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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원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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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길 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가는 사람도, 문을 연 가게도, 밥 냄새나는 식당도. ⓒ 이수지
"가게!"

내 두 눈을 믿지 못하겠다. 눈을 꼭 감아 눈물을 쥐어짠 후 다시 떴다. 조금 더 선명해진 시야. 그 안으로 들어온 하얀색 낡은 단층 건물과 파란 간판. A상회. 가게야! 더스틴은 눈도 끔쩍 않는다. (관련기사 : "아저씨, 아무리 배고프고 목말라도 차는 안 탈래요")

"가게야, 가게라고!"
"됐어. 닫혀있을 게 뻔한데 뭐."


밝혀두건대 더스틴은 비관론자가 아니다. 시골길이 준 좌절과 실망이 더스틴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거다. 지금껏 지나친 작은 마을에는 집 몇 채만 심심하게 서 있을 뿐 지나가는 사람도, 문을 연 가게도, 밥 냄새나는 식당도 없었다. 기껏 있는 상점도 폐허가 된 지 오래된 곳들이었다. 그래, 차라리 너처럼 불행을 예감하자. 좌절을 대비하자. A상회의 문이 굳게 잠겨있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 사창리까지 두 시간만 더 걸으면 되니까.

며칠만에 본 가게. 과연, 문이 열려있을까. ⓒ 이수지
"열렸어!"

비명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배낭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어두운 상점 안에는 지난 며칠간 구경도 못 한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칸쵸, 빼빼로, 새우깡, 양파링, 새콤달콤, 자유시간, 신라면, 삼양라면, 짜파게티…. 허기가 말떼처럼 몰려들었다. 두근대는 심장이 개중에 칼로리 높은 식량을 볼 때마다 바로 그거야! 라고 소리치듯 힘껏 요동쳤다. 물 한 통, 망고 주스, 자유시간, 초콜릿, 메로나 두 개. 우리는 상회 앞 대청마루에 식량을 늘어놓고 그것들을 말없이 해치웠다. 달콤하고 시원한 맛에 반쯤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뭐 좀 더 살까?"

다 빨아먹은 메로나의 막대기를 잘근히 씹으며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사창리에 거의 다 오긴 했지만, 어제처럼 굶을 상황이 될지 누가 알아."


훗. 우리도 이제 좀 현명해졌다. 앞일 걱정은 전혀 않는 철없던 우리도 며칠 걷고 나자 앞으로의 허기를 두려워하고 예비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남들처럼 10년 뒤까지는 대비 못 하더라도 말이다. 여행을 통한 자아 성장이라고나 할까.

상회 앞 대청마루에 식량을 늘어놓고 말없이 해치웠다 ⓒ 이수지
작은 가게를 지키는 할머니 "난 이북서 왔어"

낡은 공간. 비좁은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에 겨우 보이는 몇 개 안 되는 물건. 라면 두 개를 집었다. 내 기척에 할머니가 뒷방에서 나왔다. 값을 치르고 대청마루로 나와 쭈쭈바를 빨았다. 상점의 어두운 틈새로 하얀 머리카락이 쭈뼛이 삐져나왔다.

"걸어서 댕기는 거야?"

할머니의 작고 주름진 입이 조곤조곤.

할머니에게 지금까지의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잠곡리에서부터 걸었는데 중간에 가게가 하나도 없어서 힘들었다는 투정도 곁들였다. 길을 걸으며 생긴 못된 버릇이다. 낯선 사람 붙잡고 나 힘들다, 덥다, 배고프다 투덜투덜.

"이런 시골 마을엔 나 같은 노인네들만 살아. 그러니 가게가 있나. 다른 사람들은 명절 때나 들리니까. 들어와. 밖에는 더우니까 안으로 들어와서 쉬어."
"아니에요 할머니. 여기 조금만 더 앉아있다가 사창리로 가려고요."
"아 밖에 더우니까 언능 들어와. 들어와서 선풍기 바람 좀 쐬어!"

할머니의 호통 아닌 호통에 까만 상점 안으로 들어가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할머니는 맞은편 탁자 위에 올려진 선풍기를 틀더니 잘 돌아가지 않는 선풍기 고개를 자꾸만 우리 쪽으로 꺾었다. 아담한 키. 깡 마른 몸. 살짝 굽은 등. 할머니가 선풍기 고개를 왼쪽으로 꺾을 때마다 할머니의 짧고 하얀 머리도 살랑, 살랑. 할머니, 고향이 여기예요?

할머니는 맞은편 탁자 위에 올려진 선풍기를 틀더니 잘 돌아가지 않는 선풍기 고개를 자꾸만 우리 쪽으로 꺾었다. ⓒ 이수지
"…. 아니 난, 이북서 왔어."

할머니의 작은 몸에 담긴 이야기가 낡은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옛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전쟁이 터진 건 할머니가 8살 꼬마였던 아주 오랜 옛날이다. 그때 피난 온 곳이 이곳 명월리다. 피난이라고 왔지만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매일 죽음을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했다. 하늘 위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꿩마냥 땅속에 머리를 처박고 무서워 벌벌 떠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 고생은 말도 마, 주름진 얼굴 위에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박힌 할머니의 두 눈이 촉촉해졌다. 반세기도 넘은 일인데 지금껏 눈물이 나시나 보다.

더스틴, 내가 맞았어. 고통은 무뎌지지 않아. 10년이 지나도, 50년이 지나도, 앳된 얼굴이 굵고 자잘한 주름으로 가득 덮여버릴 만큼의 시간이 지나도, 뭐든지 씹던 이빨이 몇 개 남지 않고 다 문드러질 만큼의 세월이 지나도, 눈물이 맺히잖아.

"이게 피난 와서 지은 집이야. 그때 지은 집이 지금까지 이렇게 있어."


창호지로 곱게 바른 미닫이문. 문 가운데는 안을 살필 수 있는 작은 창이 달려있었다. 노란색 물 주전자. 마시다 만 생수. 신문지 위에 늘어놓은 나물. 잠시 스쳐 간 할아버지의 두 발. 할머니는 저 미닫이문의 이곳과 저곳을 넘나들며 새 삶을 시작하고, 생계를 꾸리고, 저축을 하고, 자식 네 명을 공부시켜 서울로 보냈다. 지금은 시집 장가가서 나름 잘 사는 자식들. 자꾸 전화해서 서울서 같이 살자고 난리지만 할머니는 싫다. 젊은 사람들도 노인네랑 사는 게 싫겠지만, 노인네들도 마찬가지야. 아들 며느리 눈치 보며 사는 게 뭐가 좋다고.

할머니는 저 미닫이문의 이곳과 저곳을 넘나들며 새 삶을 시작하고, 생계를 꾸리고, 저축을 하고, 자식 네 명을 공부시켜 서울로 보냈다. ⓒ 이수지
"그르케 걸어당김 간식거리는 어서 나와?"
"누가 간식거리를 줘요? 저희가 직접 가지고 다녀야지."
"그럼 들고 다니는 그 간식이라도 먹지 왜 굶고 다녀."
"그저께 밤에 심심해서 다 까먹어버렸어요."
"으이그. 잘 헌다."


낮에 배고플 걸 알면서도 잘 안되더라고요. 가방 안에 먹을 게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안 먹어요. 에헤헤. 이젠 투정도 모자라 어리광이다. 전쟁을 겪고 생계를 일구고 자식 네 명을 키우는 80년의 세월 동안 작고 단단해진 할머니라면 다 받아줄 거라는 생각에. 할머니라면 오늘 우리와 함께 걷지 않았어도, 굶지 않았어도, 나와 더스틴의 노고를 이해해줄 수 있을 테니까. 세월로 단단해진 할머니의 몸속엔, 타인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나이테가 곱게 그려져 있을 테니까.

세월로 단단해진 할머니의 몸속엔, 타인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나이테가 곱게 그려져 있을 테니까. ⓒ 이수지
사창리 가는 길 ⓒ 이수지
"밥 굶지 말고 잘 다녀잉?"

시뻘겠던 얼굴이 하얗게 되돌아오고 나서야 가게 문을 나섰다. 할머니는 굽은 등 위에 두 손을 올린 채 우리를 좇았다.

"네 할머니." 내가 대답했다. "캄사합니다!" 더스틴이 외쳤다. 할머니가 주름진 손을 들고 흔들었다. 잠시 굶고 목 좀 마른 게 뭐라고 그 난리였던가? 할머니만큼은 못 되더라도 견디자. 단단해지자. 할머니처럼 타인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나이테를 곱게 그리자. 허기와 갈증을 느끼는 것 말고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갈망 또한 우리의 본능이 되도록 굵고 진하게 그리자. 우리는 사창리를 향해 걸었다. 할머니 보라고, 일부러 더 씩씩하게.

우리는 사창리를 향해 걸었다. 할머니 보라고, 일부러 더 씩씩하게.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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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