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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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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선정한 2019 올해의 인물 '세상을 바꾸는 엄마들' (왼쪽부터) 태호 엄마 이소현, 해인 엄마 고은미, 용균 엄마 김미숙, 하준 엄마 고유미, 민식 엄마 박초희. ⓒ 이희훈

지난 13일 오전 11시, 서울 홍대 부근 한 스튜디오에 다섯 엄마들이 모였다. 용균 엄마 김미숙씨, 하준 엄마 고유미씨, 민식 엄마 박초희씨, 태호 엄마 이소현씨, 해인 엄마 고은미씨. 다른 엄마들과 김미숙씨는 초면이었지만, 금세 친숙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식을 잃었다. 하지만 개인적 실의에만 빠져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외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내 아이처럼 죽게 놔둘 거냐고.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사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은, 조금씩, 정말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 둘 조명이 켜지고 촬영이 시작됐다. 난생 처음 겪는 자리. 특별히 요청하지도,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드레스코드는 모두 검정이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엄마들과 사진기자 모두에게 어색한 상황이 잠시 흐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태호 엄마 이소현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 것일까.
 
저마다의 응어리를 간직한 채 세상을 바꾸는 엄마들. <오마이뉴스>는 이들을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권우성

 
동지가 된 엄마
 
지난해 12월 10일 늦은 밤 스물넷 김용균의 비참한 죽음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경북 구미에 살던 비정규직 엄마 김미숙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용균씨 사망 며칠 후 원청 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의 한 간부는 "(노동자가) 벨트가 있는 기계 안쪽으로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매뉴얼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김용균씨가 시키지도 않은 무리한 행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뜻이었다. 김미숙씨는 억울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이태의 집행위원장은 "거기서부터 엄마 김미숙의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아들 김용균을 그가 일하는 공장에서 잃은 엄마 김미숙씨. 김미숙씨는 아들을 잃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김용균 재단을 세웠다. ⓒ 이희훈

 
김미숙씨는 아들의 빈소에서 아들의 동료들을 처음 봤다. 그는 "다들 용균이처럼 죽을까봐 겁이 나있는 모습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들이 아들처럼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 그가 28년 동안 잠들어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에 집중한 이유다. 김미숙씨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 등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 법이 통과되면 아들과 같은 죽음이 없어질 거라 믿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27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세상은 이 법안을 '김용균법'이라 부른다.
 
지난 8월 19일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김용균 특조위)는 약 4개월의 조사 끝에 진상조사 결과와 권고안 22개를 발표한다. 권영국 특조위원은 "김용균은 작업지시를 다 지키다 죽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맨 앞에 앉아 발표를 지켜보던 김미숙씨는 오열했다. "이제야 우리 용균이가 자기 잘못으로 죽은 게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 때문에 죽은 게 밝혀졌다"면서 "확실하게 누명을 벗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미숙씨는 여전히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앞장서 통과시켰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더 이상 '김용균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년 1월 16일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부 시행령을 거치며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도급 금지 업종이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으로 제한됐다. 산재사고율이 높은 조선과 철도, 건설업이 포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들이 일하다 사망한 발전설비 분야도 제외됐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렇게 이 법을 위해 그토록 뛰어다녔단 말인가.
 
지난 11월 11일, 김미숙씨는 두꺼운 검은색 패딩을 꺼내 입고 다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그의 뒤에는 아들 김용균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한 해에 2400여 명이 산재사고로 죽고 있는데, 특조위가 강조한 22개 권고사항 중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와 정치인들이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들을 방관하고 눈감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국민들이 일을 하면서 자신이 죽을 걸 걱정해야 하는 것인가."
 
아들의 1주기 추모식에서 엄마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견뎠다. 아들이 일했던 발전소에서 김미숙씨는 '남아 있는 아이들' 위한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분노가 차 올랐다. ⓒ 이희훈
12월 10일 아들의1주년 기일에 김미숙씨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입을 굳게 다문 채 서산지청과 태안화력, 광화문에서 열린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기자가 "어떻게 눈물을 참은 것이냐"고 묻자 "아들이 죽고 일 년 동안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용균이 앞에 자신 있게 서고 싶었는데…"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더 이상 지켜보지 않을 거다. 권력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눌려 살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헛되이 죽지 않게 만들겠다. 더 이상 억울하게 죽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하겠다." 현장에 모인 노동자들은 김미숙씨를 향해 "동지"라고 불렀다. 아들 김용균이 떠난 지 1년, 엄마 김미숙은 노동자들의 동지가 되었다.
 
'내 아이 살려달라'를 넘어서
  
네 명의 엄마들은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딴 '어린이보호법'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 이희훈

 
"의원님, 잘 부탁드립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재 위로 정장 차림을 한 국회의원들이 걸어온다. 회의실 앞 복도에 서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엄마아빠들. 무표정한 금배지들의 말에 부모들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투박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고, 때로는 분노가 찬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아이들을 떠나보낸 후 이들은 긴 시간 집에서, 거리에서, 국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4월 해인이가 경기도 용인의 한 어린이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응급처치가 늦어 세상을 떠난 뒤부터, 2017년 10월 하준이가 서울랜드 동문주차장에서 경사로에 굴러 내려온 차량에 영문도 모른 채 치인 뒤부터, 2019년 5월 태호·유찬이가 인천 송도신도시의 한 사설 축구클럽 노란색 승합차에 탄 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뒤부터, 2019년 9월 민식이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차량사고를 당한 뒤부터. 
    
엄마들은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을 붙잡고 어린이생명안전법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 했다. 하지만 외면 당했다. ⓒ 이희훈
아이들의 이름이 별칭으로 담긴 법안들이 하나둘씩 발의됐다. 사고는 순식간이었지만, 법안 통과는 더뎠다. 오랜 기다림 끝에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신호등·과속 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고, 하준이법은 경사가 있는 주차장에 미끄럼 방지를 위한 고임목과 안내표지 등을 설치하는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나머지 해인이법(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한음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권칠승 민주당 의원 발의), 태호·유찬이법(도로교통법-체육시설의 설치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정미 정의당 의원 발의)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길게는 3년 전부터 시작된 싸움. 하나의 우주를 잃은 엄마들을 움직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오마이뉴스>와 만난 엄마들은 '떠난 아이들'과 '남은 아이들'을 언급했다.
 
"떠난 내 아이, 내 아이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 민식 엄마 박초희씨
"이 사회에 남은 아이들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하는 거예요. 기본적인 안전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겠어요." - 하준 엄마 고유미씨
"제가 해인이랑 약속한 게 있어요. 세상을 떠나게 된 그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요." - 해인 엄마 고은미씨
"처음에는 법안에 아이의 이름이 걸려 있어서 시작했는데, 겪어보니 마음이 바뀌더라고요. 이 사회의 문제다, 이 문제를 꼭 바꿔내야겠다고. 그렇게 버텼고 버텨요." - 태호 엄마 이소현씨
 
선한 사람들의 연결의 힘
  
함께 손을 모은 이들의 공통점은 엄마다. 자식을 떠나 보낸 엄마 그리고 남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또 희생하는 엄마다. ⓒ 이희훈

 
다시 지난 13일 사진 촬영 스튜디오 현장. 촬영 도중 김미숙씨와 다른 엄마들이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김미숙씨는 다른 엄마들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에 입력하면서, 한 명 한 명 얼굴 사진을 찍어 저장했다. 자신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웃으면서. 또 하나의 '선한 사람들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아무리 좋은 생각, 선한 의지가 있더라도, 혼자만으로는 이루기 힘들다. 지금은 '어린이 안전법'으로 자연스럽게 묶이는 엄마들도 처음부터 연결된 상태는 아니었다. 연결의 시작은 하준 엄마 고유미씨였다. 2017년 10월 하준이의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는 날, 직원이 해준 "비슷한 사고로 온 아이가 있다"는 말로 인해 고유미씨와 해인 엄마 고은미씨는 연결된다. 약 1년 6개월 뒤인 올해 5월 태호-유찬이 사건이 보도되자 고유미씨는 태호 엄마 이소현씨를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내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낸다. 가장 최근인 지난 9월 민식이 사건이 터지자 이번엔 태호 엄마 이소현씨가 민식 엄마 박초희씨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하나씩 연결되어 오던 이들은 올해 10월경 유치원3법 활동을 열성적으로 벌이던 '정치하는 엄마들'과 집단적으로 연결되기에 이른다.
 
촬영 후반부, 다섯 엄마가 가까이 모여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허리를 감싸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촬영하는 상황이 됐다.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분위기. 누군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 좋다…" 그래. 힘이 없는 사람일수록, 그래도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일수록, 연결은 좋은 거다. 선한 사람들의 선한 연결로 세상은 조금씩 선하게 변해간다.
  
엄마들은 세상에 다시 나설 것이다. 선한 사람들의 연결의 힘을 믿으며. ★
   
 
사진 : 이희훈
영상 : 권우성
글 : 김지현 / 김종훈
 
올해의 인물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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