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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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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특별한 여행 이야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1대1의 비율로 짝을 맺어 소규모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사진 설명 괄호 안에 표기된 정보는 필름 종류이며 괄호가 없는 사진은 디지털 사진입니다.[기자말]
젊은 나무가 쭉쭉 뻗어있고, 어린나무가 힘차게 자라고 있는 편백숲이 있다. 그곳은 핸드폰 전파가 거의 닿지 않는다. 학교에서 전파의 노예로 살다시피 하는 학생들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은 장소였다. '주파수 밖으로'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학생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그곳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는 여정을 만들었다. 

첫 번째 여행은 희망 학생 둘을 데리고 말 그대로 '힐링 여행'을 다녀왔다. 땀을 비 오듯 흘리긴 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고, 비워낸 자리에 숲의 향기를 채웠다. 두 번째 발걸음인 이번 여정은 조금 더 특별했다. 교내에서 알콩달콩 사귀고 있는 학생 커플과 함께 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사제공감 배낭여행 '주파수 밖으로' 두 번째 여정

6월 18일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이번 여행은 비와 함께 출발했다. 일주일 전부터 기상청 홈페이지를 통해 예보를 확인했는데 비가 오락가락할 것 같아, 1차 여행 때는 챙기지 않았던 레인 커버(rain cover), 비옷, 타프(tarp, 비, 이슬 등을 피할 때 사용되는 가림막)를 배낭에 미리 넣어두었다.
 
산속으로 비가 오락가락 하는 와중 안개에 싸인 산속으로 학생들이 걸어가고 있다. ⓒ 안사을
 
동행했던 선생님 이런 여행을 처음 해보는 2년차 교사. 여행 내내 경력이 의심될 정도로 놀라운 상담 능력을 보여주었다. ⓒ 안사을
 
마음속으로 조금은 비가 세차게 오기를 바랐다. 관련하여 안전한 동선과 요령까지 미리 치밀하게 생각해두기도 했다. 동행한 여교사에게 1주일 전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꽤 굵은 소나기가 예보되어있기도 했다.

"선생님. 다음 주 우리 여행 갈 때 비가 올 거예요. 야영도 해야 하고 배낭 메고 산도 올라가야 하는데, 내가 무조건 모든 것을 예상하고 다 책임질 테니까 안 간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대신 평생 남을 추억으로 만들어줄게요."

비슷한 말을 아이들에게도 했고, 모두가 오히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우중 산행과 야영을 준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가 시시하게 내렸다. 텐트를 칠 때 비를 맞지 않아도 되어서 편리하긴 했지만, 진한 기억을 남기지 못해서 꽤 아쉬웠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기가 막힌 추억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텐트 설치 도착하자마자 숨 돌릴 새도 없이 텐트를 쳤다. ⓒ 안사을
 
그 사건은 저녁 식사 때 발생했다. 흐린 데다가 산속이라 급하게 어두움이 찾아오고 있을 때, 나는 비에 대비하여 짐 정리를 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타프 아래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꺼내고 있었다. 갑자기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선생님. 쌤. 쌔앰!"
"왜?"
"수저가 없어요."
"그럴 리가 없어. 도시락 뚜껑 열어보면 그 안에 다 있어. 찾아봐."
"아니에요. 진짜 없어요. 다 찾아봤어요."
"아니, 없을 리가 없다니까?"


비슷한 대화가 세 곱절은 오간 뒤에야 나는 짐 정리를 마치고 무리에게 느릿느릿 걸어갔다. 포장 용기의 바닥이나 뚜껑 내부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연히 못 찾고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찾아도 진짜로 없었다.

땅과 나무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망연자실한 나의 표정을 보자 남학생이 재치있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비가 많이 안 온 대신 이게 추억거리가 되겠네요. 쌤이 그토록 원하시던."
"그런가? 아니 그런데 어떻게 없을 수 있지?"
"뭐, 이미 없는 걸 어쩌겠어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질척거리는 땅을 밟고 올라온 곳에서 이런 상황이라니, 짜증과 불만이 가득할 만도 했건만, 우리는 모두 실성한 듯이 웃으며 재미있는 말들을 쏟아냈다. 게다가 무사히 식사를 마치기까지 했다.

나는 바닥에 남아있는 텐트 팩을 물휴지로 깨끗하게 닦아 젓가락으로 삼았고, 다른 이들은 도시락 뚜껑 모서리를 이용하여 밥과 반찬을 퍼먹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느라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밥을 다 먹은 직후인데도 이미 소화가 되어버린 듯 속이 가벼웠다.
 
이상한 식사 숟가락이 너무 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 안사을
  
타프 아래 네 사람 신나게 웃으며 대화 중인 우리들 ⓒ 안사을
 
갑자기 건넨 질문 

요란한 식사가 끝나고 얼마간 대화를 한 후 우리는 숲속에서 고요히 잠을 청했다. 작지만 끊임없이 들리던 새소리와 물소리, 투둑거리며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다음날은 오전부터 날이 개기 시작할 예정이었다.

1차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7시부터 편백숲 산책을 시작했다. 머물던 곳은 숲의 초입이고 그곳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면 기다란 원으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숲의 정기를 마시며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나란히 걷는 두 학생의 뒷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찌 보면 남매 같기도 하고 친한 친구 같기도 한 두 녀석은, 참 착하게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커플이다. 남학생은 작년 내가 담임을 맡았었고, 여학생은 현재 일주일에 세 시간 동안 나의 수업을 듣는다.
 
산책 중 도란도란 대화가 끊이지 않는 두 사람 ⓒ 안사을
   
거미줄 (ProImage100)부지런한 거미가 새벽부터 지어놓은 집 ⓒ 안사을
 
사실 2차 여행을 기획하면서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사가 학생 커플을 데리고 1박 2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과연 교육 활동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많은 선배 교사가 나에게 '수고한다'라며 격려를 해주셨지만, 마음속에는 애정이 어린 염려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보호자의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성인 언저리까지 훌쩍 자라버려서도 걱정일 것이요, 아직은 미성년자라서 또한 걱정일 부모의 마음을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미천한 교육적 의도를 존중해주셔서 무리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아침 숲 (ProImage100) 우유에 숲이 담긴 듯 포근한 느낌을 주는 아침 안개 ⓒ 안사을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연애'라는 식의 생각은 이제 버렸으면 한다. 조금 급진적으로 말하자면 연애만큼 좋은 공부가 또 어디 있겠는가. 어떠한 친구 사이보다, 어떠한 사제 간보다 더욱 밀접하게 서로를 만나고 타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연인이 아닌가.

물론 입시나 취업의 과정을 제공하는 살얼음 같은 학교에서는 교과 및 실습과 관련된 지식의 축적만을 공부로 일컬을 테니, 위와 같은 주장은 낭만적인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공립 대안 고등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많은 교사가 두 학생이 서로를 아끼며 각자 성장하는 것을 축복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작은 계곡 (ProImage100) 산책 후 잠시 들른 계곡 ⓒ 안사을
 
산책 후엔 잠시 계곡에 들러 몸을 식히고 1시간 동안 독서를 했다. 동행했던 선생님은 <공립 대안 태봉고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고, 나는 <교사가 교사에게>라는 책을 읽었다. 여학생은 미처 책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여 책 한 권을 둘이 같이 보되 번갈아 가면서 책을 읽어주라고 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라는 책을 읽는 소리가 숲속에 나지막이 퍼져나갔다. 잠시 읽다가 말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 명은 눈으로 책을 읽고 한 명은 아끼는 이의 목소리로 책을 읽는 행복한 광경이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독서 (ProImage100) 함께 책을 읽는 중 ⓒ 안사을
   
차분한 아침 시간 (ProImage100) 8시부터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간밤의 습기를 모두 말려주었다. ⓒ 안사을
 
우리는 독서 후 다시 타프 밑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빵을 먹었다. 잠시 후 나는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미리 준비한 내용이었다.

"너희 언제쯤 헤어질 것 같니?"
"네? 음... 안 헤어질 것 같은데요?"


갑자기 눈이 동그래져서 대답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미소를 지은 후 말을 이어갔다. 어리고 젊은 연인들이 헤어짐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단상들이었다. 요지는 두 가지였다.

청소년들은 한참 성장을 하는 중인데, 자라다 보면 필연적으로 작년의 자아와 올해의 자아가 달라진다는 것. 서로가 소원해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 첫 번째로 이야기한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평범한 내용이었는데, 화학적 사랑이 끝나는 시점에 대한 것이었다. 언젠가는 서로에게 설레지 않는 순간이 올 텐데 그 시기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의와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착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

"이 말들의 요지를 딱 한 마디로 정리해볼게. 너희가 언젠가 헤어질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자책하거나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란다. 예쁘게 잘 만나고 있는 너희를 보면서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고맙다고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이 흘러 평생 가약을 맺는다면 엄청난 축복을 해주겠노라 말하기도 했다. 참 따뜻한 시간이었다.

땀이 많이 났고, 배낭이 무거웠고, 비가 조금 왔고, 수저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은 서로와의 대화 속에 스며들었고, 이내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 자연을 해치지 않기 위해 양치도, 세수도 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이곳에서 깨끗하게 씻어냈다.
 
하산 (ProImage100) 역광이라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하늘이 파래졌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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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