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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섬 안팎으로 거친 겨울바람이 불었다. 바다에 주낙을 깔아두었던 홍어잡이 어선은 쉽사리 바닷길에 오르지 못하다가 잠잠해진 어느 날 조업을 하고 돌아왔다. 반짝이는 집어등이 흑산도 예리항의 밤을 밝히는 이른 새벽, 배가 들어왔다며 조용한 동네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빛은 생선을 유인하기도 하고 사람을 잡아당기기도 한다.
 
가는 빗줄기라도 겨울비였다 추운 새벽에 가늘지만 비가 내렸다. 비가 오더라도, 눈이 내리더라도 해야할 일은 마땅히 해야한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도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는 어민을 만났다. ⓒ 강민구
 
겨울이 제철이라는 흑산 홍어를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 일찍 채비하여 길에 올랐다. 유난히 밝던 신안군수협 흑산지점의 위판장을 찾았다. 가는 빗줄기가 허공을 적시어 입김이 절로 나는 추운 새벽이었지만 선박의 어창에서 위판장으로 홍어를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홍어는 날이 찬 겨울이 제철인 수산물이다. 일찍 위판장을 찾은 몇 명의 중도매인이 홍어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보통 봄, 여름에 살이 빠지고 산란철인 겨울에 살이 오른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홍어는 암, 수로 구분하고 세부적으로는 무게에 따라 번호를 매겨서 다시 분류하는데 암컷은 8kg 이상을 1번, 그 이하는 kg 순으로 6번까지 나누고 수컷은 1번부터 3번까지 구분한다고 한다. 살이 부드럽고 큰 암컷이 수컷보다 값이 많이 나가는데 가격이 좋은 날이면 1kg당 2, 3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위판장에 도착한 싱싱한 홍어떼 위판장에 도착한 홍어는 무게나 종에 따라 몇 단계에 걸쳐 분류되어 경매상품으로 오른다 ⓒ 강민구
  
경매시간에 이르기까지 선별, 분류작업이 한창인 위판장 모습 홍어를 비롯하여 아귀가 경매 물목으로 올랐다. 경매시간에 맞추기 위한 선별, 분류작업이 한창 진행됐다. ⓒ 강민구
 
홍어잡이는 '수산물 쿼터제' 시행 이후 어선별로 일정한 어획 할당량이 정해지는데 1년에 어획 가능한 총량이 250톤이다. 홍어잡이에 등록된 어선이 6척이니 척당 약 42톤 정도이다. 겨울 무렵에는 홍어가 산란을 위해 연ㆍ근해나 해안으로 이동해 오는데 알은 계란찜처럼 삶거나 쪄서 먹는 별미라고 한다. 뼈부터 껍데기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홍어는 최근까지도 전남 서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애경사나 마을잔치에 쓰이는 귀한 음식이다.
 
항구에 접안 하는 어선에서 위판장으로 홍어를 내는 작업이 진행됐다. 어창에 가득 실린 어획물은 커다란 박스에 차곡차곡 쟁여져 목을 길게 뺀 크레인이 내리는 쇠줄 끝의 고리에 걸려 비로소 뭍에 닿았다. 수십 마리의 홍어가 실린 박스는 다시 지게차에 실려 위판장 내로 옮겨졌다. 넓디넓은 공간이 순식간에 어부의 손에 잡힌 홍어와 아귀로 채워졌다.

쏟아지는 물량을 목격하며 이만하면 풍어(豐漁)일 텐데 사람들 표정이 밝지 않아 의중을 물었다. 한 경매인은 위판장에서 취급하는 수산물의 경우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당일 시세가 결정되는데, 물량이 한꺼번에 많이 나오면 좋은 값을 받기 어렵단다. 취재 당일 어획한 홍어의 총 마릿수가 약 700장에서 800장이라고 했다. 근래 들어 며칠간 500장을 상회하는 물량이 위판장으로 나오는데, 마릿수가 많은 만큼 걱정이 크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위판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 신안군수협 흑산지점의 위판경매는 보통 7시를 전후하여 시작한다. ⓒ 강민구
 
수요와 공급에 따른 일반적인 원리로 가격을 매기기에 흑산 홍어는 아쉬운 점이 큰 상품이다. 수산물 쿼터제로 한정된 물량을 어획해야 하는 어민 입장에서는 가격 변동이 클수록 다음 조업에 영향을 받는다. 최근 흑산도의 홍어잡이는 목포를 비롯한 타지어선의 조업방식과 다른 특수한 조업방식을 강점으로 내세워 해양수산부에서 주관하는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 신청을 했다.

위판장에서 만난 신안수협 흑산지점의 관계자는 타지의 안강망 어선이 그물을 이용해 잡는 것과는 달리 흑산도 어선은 주낙을 이용한다고 언급했다. 전자는 해수면 아래 30, 40m의 중층부에서 잡지만 후자는 70, 80m의 심층에서 어획하므로 홍어가 잡히는 서식지부터 다르다고 강조했다.

홍어 주낙은 15cm 간격으로 낚싯바늘을 매달아 저층의 바닥에 깔아두는데 미끼를 따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바늘을 문 홍어가 도망가려고 몸을 쓰다가 다른 바늘에 엉겨 상처가 나는데 피나 체내의 이물질이 자연스럽게 배출되면서 깨끗한 선어 형태로 잡히니 식감이 찰지다는 평이 많다고 한다. 한편 그물에 잡히는 홍어는 다른 어종과 뒤섞이는 탓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체내에 이물질을 담고 있어서 품질이 흑산 홍어에 미치지 못한다.
 
계절마다 변하는 홍어의 서식지를 파악하며 수온이나 환경에 따른 변화를 읽고 조업 구역을 옮기는 등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나 미끼를 쓰지 않고 잡는 친환경적인 어법은 '국가중요어업유산'에 선정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전승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문과 불분명한 지속 가능성이 탈락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고되고 특수한 방식으로 홍어를 잡지만 이에 반하여 값을 차별화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라고 언급했다. 전국에서 소모되는 흑산도 홍어의 비중이 5% 미만으로 마리당 가격이 비쌌고, 그간 마을잔치나 애경사처럼 큰 행사에 쓰이는 상품으로 인식된 부분이 컸다면서, 흑산 홍어가 가진 브랜드를 홍보하고 판로 확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인망 어선의 어업이 금지되면서 홍어를 비롯한 타 어종의 서식환경이 좋아져서 예전보다 어획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마리당 가격이 30만~40만 원에 이르던 예전보다 값이 저렴해진 만큼 홍어잡이의 특수성에 따른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개발도 병행되면 좋겠다. 현장의 목소리는 이처럼 중요하다. 실재하는 사실에 근접하는 정보와 지식을 책이 아닌 사람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점은 필자에게 흑산도의 대표 음식이자 특산물인 홍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생산자이력을 알 수 있는 바코드를 부착하는 모습 흑산 홍어는 생산자이력시스템을 도입하여 개별적으로 바코드를 부착한다. ⓒ 강민구
 
홍어 위판은 매일 아침 7시에 시작한다. 무게나 종별로 구분하는 작업에 이어 개별적으로 생산자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바코드 부착 작업이 시작됐다. 경매 시간이 임박하니 조바심이 난 필자는 쓸데없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윽고 위판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경매사의 독특한 울림이 공간을 메웠다. 밀고 당기며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의 구매를 독려하는 특유의 주문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지만 흥미로워서 경매가 파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예리항으로 마실을 다니면서 뵈었던 낯익은 마을 어른들 몇 분을 다시 만났다.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요릿집이나 도·소매상은 위판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터였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가볍게 눈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날이 밝아오는지도 모르고 경매 풍경에 시선을 집중하다가 문득 밖을 내다보니 위판장을 찾은 이들이 주차해둔 자동차가 즐비했다.

공간을 채우던 그 많던 물량은 한 시간쯤 지나서 새 주인을 만나 손수레에 이끌려 빠져나갔다. 가장 좋은 선도를 유지하려고 걸음을 재촉한다는 한 식당 사장님은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연신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면서 기회가 되면 또 보자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홍어가 밥상에 오르기 전에 많은 과정을 거치는 동안 품질을 염려하는 이들의 염려 섞인 손을 탔을지 생각했다. 농산물을 수확하여 시장에 내는 농부의 마음처럼,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는 수산물이 손님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어부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흑산도를 제외한 국내·외에서 잡는 홍어의 시장점유율이 95%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산지의 명성을 이으며 전통적인 조업방식을 지키고 고수해온 이 지역 어민들의 노력과 땀에 반하는 안타까운 대목이다.
 
선도 유지를 위해 서둘러 홍어를 챙겨가는 경매인들 경매가 끝난 직후 경매인들은 홍어의 선도나 품질 유지를 위해 서둘러 챙겨갔다. ⓒ 강민구
 
수산 양식을 통해 미래의 식량자원을 확보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성공률이 지극히 낮다고 한다. 기후변화나 해양 환경 오염에 따른 자연산 수산물의 개체 감소, 토착 어종의 서식지 이동 등 이상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런 데 반하여 서식환경 개선으로 홍어의 개체 수가 늘어나 어획량이 늘어나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지속적인 조업을 꿈꿀 수 없다.

수산물의 가격 안정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수산물 쿼터제 시행으로 해마다 한정된 물량만을 어획해야 하니 공급량을 조절하기 힘든 바다라는 특수한 환경 탓에 늘 가격 조절에 실패하는 현상은 고질적으로 어민을 괴롭혀 왔다. 가격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현재 홍어잡이에 나서는 6척의 어선도 언제까지 조업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번거롭고 어려운 조업방식을 고수하면서 자부심을 가지는 것으로 어민은 버티기 어렵다.
 
홍어는 한 마리를 통째로 소비하는 생선 혹은 비싼 어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상품이다. 좀 더 친숙하고 익숙한 식재료이자 식품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인구 추세에 발맞추어 소포장 상품을 출시하거나 배송 이후에도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도록 진공 포장을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미식(美食)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회나 찜에 한정된 요리 외에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하면 어떨까? 홍어를 잡는 데서 유통하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진솔하게 엮어내어 사진이나 영상자료로 소개하거나 지역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반영하는 스토리텔링에 기반하는 콘텐츠 개발도 좋겠다. 조업의 지속성이나 어민 소득 증대는 소비 촉진에 따른 유통의 활성화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신안군의 여행, 음식, 사람, 이야기 등 섬과 관련된 콘텐츠를 소개하는 '레츠고 신안'에도 중복게재함을 밝힙니다. http://www.letsgoshin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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