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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철영

☞ [10주기 심층인터뷰 ①]  "<노무현 평전> 탈고가 내겐 탈상"(http://omn.kr/1jbpo)에서 이어집니다.

노무현의 복심(腹心), 노무현의 입, 노무현의 필사라고 불렸던 윤태영(58) 전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자책감으로 지난 10년 동안 언론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해왔던 그를 설득한 끝에 지난 5월 13일 오후 그의 집필 공간인 고양시 한 농가주택에서 만났다. 

2014년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담은 책 <기록>을 펴내면서 윤태영은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7권의 책을 펴낸 그는, 노무현의 말과 글을 다듬으며 스스로를 치유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노 대통령과 관련된 마지막 저술 작업이라고 여기는 <노무현 평전> 집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10주기인 올해 말 목표한대로 '탈고(脫稿)'를 한다면, 그것이 윤태영에겐 '탈상(脫喪)'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사코 정치와 거리를 두던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감지됐다. 아직은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노무현의 재평가를 위해서라면 '윤태영의 정치'도 고민중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다음은 윤태영 전 대변인과의 심층 인터뷰 ②이다.  

-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직까지도 많은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다. 사람들한테 노 대통령의 진면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의) 기록을 맡은 입장에서 그 점이 제일 아쉽고 숙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문제가 50%는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선서문도 윤태영이 쓴 것인가.
"제가 썼다기보다는 정리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여튼 초안을 제가 정리했다. 취임선서문에 제 초안이 많이 반영됐다."

- 문 대통령의 취임선서문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것을 국정운영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콘셉트는 제 것이 아니다. 문재인 후보 측에서 콘셉트를 잡았고, 제가 그렇게 문장을 다듬었다."

-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라는 문구는 노무현 대통령이 늘상 강조했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이라는 슬로건과 같은 맥락 아닌가.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라는 문구는) 지난 2012년 대선 때 후보 수락 연설에서 썼다. 임팩트가 있다고 해서 TV 광고에서 썼다. 그런데 선거에서 졌다. 그래서 2017년 대선에서는 그 문구를 쓸까 말까 고민했다. 한 번 진 선거의 구호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가 방송 연설 때 그 문구를 쓰더라.

왜 저 구호가 맞다고 생각했냐면, 노 대통령은 풍운아인데 반해 문 대통령은 약간 쿨한 신사 이미지가 있다. 저는 문 대통령의 신사 이미지에 맞는 키워드가 공정이라고 봤다.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라는 문구에서 핵심은 '공정'이다. 공정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어울리는 건 없다. 본인과 어울리는 구호를 써야 설득력이 있고, 득표력이 있다고 봤다."

- 양정철 전 비서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처음 프린트한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후보 시절 때까지도 지갑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잘 몰랐다. 들었는데 까먹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처음 듣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갖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추모는 추모대로 하되, 가치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노무현의 복심(腹心), 노무현의 입, 노무현의 필사라고 불렸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5월 13일 그의 집필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철영

- 간혹 복잡한 사안이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계셨더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
"가급적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정치 입문 초기에) 혼자 의원직 사퇴를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때 깜짝 놀랐다. 어떻게 국회의원을 사퇴한다고 하지, 정말 대단하다, 저분은 어디 가서든 더 훌륭한 일을 많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의원직 사퇴를 번복하는 것에 서명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때 <여보, 나 좀 도와줘> 책 내용을 구술받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 문재인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노 대통령이 의견을 구하려고 바라보니까, 문 변호사가 서명하라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더라. 노 대통령에게 문재인 변호사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원칙과 소신을 갖고 있던 노 대통령이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기대고 의지하려고 했던 분이 문재인 변호사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는, '노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 윤태영 개인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계셨더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런 적은 굉장히 많다. 노 대통령께 자잘하게 야단맞은 게 있다. 2008년 여름휴가 때 평창에서 묵은 적이 있다. 군수가 찾아와서 숙소 한편에서 두 분이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제가 그 옆에 서 있었다. 그때 저한테 그러더라. '자네,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내가 몇 번이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뻘쭘하게 서 있지 말고 옆에 앉으라는 뜻이었다. '쭈뼛쭈뼛하지 말라'고.

노 대통령도 오랫동안 비주류여서, 정치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처럼) 쭈뼛쭈뼛 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셨다. 제발 좀 쭈뼛쭈뼛하지 말고 당당하게 하라는 거였다. 노 대통령도 겪으신 거라서 저의 그런 모습을 야단친 거라고 생각한다. 제게 당당하게 살라고 야단친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

-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 윤태영 안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았나.
"그건 제가 <노무현 평전>을 빨리 끝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평전을 빨리 끝내야, (노 대통령에게서) 벗어난다는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한 차원 좀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노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노무현재단이 내건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구호도 제가 만든 거다. 그 구호를 만들면서 새로운 노무현, 새로운 시대, 미래를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렇다."

-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구호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도 최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탈상을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추모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자라나는 세대들, 새로운 깨어있는 시민들이 정말로 노무현 정신이 어떤 것인지, 추모의 의미보다 새로운 노무현을 키우는데 더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추모는 추모대로 하되, 가치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 뒤에 덧붙이고 싶었던 말은 '새로운 노무현, 우리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였다."

"젊은 세대들이 오히려 노 대통령을 오해와 편견 없이 보려는 분위기"
 
ⓒ 장철영

-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안타깝게도 현실정치에서는 시시때때로 노무현을 호출하고 있다. 특히 야당이 불리할 때 꺼내서 방패막이로 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객관적이고 제대로 평가하는 데 걸림돌이 될 텐데.
"맞다. 빨리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노 대통령을 있는 그대로의 노무현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2014년 <기록>을 펴내면서도 제대로 된 평가에 도움이 되길 기대했는데, 이후에 더 심해진 경향이 있다. 대통령선거 때가 되면 더 심해진다. 

기록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새로운 세대에게 알려야 하는 책임이 있는 저로서는 새로운 기록(책)을 내놓을 때마다 정파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든다. 그런 분위기에서 노무현을 꺼내놓기가 두려운 측면이 있다. 선입관과 편견을 떨쳐버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에서 노무현을 거론하는 게 노 대통령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노 대통령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많이 바뀌고 있다. 강연을 다니면서 그런 걸 느낀다. 내가 하는 글쓰기 강연에서도 노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2014년 <기록>을 내고 강연을 다닐 때보다 지금 만나는 젊은 세대들이 오히려 노 대통령을 오해와 편견 없이 보려고 하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

- 애초 <노무현 평전>을 올해 10주기에 맞춰 펴낼 계획이었는데, 늦춰진 까닭은 무엇인가.
"제일 큰 이유는 제가 게을러서 그런 거다. 그래도 지난해에 원고를 꽤 진전시켰다. 200자 원고지로 2500매 정도 썼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구멍이 많이 보인다고 할까. 대통령님과 관련해서 제가 쓰는 마지막 책일지도 모르는데, 구멍이 너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기존에 책을 낼 때는 '다음에 또 쓰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평전이 주는 무게도 있다 보니, 가급적 완벽한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모자란 부분이나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취재를 더 확실히 해야 하고. 공력을 더 들여서 작은 구멍도 채워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한 권으로 낸다고 해도 500쪽 이상의 분량이 될 거다. 원고는 올해 말까지 끝내고, 출간은 내년 봄으로 예정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 인생의 절반이다"
 
노무현의 복심(腹心), 노무현의 입, 노무현의 필사라고 불렸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5월 13일 그의 집필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카메라를 든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속 사진가였던 김진석 전 행정관.ⓒ 장철영
 
- <노무현 평전>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한 것인가. 
"<바보, 산을 옮기다>(2015년)라는 책을 펴내고 나서다. 이 책에는 대연정이나 정무 파트 이야기가 많다. 제가 접근하기 쉬운 쪽 이야기다. 그 전해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칼날 위의 평화>라는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을 펴냈다. 각 분야에서 이렇게 노무현 시대에 이야기를 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책 파트는 어느 한 분이 총괄하기 어렵더라. 그래서 전기물을 내되, 평전 형태로 펴내 하나의 교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노무현 평전>이 노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의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

- 노 대통령과 관련된 윤태영의 기록 자료는 어느 정도인가. 분량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대변인 때 기록해둔 청와대 업무수첩이 한 100권쯤 된다. 부속실장으로 간 뒤에는 포켓수첩으로 500권쯤 된다." 

- 공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의 사적인 기록도 포함되나.
"그렇다. 노트북에 있는 자료 파일도 2000개가 넘는다. (평전을 정리하면서) 아직 열어보지 않은 파일들도 있다."

-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이 윤태영에겐 운명이었을 텐데, 간혹 힘들 때 노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후회한 적은 없나.
"그런 적은 없다. (노 대통령과 함께했던 때가) 제일 좋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 참모들에게 정말 잘해준다. 청와대 부속실장은 힘든 자리인데 노 대통령께서 굉장히 편하게 대해주셨다." 

- 노 대통령 서거 이후 10년 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책을 펴냈을 때 저자 인터뷰한 것을 빼고는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별로 잘한 게 없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다. 책을 써서 노 대통령 알려야 하는데, 알리려면 저자인 저 자신을 알려야 하는데, 인터뷰를 꺼려서 항상 모순이었다. (노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이었던) <기록>이라는 책을 펴낼 때도 제일 고민이 저자인 내가 나서서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한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 선출직 공직에 나설 생각은? 윤태영의 정치를 해볼 생각은 없는가.
"아... 그건... 그동안에는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닫아두진 않고 있다. <노무현 평전>이 끝난 뒤에..."
 
- 닫아두지 않았다는 건 가능성을 열어둔 건데.
"주변에서 이래저래 권하는 사람도 많고 해서 고심을 하고 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 윤태영의 인생에서 노무현이란?
"(망설임 없이) 제 인생의 절반이다. 20대에는 학생운동, 30대에는 정치인 보좌관, 40대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 50대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해왔다. 20대부터 지금까지, 그 가운데 절반은 노 대통령과 함께 살았다."
 
ⓒ 장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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