 견디면서 말입니다.

노동 현장에서도 이러한 일은 자주 벌어집니다.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드는 노동자를 회사에서 내보내기 위해서이지요. 사실 우리 노동시장에서 해고의 요건은 좀 엄격합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정당한 사유'에 대해 법이 세세하게 정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해고와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의 해석에 맡겨집니다. 법원은 사회 통념상 그 직원과는 더 이상 근로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단합니다.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통해 약속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와 노사 간에 신의를 지키고 성실하게 일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용접일을 담당하기로 하고 용접 경력자를 뽑았는데 직원이 용접을 할 줄 모른다면 사장님은 정당하게 그 직원을 해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각과 결근이 빈번하고 회사의 업무 지시를 거부하는 등 직장 질서를 어지럽힐 경우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됩니다. 그 외에는 경영상 도저히 인력을 감축하지 않고서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울 경우 경영상 해고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해고의 요건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해고 사유인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다"라거나 주관적으로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형식적으로도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의 사유와 일시를 기재해 노동자에게 최소 30일 전에 서면으로 줘야 합니다. 만약 해고를 서면으로 하지 않으면 해고는 무효이며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하지 않으면 30일분의 1일 통상임금을 '해고예고 수당'으로 줘야 합니다.

이처럼 사장님들 처지에서는 대놓고 해고할 때 감당해야 할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사장님들은 해고에 앞서 노동자가 스스로 지쳐 퇴사하기를 바랍니다. 평소 하던 업무를 빼앗고 허드렛일을 시키거나,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고립시키는 등 모욕감을 줘 스스로 지치게 만듭니다.

최근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해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처럼 고용조정 대상자의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면서 노동 현장에서는 분쟁이 자주 발생합니다. 객관적인 규정과 기준에 근거해 노동자의 근무태도를 평가하면 해고할 정도는 아니기에 꼼수를 쓰는 것이지요.

실제 부당한 인사 조처와 관련된 분쟁을 다루는 노동위원회의 자료를 살펴보면 사용자로부터 부당한 처분을 받은 노동자가 신청한 구제신청 건수가 2023년 기준, 약 1만 8천 건으로 2022년의 약 1만 4800건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습니다. 사장님이 내린 부당한 인사 조처 통보를 노동자가 인정하지 못해 분쟁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해고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장님이 퇴사를 압박하는 이런 행동이 정당할까요? 상담사례에서 어느 제조업 사업장 사장님은 사직을 권고한 노동자가 사직을 거부하자 대기 발령을 시켜 일을 빼앗았습니다. 부당한 대기발령이란 지적에 그는 "휴업수당을 기준으로 평균임금 70%를 줬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내게 모욕감을 줬어

그러나 사장님의 이와 같은 행위는 명백하게 불법행위입니다. 노동자가 고용 관계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나아가 기술을 습득하고 능력을 유지·향상하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등 인격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사용자는 고용관계에서 노동자가 일을 통해 인격을 실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신의칙상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렇기에 사장님이 노동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근로계약시 약속한 일을 빼앗고 허드렛일을 시키는 등 모욕감을 주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법원도 판례를 통해 이러한 경우 노동자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했다며 사용자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해 손해배상의 의무가 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관계의 우위에 있는 사장님이 나의 일을 빼앗고 대기 발령을 내려 고립시킬 경우 노동자로서는 모욕감에 당황스러워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워하던 동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월급을 주는 사장님 눈치를 보느라 내 편을 들어주기 어렵습니다.

나에게는 격려를, 회사에는 당당하게
 

2023년 7월 4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와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서울지부가 서울시청 앞에서 촉탁직 부당해고 구제신청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사용자의 사직 요구에 대해 거부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의 사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계속 일을 하겠다'라는 내용으로 내용증명을 발송하거나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전자메일, 휴대전화 메신저 등으로 의사를 표시하면 좋겠습니다.

노동자가 회사의 사직 강요를 계속하면 회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근무태도를 트집을 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때는 출퇴근 시간과 업무수칙을 잘 지키며 관리자의 부당한 지시가 발생할 경우 이를 기록하거나 대화 내용을 휴대전화 등으로 녹취해 두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참여하는 대화 내용을 녹취하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퇴사를 강요하는 회사의 압박에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어려움에 부닥친 자신에게는 내 탓이 아니라고 격려해 주세요. 상담하다 보면 사직을 강요받게 되는 경우 회사에 불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모욕감과 당황스러움으로 자신을 탓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렇게 모욕감에 스스로 회사를 나가는 것이 회사가 의도하는 겁니다.

반대로 부당하게 내일을 빼앗고 모욕감을 준 회사에는 내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장님이 사직을 강요할 경우 이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관할 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기발령 등으로 업무를 빼앗는다면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노동 상담의 경험상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피해 노동자가 회사의 부당한 사직 강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사장님도 '아~ 만만한 줄 알았는데 귀찮고 힘들겠구나'라고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피해 노동자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여러분이 피해자가 된 경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노동 상담'이라고 검색해 보세요. 직장갑질119,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법률상담소, 지자체의 노동권익센터 등 여러분 주위에 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힘들고 지친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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