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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라는 단어에서 그대로 느껴지듯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여행 내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어만으로 가슴이 설레는 걸 어떡하리.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웅장한 위용의 남해대교와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은 정겨움을 더한다. 소박한 마을 풍경과 이어진 돌담길은 제주도를 연상케하지만 그 독특함이 다르다. 남해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건 두말없이 남해의 으뜸 작물인 마늘이다. 그 푸름이 바다와 더해진다.
    
남해의 노을과 해초 녹색의 대조 노을빛이 바다를 물들일 때쯤, 해안가 돌에 붙은 해초의 녹색이 선명해진다. ⓒ 최정선
   
꽃필 때만 방문했던 남해를 온전히 느끼고자 바래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바래'는 남해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해초나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뜻하는 토속 말이다. 그 말에서 이름을 딴 길이 바로 '바래길'이다. 갯벌로 나가던 그 길을 걸고자 한다.

바래길 걸으러 남해로 가는 길
 
남해는 여러 차례 다녀왔었다. 남해의 상징인 남해대교를 건너자 양 갈래 길이 나타난다. 한쪽은 77번 국도, 다른 쪽은 1024번 지방도다. 생각해보니 늘 77번 국도로만 쌩하게 다녔던 것 같다. 벚꽃과 유채꽃을 찍고자 남해를 번질나게 다녔던 생각이 불현듯 났다.
 
이번엔 바래길을 걷고자 고현까지 버스로 갔다. 고현은 다른 팀들과 합류하기로 한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붉은 남해대교를 지나 고현에 홀로 내렸다. 혹여 내리지 못할까 운전기사님께 몇 번이나 내리는 정착지를 말했다.

"고현 갑니다! 기사님 고현에 도착하면 꼭 말씀해 주세요."
 
시외버스를 탈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정착지를 승객들이 알아서 내려야 한다. 기사님께 미리 말하지 않으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무사히 고현에 내려 점심을 먹고 평산항으로 이동했다. 
 
평산항은 고즈넉하고 아담한 어촌마을이다. 바래길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 출발점으로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다. 그 덕에 조용하고 전형적인 어촌마을이 특별한 곳이 되었다. 그 특별함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작은 미술관'이다. 문화체육부가 추진한 사업 일환으로 (사)대안공간 마루와 남해군이 '작은 미술관'을 운영하게 됐다. 한때 보건진료소로 운영됐던 이곳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과거 평산 보건진료소는 1984년 개소해 28년여 동안 작은 어촌에서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했다(2011년 폐소).
 
하얀 건물에 작은 파란 간판이 돋보인다. '남해 바래길 작은 미술관'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미술관을 뒤로하고 길을 따라 아직 개통되지 않은 남파랑 길로 향했다. 이번 걷기 취지는 남해 바래길의 일부가 될 남파랑 길을 먼저 걸어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남해 바래길 계획구간인(미계통) 남파랑 길을 걷다
 
남해 평산항 평상항 초입의 언덕에서 바라본 평산리 마을과 관선도가 어우러진 바다 풍경이 절경이다.ⓒ 최정선
 
우리는 남파랑 44코스를 걷는다. 차후 이 길은 남해바래길로 통합되며, 2020년 후반에 개통될 예정이다. 그땐 길의 이름도 새로 명명될 계획이란다. 평상항 초입의 언덕에서 바라본 평산리 마을과 관선도가 어우러진 바다 풍경이 절경이다. 걷기는 평산항에서 시작해 임진성(任辰城)을 거쳐 남해스포츠파크까지다.

걷기는 어렵지 않았다. 곧은 길을 반복해 걷다, 굽은 길을 돌기도 했다. 갈림길이 나오면 서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자 역할을 번갈아 가며 했다. 지루하지 않게 길 모양 따라 풍경이 다채롭게 연출된다. 때론 시원한 바다 조망이 펼쳐지고, 때론 길섶의 야생화가 생긋 웃기도 한다.

아스란 수평선과 아난티 남해가 시아로 들어왔다. 날씨도 걷기에 아주 좋다. 마늘밭이 파랗게 펼쳐지고 마늘 수확하느라 아낙네가 구부정히 허리를 굽힌 모습도 더러 보였다. 황톳빛과 끝이 누렇게 된 초록빛 마늘잎이 빛에 반짝거린다.
 
남해의 마늘밭 남해의 효자 작물인 마늘이 익어가고 있다. 황톳빛 농토와 끝이 누렇게 된 초록빛 마늘잎이 바다빛에 반짝거린다. ⓒ 최정선
 
초입부터 걷는 내내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져 마음이 평온하다. 특히 남해의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눈까지 시원하게 한다. 한층 발걸음이 가볍다.
 
멀리 보이던 아난티 남해가 바로 코앞. 여기서부터 임진성으로 가는 길이다. 아난티 남해 입구의 왼쪽 건널목을 건너면 편의점이 있다. 그 옆에 있는 임진성 코스 안내도를 따라 오른쪽 시멘트 임도를 따라 오른다.
   
남해 임진성 1592년(선조 25) 군인과 백성이 힘을 모아 쌍은 축성으로 민보성(民堡城) 도는 임진산성(任辰山城)이라 부른다.ⓒ 최정선
   
이정표(임진성 0.65㎞)를 지나, 흙길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산길로 올라간다. 진한 녹음이 내려앉은 어둑한 숲 터널을 15분 가량 오른다. 임진성 직전 야트막한 기왕산(해발 105m)이 있지만, 산을 오르지 않고 바로 임진성의 서문지로 향했다.

성은 1592년(선조 25) 군인과 백성이 힘을 모아 쌍은 축성으로 민보성(民堡城) 또는 임진산성(任辰山城)이라 부른다. 이곳에서는 인접한 귀비산(해발 501m)과 북쪽 천황산(해발 395.2m), 서쪽 바다 풍광이 펼쳐진다.
    
경렬공 정지 장군 사적비 임진성 경내 동문 옆에 <경렬공 정지 장군 사적비(南海景烈公鄭地將軍事跡碑)>가 있다. 고려 말기 무장으로 우왕 때 남해를 침입한 왜적을 물리쳐 공을 세운 장군이다. 정지 장군은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태종이 정지 장군에게 경렬(景烈)이라 시호를 하사하였다ⓒ 최정선
   
임진성 경내 동문 옆에 <경렬공 정지 장군 사적비(南海景烈公鄭地將軍事跡碑)>가 있다. 고려 말기 무장으로 우왕 때 남해를 침입한 왜적을 물리쳐 공을 세운 장군이다. 정지 장군은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태종이 정지 장군에게 경렬(景烈)이라 시호를 하사하였다. 남해가 자랑하는 장군이다. 임진성의 동문지를 지나 잔땡이 고개로 내려가면 아스팔트 도로와 만난다.
 
배당소류지를 지나 계속 걸었다. 어느 교회 건물 앞마당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고실치 고개로 접어들었다. 이 고개는 옥기산(해발 250m)과 삼불산(해발 250m)의 끝자락과 인접하고 있다.

길을 걷는 내내 인색한 이정표가 정말 아쉬웠다. 초행자가 헤매기 일쑤일 듯. 특히 갈래 길에서 헛걸음하기 쉽다. 길을 따라 아카시아 향기에 취하기도 하고 개오동나무 꽃의 눈웃음에 응답하며 정처 없이 걷는다. 그저 앞사람 꽁무니만 따랐다.
 
남해 고실치 고개 옥기산(해발 250m)과 삼불산(해발 250m)과 인접한 고실치 고개로 접어들었다. 자동차 스키트 마크(Skid Mark)같은 두 라인이 풀빛과 대조를 이룬다.ⓒ 최정선
   
그러다 갈림길에서 먼저 간 동료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왼쪽 길로 생각 없이 걸었다. 희뿌연 시멘트 임도가 풀 길로 변했다. 자동차 스키트 마크(Skid Mark) 같은 두 라인이 풀빛과 대조를 이룬다.
 
길의 변화에 낯섦과 처녀림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길이 없는 길도 걷는 마당에 이 길은 언감생심. 선두에 가던 분들이 팔을 휘두르며 돌아가라고 소리친다.
 
"여기 길이 막혔습니다.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한참 걷고서야 갈림길에서 잘못 접어든 것을 알았다. 여기저기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낙오된 팀이 앞 팀을 놓쳐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날은 어두워지고 다리는 무거워진 상태. 다들 지쳐있다 보니 목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갈림길까지 오른다. 갈림길의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평장을 한 가족묘가 보였다. 봉분형 묘가 아니라 새롭게 느껴졌다. 고실치 고개의 끝자락에 금곡마을이 마주했다. 마을을 통과하자 서상천이 바다까지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다들 말없이 서상천을 따라 걸었다.
    
남해스포츠파크 서상항에 자리한 남해스포츠파크. 이곳은 프로축구, 프로야구, 학교 운동팀의 전지 훈련장으로 애용되는 곳이다.ⓒ 최정선
   
남해스포츠파크 입구에 다다르자 갑자기 다리에 찌릿찌릿 쥐가 났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나름 놀랐다. 종착점인 서상항에 자리한 남해스포츠파크. 이곳은 프로축구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학교 운동팀의 전지 훈련장으로 애용된다. 바다를 보며 훈련을 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은 경기장이라 자부한다. 어느덧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가 하얀 꽃다발을 날린다.
 
서상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장항에서 저녁 먹으러 갔다. 나비형 지형인 남해의 왼쪽 날개 아랫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장항. 이곳에 몽돌해변과 방풍림이 장항숲이 있다. 솔숲이 엉기성기 서 있지만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작은 어촌마을에서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했다. 노을빛이 바다를 물들일 때쯤, 해안가 돌에 붙은 진녹색의 해초가 선명해진다. 자연이 만든 천연색감이다.
    
서상게스트하우스와 남해스포츠파크 사이를 흐르는 서상천 서상-여수 뱃길을 따라 배가 다녔던 서상항. 그 번영을 상징했던 서상여객선터미널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곳이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해 현재 운영 중이다. 그 옆에는 떡하니 서면의 자랑 남해스포츠파크가 있다.ⓒ 최정선
   
우리가 묵은 서상 게스트하우스의 숙박비도 비교적 싼 편이다. 이곳은 과거 서상-여수 뱃길을 따라 배가 다녔던 서상항의 여객선터미널이다. 그 번영을 상징했던 서상여객선터미널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해 운영 중이다. 그 옆에는 떡하니 서면의 자랑 남해스포츠파크도 들어섰다. 게스트하우스 손님의 대부분은 스포츠파크를 이용하는 단체이거나 바래길을 트래킹하는 여행객들이 많다.
  
<여행 귀띔>
*남해바래길 트레킹
-남파랑길 : 평산항~아난티 남해~임진성~잔땡이 고개~배당소류지~고실치 고개~금곡마을~남해스포츠파크~서상항
 
*가는 법
-버스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공용터미널까지 약 66m 이동한다. 남해공용터미널에서 우물(대정, 서상, 정포, 우물, 중현, 대곡) 행 버스 탑승해 서상마을 앞 정류장 하차해 서상게스트하우스 340m를 5분 정도 걷는다.
 
-자동차
· 서울-대전-진주-남해방면: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 사천 나들목 또는 진교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서상항까지 간다.
· 서울-천안-전주-광양-남해방면: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 고속도로→ 순천완주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에서 서상항까지 간다.
· 대구-남해 방면: 구마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 사천 나들목 또는 진교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서상항까지 간다.
· 광주-남해 방면: 호남고속도로 → 남해고속도로 → 하동 나들목에서 서상항까지 간다.
· 부산-남해 방면: 남해고속도로 → 사천 나들목 또는 진교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서상항까지 간다.
 
*숙박: 서상게스트하우스로 비수기 숙박비는 1인당 2만원이다. 성수기 1인당 2만5천원, 학생은 15,000원이다. 객실은 10인실/12인실/4인실/2인실 등 다양한 크기의 방이 있으며 화장실과 욕실은 공동사용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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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한국여행작가협회). <생각없이 경주> 저자이며 여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