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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왔습니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 제대로 된 정보는 부족하죠. 여행자들만 바글바글한 식당 말고 지역민들이 즐겨찾는 곳을 알고 싶은데, 지인도 없고요.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만 아는 진짜 맛집, 진짜 볼거리 정보를 모아봤습니다. 각 지역에 사는 시민기자들이 알려주는 '알짜 정보' 총집합. 올 여름 휴가에선 제대로 즐기고 오세요. [편집자말]
해바라기 언덕. ⓒ 이준수
동해바다는 여름이 시끄럽다.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이야 사시사철 보고 사는 게 파도라지만 외지인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지금 바다에 갔다가는 선글라스 끼고 낯선 말투 쓰는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올 게 분명했다. 삼척 해변 새천년도로를 달리다가 핸들을 태백으로 꺾었다.

내게 태백은 그냥 춥고 시원한 곳이었다. 태백으로 출장 갈 일이 종종 있었는데, 동해에서 출발한 차가 해발 722미터 통리재를 넘어서면 다른 대한민국이 거기 있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산뜻했다. 모기가 드물었고, 여름은 늦게 왔다. 38번 국도 타고 무작정 태백으로 갔다. 행선지도 없이 태백 시내 쪽으로 차를 모는데 3분 간격으로 같은 현수막이 등장했다.

'태백 해바라기 축제'

이런 축제도 있었나? 아내와 내가 각각 동해, 삼척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한 번도 이 축제를 들어보지 못했다. 교직은 방학이 있고 빨간 날이면 다 쉬는 직종이라 주변에 어지간한 쉼터는 동료들이 꿰고 있다.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축제, 호기심이 일었다. 태백 시내에서 내비게이션으로 '고원자생식물원' 찍고 액셀을 밟으니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똑똑! 주차장에 들어가려는데 누가 위험하게 자동차 유리를 두드렸다. 나무를 얼기설기 덧대어 만든 매표소에서 뛰어나온 진행요원이었다. 선불로 요금을 요구했다. 성인은 5000원, 학생은 3000원.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처럼 만 원으로 입장료를 지불하고 너른 공터에 차를 댔다. 오! 주차장 바로 옆, 간지러운 풍경이 나타났다.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꽃잎을 만져보니 봉오리가 막 터진 듯 물이 올라 싱싱했다. 사방이 뜨거워 만사 귀찮던 여름날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매표소 옆 메밀꽃은 소금을 뿌린 듯 화사했다. ⓒ 이준수
축제장으로 발길을 옮기자 시큼털털한 똥냄새가 코를 찔렀다. 염소 우리에서 풍겨오는 냄새였다. 철조망으로 울타리 두른 축사에는 흑염소와 흰염소 십여 마리가 쉬고 있었다. 바닥에는 먹고 남은 옥수수 몸통이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여느 동물원처럼 예쁘고 반듯하게 키우기보다, 집에서 키우듯 편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철조망 구멍 사이로 염소 등도 만져보고 풀도 먹여보았다. 새끼 염소 털이 한겨울 함박눈 색이었다. 눈부시게 고운 새 생명은 존재만으로 아름다웠다.

염소 우리 옆에는 닭과 칠면조, 거위가 살았는데 입구가 열려있어 새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염소에게 하듯 가까이서 관찰하려니 거위가 부리를 쳐들고 꽉꽉 짖었다. 집 지키는데 개보다 거위가 낫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유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사나운 성정이 꼭 골목대장이었다. 뒤뚱거리는 새끼오리 보려다 거위에 쫓겨났다. 호들갑 떨며 도망치는데 웃음이 터졌다. 세상에, 무릎 높이 만한 거위한테 혼쭐이 나다니!

염소와 거위. ⓒ 이준수
거위를 피해 도망간 작은 비탈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복작복작 살고 있었다. 좁은 게 한국땅이라 손바닥만 한 공간도 내버려두지 않고 작물이 심겨있는데, 여기서 소담하게 자라는 꽃들이 귀하고 예뻤다. 후두루둑 쌩~ 감상에 젖어있는 사이 조그만 털 뭉치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병아리와 성체의 중간 정도 돼 보이는 닭이었다. 지렁이며, 씨앗이며 자꾸 뭘 주워 먹으며 부리를 조아댔다.

"옛날 할머니 집 생각난다. 마당에 토끼랑 개가 있었는데, 똥오줌 냄새도 나고. (웃음)"

아이를 데리고 온 팀은 여지없이 동물농장에서 멈춰 섰다. 거위 조심하라고 알려줄 틈도 없이 꼬마 남자애가 당했다. 멀리서 보다가 큭큭거렸다. 동네에 짐승이랑 사람이랑 구분 없이 살던 시절에는 이런 풍경이 흔하지 않았을까? 우리 아파트 102동 아줌마는 애완 슈나이져에 옷 입혀서 안고 다니며 애기라고 부른다. 여기 동물들은 도저히 안고 다니기 싫을 만큼 쫌 더럽지만 타고난 본연에 가까운 삶을 산다. 지저분해도 자유가 낫다.

동물농장을 지나 축제장 초입에 들어서면 '해바라기 카페'가 있다. 커피 전문점은 아니고 구와우 마을 특산품인 각종 발효액과 한방차를 주로 판매한다. 소나무 지하토굴에서 숙성시킨 발효액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해바라기 밭에 들어서면 식음료를 구입할 만한 시설이 없으므로 먹으면서 축제를 즐기고 싶은 분들은 미리 구입하기를 추천한다.

해바라기 카페. ⓒ 이준수
카페 앞마당은 잔디가 깨끗하게 잘 깎여있다. 보드라운 클로버와 잔디 위로 사람을 형상화한 철제 조각품이 놓여있다. 군데군데 녹슬고, 빛바랬지만 자연스럽다. 카페 외부 스피커에선 FM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한여름에 어울리는 곡이라고 김태우의 '사랑비'가 나온다.

"내 사랑이 머리에 내리면~ 추억이 되살아 나고~"

후두득 떨어지는 소나기를 상상하며 '사랑비'를 흥얼거렸다. 축제를 위한 축제라기보다 누가 사는 동네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예술 감각이 충만한 주민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건강한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이 신선했다. 축제 수익으로 경제생활하고, 시골에 사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면 이 마을에 귀농하여 살아도 참 재밌겠다 싶었다.

FM 라디오가 들리는 카페 앞마당 조각공원. ⓒ 이준수
카페를 등지고 산등성이로 고개를 돌리면 본격적인 해바라기밭이 펼쳐진다. 작은 태양 수만 송이가 언덕을 따라 피어있다. 지나가던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올해 해바라기 꽃이 12년 중 가장 잘 자랐다고 했다. 덧붙여 7월 22일부터 8월 7일 사이가 만개 시점이므로 다시 오려면 그 사이에 방문할 것을 추천했다.

해바라기 언덕에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갈길을 따라 전체적인 풍광을 즐기며 걷거나, 해바라기 숲 가운데를 관통하거나. 우린 꽃에 묻히는 쪽을 택했다. 물기 머금은 질펀한 흙길을 밟았다. 흔한 발디딤용 돌판이나 깔개도 없었다. 중간중간 물구덩이를 피해가며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양쪽에 해바라기를 끼고 걷는 길이 나왔다. 어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갈 수 있는 폭이었다.

아폴론 눈동자처럼 이글거리는 해바라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늘도 없이 뙤약볕에 당당히 서 있는 황색 군단의 위용이 대단했다. 굵은 줄기와 두터운 잎은 늠름한 태양의 전사요, 샛노란 꽃은 기름칠한 구리 갑주였다. 강건한 군대의 사열 속에 개선문을 통과하는 장군이 되어 걸음을 옮겼다. 이열치열. 더위에는 더위로 맞서라 했던가? 불볕을 두려워 않는 정열의 길을 걷고 있노라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느릿느릿 풀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걸었다. 매점에서 아이스커피를 사 오지 않은 아쉬움이 슬슬 들 때쯤, 2층짜리 나무 전망대가 등장했다. 걷다가 지친 관광객들이 바위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팔을 밀치며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생태숲으로 향했다.

해바라기 축제장 전경. ⓒ 이준수
해바라기 축제장 전경. ⓒ 이준수
해바라기를 양 옆에 끼고 걷는 길. ⓒ 이준수
생태숲에는 사시사철 푸른 전나무가 군집을 이뤄 높이 뻗어있었다. 지대가 높아 해바라기 밭을 조망할 수 있는 나무 그늘에는 거짓말처럼 의자와 그네와 해먹이 있었다. 산에서 불어온 바람이 전나무 숲을 휘몰아 나갔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발 빠른 어떤 아저씨는 해먹에 몸을 맡기고 스마트폰을 만졌다. 그는 이 순간의 편안함이 믿기지 않는 듯 연방 와와 거리며 하늘 보고, 아래 보고를 반복했다. 행복한 사람을 보기만 해도 행복해졌다.

구석에 놓인 의자에 짐을 풀고 기댔다. 서늘한 시간이 지나갔다. 푸르고 웅장한 산과 숲 그리고 꽃. 자연이었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가 어렴풋이 와 닿았다. 별 말없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문명에 찌들어 힘들 때 여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충분히 머물렀다.

너무 애쓰지 않아 좋은 구와우 마을 해바라기 축제. 무거운 바닷바람에 소금기 어리는 해변이 부담스러운 분들은 아주 기대하지 않고 방문한다면 뜻밖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으리라.

지역에서 은근히 유명하고 맛있는 집을 소개합니다

해바라기 축제 입구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1분만 내려오면 주민들이 사랑하는 '초막 고갈두' 식당이 있다. 메뉴는 단 3개. 고등어, 갈치, 두부조림이다. 가격도 착해서 고등어 칠천 원, 갈치 만 원, 두부 오천 원이다. 음식을 시키면 깍두기, 샐러리 장아찌, 도라지 무침, 숙주나물 무침, 물김치를 밑반찬으로 내준다. 가게에서 직접 담가 따로 판매까지 하는데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깔난다.

2인분을 주문하면 3인분 같은 뚝배기를 내온다. 고등어와 갈치는 양이 많지 않은데 두부는 수북이 담아준다. 깊고 그윽하기보다 달고 감칠맛이 난다. 입맛 없고 뭘 먹을지 고민될 때 툭 들르면 된다.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가 좋다 보니 주중, 주말, 점심, 저녁 언제와도 사람이 북적인다. 고갈두! 주력 메뉴를 간판으로 건 주인장의 뚝심에는 그럴 이유가 있다.

초막 고갈두 식당.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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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과 일상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