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

대전충청

포토뉴스

강변 모래톱에는 많은 시민이 찾아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은 모래 장난에 여념이 없습니다. ⓒ 김종술

연일 지속하던 장마도 끝났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물속에 잠겼던 모래톱도 다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모래알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고운 빛깔입니다. 그 모래톱에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이 속속 다녀갔습니다.
 
13일 이른 아침부터 금강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곰과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충남 공주시 고마나루 솔밭입니다. 이곳은 국가문화제로 명승 제21호입니다. 화창한 날씨에 티 없이 맑은 하늘이 높아만 보였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새들의 노랫소리만 들릴 뿐 사람들의 인기척은 없었습니다.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전망대와 함께 수신제가 열리는 웅진단 터가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강변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입구부터 무성하게 자란 풀들 때문인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습니다. 한 달 전쯤에 제가 풀을 깎아 길을 놓았는데 다시 자라난 것입니다. 누군가 마시고 버린 것으로 보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만 버려져 있었습니다.
 
강물을 타고 온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멋진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 김종술
 
"예전에 참 넓은 모래톱이 있었는데..."

서둘러 차량에 싣고 다니는 낫을 가지고 얼기설기 엉키고 자란 풀들을 반듯하게 정리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풀을 깎던 도중에 아주머니 세 분이 오셔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예전 모래톱만 이야기하면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강변은 하얗고 보랏빛 작은 꽃을 피운 비수리가 지천입니다. 서서히 은빛을 띠기 시작한 물억새도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습니다. 꼿꼿한 갈대에는 유혈목이가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스르륵 사라집니다.
 
비가 내리고 강물이 불어 접근하기 어려웠던 곳이 강물이 낮아지면서 넓은 모래사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모래 위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선명한 무늬가 보였습니다. 먼저 다녀간 고라니와 삵도 발 도장을 찍어 놓았습니다. 주변의 모래를 끌어모아 화장실을 만들고 손가락 크기의 똥을 쌓아 놓은 범인은 수달입니다. 아마도 영역을 표시한 것 같습니다.
 
공주보 수문이 개방되고 모래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 김종술
 
첫 번째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가방을 메고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찾아온 사람은 낚시꾼입니다. 모래밭에 기다란 꼬챙이를 꼽고 지렁이를 꿴 낚싯줄이 강 중앙에 던져졌습니다. 건너편 바위가 있는 절벽에도 낚시꾼들이 찾아 떠드는 소리가 강변을 깨웠습니다.
 
"왜 네가 나오나? 너 말고 엄마나 아빠 불러와라."
 
낚싯대가 출렁거리고 올라온 것은 손바닥만 한 모래무지였습니다. 작다고 투덜대던 낚시꾼은 잡은 물고기에게 중얼거리더니 물속에 던졌습니다. 다시 낚싯줄이 출렁거리며 당기고 놓고를 반복하는 낚시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팔뚝만 한 메기가 올라온 것입니다. 건너편 낚시꾼에게 큰소리로 메기 잡았다고 자랑합니다.

꿈만 같다... 이런 날이 오다니
 
아빠와 함께 공주보 상류 곰나루 모래톱을 찾은 아이들이 신나 보입니다. ⓒ 김종술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와 하늘처럼 파란 푸른색 티를 입은 사내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내려왔습니다. 모래밭에 도착한 아이들은 모래 구덩이를 파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빠도 곁에 쪼그리고 앉아 모래를 파고 물수제비도 뜹니다. 사내아이는 모래를 한 줌 쥐고서 아빠를 따라 뿌려봅니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 루치아..."
 
중년의 부부가 도착하고 흥에 겨운 아저씨는 이탈리아 민요인 산타 루치아를 목청껏 부르면 강변을 걸었습니다. 색안경을 쓰고 양산을 쓴 아주머니도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을 돋웁니다. 장단을 맞추듯 노란빛의 물고기가 힘껏 높이 뛰어오릅니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들도 강변을 찾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했습니다. ⓒ 김종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아이들부터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강변 모래톱에 흩어져 거닐었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가져온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모래 장난을 치던 아이는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다고 뛰어다닙니다. 어르신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 걷기를 하셨습니다.
 
파란 하늘이 높아만 졌습니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강변이 평화로웠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서로 거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새들과 야생동물의 발자국으로 가득한 모래밭이 순식간에 신발 자국과 발가락 자국으로 어지럽게 찍혔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오늘 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에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꿈만 같습니다.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가득하고 죽은 물고기만 둥둥 떠다니던 곳입니다. 간간이 찾던 사람까지 밀어냈던 것이 4대강 사업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랫동안 강에서 살아오면서도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문이 개방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4대강 보(洑)입니다. 이곳과 맞닿아 있는 공주보만 하더라도 길이 280m, 폭 11.5m로 수문이 개방된 가동보보다 수문을 열 수 없는 콘크리트 고정보가 더 길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금강은 전면 개방이 아닌 50%의 개방입니다. 100%의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더 넓고 더 다양한 야생동식물과 사람들이 찾을 것입니다.
 
수질개선, 관광 활성화 등 결국 이명박 정부가 틀렸습니다. 콘크리트 보를 걷어내고 강과 생명을 살리자고 주장했던 제가 옳았습니다. 강에서 살아가는 야생 동식물이 증명했고 오늘 다녀간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공주보 수문이 개방되고 모래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 김종술
 
태그:#4대강 사업, #공주보, #곰나루 모래톱
댓글6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누구나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