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로이, 꽝남!] 2화 :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

참전기념비와 위령비, 여전히 진행 중인 기억투쟁
[씬 로이, 꽝남!] 2화 :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기념'이다. 전쟁의 본질을 외면한 채, 베트남 전쟁은 대한민국에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 '신의 선물'이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일본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 얻은 경제적 특수에 주목하는 방식과 닮았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도 이 같은 인식이 반영됐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다.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것이 애국"이라고 밝혔다.

'애국'을 기리기 위해 전국 곳곳에는 월남참전기념탑이 서 있다.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하는 기념탑만 54곳에 이른다. 기념탑이 아닌 충혼탑 등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베트남 전쟁 관련 시설까지 합치면 80곳이 넘는다. 정부 예산으로 건립된 기념탑에는 베트남전 참전이 조국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내용의 공적 사항이 충실히 담겨있다.

이런 기억의 방식은 베트남 전쟁이 명분 없는 불의한 전쟁이었다는 점,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반전 운동이 거세게 일었고 유럽을 비롯해 참전 요청을 받은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쉽게 외면한다

대한민국의 참전기념비와 베트남의 위령비

전쟁을 치른 베트남에는 한국군 증오비와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베트남의 전쟁범죄 피해자들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벌어졌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학살의 참상을 증오비와 위령비에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기념’과 베트남의 ‘기억’은 충돌했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 베트남 정부는 이례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베트남 외교부는 레 티 투 항 대변인 명의로 "한국 정부가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베트남 국영방송 VTC도 가세했다. 베트남 국회사무차장을 지낸 응우옌시중 박사는 이 방송과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겨냥해 "박정희 부대를 칭송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국군 파병이 바로 돈 때문이라는 점을 순순히 인정한 것으로, 돈을 위한 참전 행위는 청부살인과 다름 없다"라고 비판했다.

양국 정부가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서둘러 갈등을 봉합했지만 대한민국의 ‘기념’과 베트남의 ‘기억'의 충돌은 언제든 또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낼 수 있다.

한국의 참전기념비와 베트남의 위령비, 그 간극을 메우는 길

화해의 길은 없지 않다. 의도적으로 배제된 진실을 마주하는 것. 현재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베트남 전쟁 참전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오는 21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다.

시민평화법정에는 베트남 꽝남성에서 민간인 학살 생존자 2명이 원고로 참여해 피해 사실을 직접 증언한다. 한국군 참전 군인도 영상으로 증언한다.

물론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마주하게 될 진실은 아득히 먼 대한한국의 참전기념비와 베트남의 위령비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취재·제작: 이승훈 조민웅 기자 / 그래픽: 박소영 기자 / 사진 제공: 한베평화재단·베트남평화의료연대)

ⓒ조민웅 | 2018.04.0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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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실하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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