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 사는 사람들,
46명에게 물었다

AR icon

처음으로

경제21.12.27 14:01최종 업데이트 21.12.27 14:01

해가 지면 집이 되고, 해가 뜨면 일터가 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7년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36만여 가구를 조사했는데 이 중 18만여 가구는 일터를 거주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일터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오마이뉴스>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 편집자의 말

집이 아닌 일터 일부 공간에 거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만약 직장과 거주공간을 잃는다면 어디에 머물 계획입니까?

코로나 사태 이후 직장(자영업의 경우 사업장)과
거주 공간을 잃을 걱정을 한 적이 있습니까?

거주하는 곳에서 불편한 점은 무엇입니까? (복수 응답)

현재 거주하는 공간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거주 공간의 불편으로 인해 이직 혹은 이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현재 거처에서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복수 응답)

고시원보다 많은 일터 거주자들, 직장 잃으면 살 곳도 사라져

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일터에 사는 사람들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많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7년 실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실태 조사를 보면 조사대상 총 36만9501가구 가운데 ‘일터 등 기타’ 가구는 18만1055가구(49%)로 나타났다. 이는 고시원 가구(15만1495가구) 수보다도 많다. 주거 취약계층에서 가장 비중이 높지만,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도시연구소와 함께 지난 10월부터 12월 초까지 수도권 내 일터 겸 거주지를 조사했다. 10월부터 11월은 과거 주거를 주제로 한 논문 등에 적시된 지역을 중심으로 1차 현장 조사를 했고, 12월에는 실제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거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1차 현장 조사 결과, 서울과 인천·경기 지역 내 일터 겸 거주지 150곳을 확인했다. 실제로 일터로 활용되면서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 73곳, 인천 50곳, 서울 27곳이었다.

거주 유형별로 보면, 영세한 식당과 숙박업소 내 쪽방 형태로 된 주거가 65곳으로 가장 많았다. 공장과 주유소 등 작업장 내 일부 공간에서 거주하는 형태는 34곳, 비닐하우스 및 가건물 형태도 14곳에 달했다. 절이나 교회 등 종교시설도 24곳이었으며, 기숙사 형태는 2곳이었다. 기타(사업장 폐업 및 개조)는 11곳이었다.

일반 횟집과 중식당, 슈퍼마켓 등 요식 사업장의 경우, 영업장 한쪽에 공간(쪽방, 거실 등)을 마련해 거처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동차정비업소와 주유소는 사무실 지하층이나 기숙사 형태의 거처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농장 등 농축산업의 경우 주로 판넬식 가건물과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형태의 거처였다.

식당·숙박업소 내 쪽방이 제일 흔해…
공장 내 공간 거주도 많아…
이들은 왜 여기서 살까

해당 공간 거주자 중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은 46명이다. 응답자들은 대부분 별다른 거주지를 구하지 못해 일터에 머물고 있었다. 일터에 거주하는 이유에 대해 ‘마땅한 거주지가 없다’는 응답이 43.5%(20명)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일터에서 숙식을 하는 것이 편해서’라는 응답이 30.4%(14명)였고, ‘일터가 외딴 곳에 있어서’ 15.2%(7명), ‘주거비 절약’은 6.5%(3명)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많은 사람들이 주거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면서도 마땅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홈리스 위험 계층과 비슷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는 게 한국도시연구소 측의 분석이다.

응답자 중 절반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주거지 상실의 불안감을 호소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직장을 잃을 걱정을 했느냐는 질문에 43.4%(20명)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거주 공간을 상실했을 경우 대체 거주지가 있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65.2%(30명)는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13%(6명)는 정부와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고, ‘고시원 등 저렴한 주거 물색’과 ‘주거가 제공되는 다른 직장 구함’이 각각 8.7%(각각 4명)를 차지했다. 노숙인 시설에 들어갈 것이라는 응답자(1명)도 있었다.

직장 잃으면, 대체 거주지가 있는가?…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 65.2%

일터에 있는 주거지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낮았다. 거주 공간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응답자(아니다+전혀 아니다)는 41.3%(19명)였고, 거주 공간 불편으로 인해 이사(이직)을 고려했다는 응답자도 39.1%(18명)으로 조사됐다.

거주하는 곳의 불편함(복수 응답)에 대해 ‘일터와 주거지가 분리되지 않아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36.9%(17명)로 가장 많았고, 화장실과 샤워실 등 위생 시설 부족을 꼽는 응답자도 34.7%(16명)에 달했다. 이밖에 냉난방이 잘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32.6%(15명)이었고, 곰팡이와 벌레 등 비위생적인 환경을 꼽은 경우는 21.7%(10명)로 나타났다. 이어 잦은 초과근무 15.2%(7명), 좁은 실내공간 10.8%(5명), 부엌 등 조리공간 부족 8.6%(4명), 소음(1명)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모두 한국인이었으며, 대부분 60세 이상 고령자였다. 응답자 46명 중 32명은 60세 이상 고령층이었고, 41세 이상 60세 이하는 7명, 30~40세는 3명이었다.

전문가들은 일터 내 거주 공간의 문제가 단지 외국인노동자들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참여한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그동안 일터 주거 공간의 문제는 주로 외국인노동자들의 문제로 인식돼왔지만, 이번 조사에선 꼭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열악한 주거 환경의 구체적인 실태와 이들이 주거 불안의 고민이 있다는 점을 밝혀낸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사 더보기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AR icon 처음으로

관련 기사

다른 일터들 살펴보기 AR icon

목공소 가건물

목공소 가건물

교회 옥탑방

교회 옥탑방

제조공장 기숙사 1

제조공장 기숙사 1

제조공장 기숙사 2

제조공장 기숙사 2

굴 양식장 컨테이너

굴 양식장 컨테이너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