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블로그를 하면서 나만의 책읽기를 방해하는 유혹들

반응형

금요일 오후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한다면 벌써 주말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조금씩 부풀어 오를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이면 일어나서 못 다 읽은 책도 읽고, 블로거 이웃들도 방문하고, 내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그리고는 출근 준비를 한다. 주말이 없는 나로서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건 순전히 내 기록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읽었던 또 앞으로 읽어나갈 책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리는 어쩔 수 없는 기억의 한계를 메모로 대신하고 싶었던 것이다. 먼훗날 역사가 되었을 이 메모들을 보면서 나도 인생 허투루 살지 않았구나 추억해 보고 싶었다.

책을 읽는다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간다는 게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은 또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내가 만들어나갈 나만의 역사를 지켜봐주고 격려도 해주고 때로는 조언도 해줄 이웃들까지 생기니 금상첨화가 이를 두고 나온 말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접어야만 했다

[스칸디나비아 신화], 오늘 이 시간에 올리고자 했던 포스팅 주제다. 덮고 말았다. 아니 덮을 수밖에 없다. 머릿속엔 온통 혀가 꼬이고 가무가물한 신들의 이름이 혼란스럽게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때같으면 어찌됐건 리뷰를 올렸을 것이 분명한데 오늘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다시 읽어본 과거 리뷰, 포스팅들이 내 얼굴을 붉히고 만다. 때로는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한다. 과연 내가 책을 제대로 읽고나 글을 쓰는지, 제대로 읽고 쓴 글이 이 수준이라면 내 글쓰기 능력의 한계를 절감해야 한다. 그렇다면 굳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부끄럽다. 책을 제대로 읽고 썼구나 싶은 리뷰들을 꼽을라치면 한 손이면 충분해 보여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렵사리 만든 하루 중 일부에 불과한 '짬'들을 너무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 버렸던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그리고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던 유혹들을 되짚어본다.


독서를 방해하는 참을 수 없는 유혹들

방문자수,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받게 되는 유혹의 백미다. 마치 마력과도 같다. 십에서 백, 백에서 천 때로는 천에서 만으로 커져가는 숫자가 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유혹에 정신을 놓는 순간 나에게 순수함이란 이미 '머나먼 왕국'의 추억으로 사라져 버린다. 책이 주는 의미를 놓고 고민하기보다 포스팅 제목에 더많은 고민의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곰을 발견한 사냥꾼마냥 눈에 불을 켜고 메타 블로그를 샅샅이 뒤지는 나를 보게 된다. 결국 책은 건성건성 읽지만 포스팅 제목은 산고의 시간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지우고 쓰고, 또 지우고 쓰고...컴퓨터 자판의 글자들이 희미해져 가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싶다.

추천, 허수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춘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이 허수의 세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보잘 것 없는 내 글을 진지하게 읽고 정성껏 추천 단추를 눌러준 이웃 블로거들에게는 죄송스러울 뿐이다. 언젠가 자주 방문하는 '바람이 머무는 곳'의 주인장 온누리님께서 블로그에서 벌어지는 이 잘못된 현상을 질책한 적이 있다. 참으로 아픈 회초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어찌됐건 허수는 아닐지라도 추천은 요령을 가르쳐 준다. 책읽는 요령이라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추천을 받는 요령 말이다. 책을 읽고 난 진지한 감상보다는 추천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탐독하게 되고 결국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 어찌 제대로 된 독서가 이루어지겠는가! 요즘 내가 이렇다.

베스트,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단어다. 아직 나는 베스트가 어떻게 선정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은 있다. 언어의 유희랄까? 블로그를 하면서 심심찮게 받게 되는 '베스트'라는 유혹은 나의 독서습관을 조금씩 변화케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가장 멀리했던 독서습관 중 하나가 베스트 셀러 위주의 책읽기였다. 물론 베스트 셀러가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다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베스트 셀러를 찾는 내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억지 독서'에 얽매이는 내 자신을 본다. 영합하고자 할 뿐 관심있는 책이 아니기에 제대로나 읽겠는가!

1일1포스팅, 유혹이라기보다는 압박이다. 준비 부족의 문제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 듯 싶다. 리뷰와는 별개로 책 속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 책이나 문화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 시사문제에 대해 나름의 포스팅을 하고 싶었고 그에 맞게 블로그 카테고리도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1일1포스팅의 압박은 정독을 방해한다. 그러나 준비안된 자의 변명일 뿐이다.

늘 초심은 옳다

유혹은 유혹일 뿐이다. 떨쳐낼 수 없다면 유혹이라는 단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초심이 순수하지 않은 이는 없다. 나 또한 그러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블로그를 하는 동안 받는 유혹과 압박을 떨쳐내고 나만의 책읽기, 제대로 된 독서를 해보고 싶다. 해야 한다. 오늘 또다시 가방에 [스칸디나비아 신화] 한 권을 챙기는 것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여강여호(如江如湖, 강처럼 호수처럼)는 때로는 겁없이 따따부따하고 때로는 고요한 사색을 즐기고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