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왜 베스트셀러였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朱雀 2011. 10.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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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 베스트셀러를 읽고 실망한 기억이 많아서, 오히려 베스트셀러는 기피한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제일 잘 맞는 것 중 하나가 베스트셀러라고 본다. 많은 이들이 찾지만, 정작 보면 별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근데 최근에 제목 때문에 부쩍 호기심이 가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었다. 그러나 최근 읽고 있는 책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소설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 책 코너를 매일같이 갱신되고, 거기서 소개되는 신간이나 책소개를 읽으면서 북 리스트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몇 트럭분이 되기 때문이다. 근데 얼마 전 동생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를 사서 집에 놓았다.

 

잠시 읽던 책들이 끝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다. 그러면서 많은 실망을 하게 되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는 제목에서 풍기듯이 범죄소설이다. 독일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가 지은 작품은 여자 친구 둘을 죽이고 시체를 은닉했다는 혐의로 10년간 옥살이를 한 토비아스가 출소하면서 시작된다.

 

토비아스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모든 정황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유능한 경찰을 만나지 못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가 답답한 것은 범죄가 일어난 당일 날의 중요한 몇 시간의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사실이다. 따라서 토비아스는 자신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는 여러 면에서 미국의 범죄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상황이 그렇고, 한곳으로 모이는 상황 역시 그러하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제목은 전혀 작품에 대해 작가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라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읽고 싶어하는 마력을 이끌어내는 작명센스라 아니할 수 없다. 딱 요새 유행하는 말로 ‘악마적 네이밍 센스’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작품의 매력은 딱 거기까지다! 필자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으면서 여러 번 책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소설은 토비아스가 폐쇄된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심지어 죽을 고비를 넘기는 흥미로운 상황이 일어난다. 게다가 흑마에서 알바를 하는 아멜리라는 소녀가 토비아스에 흥미를 느끼고, 11년전 사건을 파내면서 둘이 얽히는 과정 역시 흥미롭다.

 

문제는 여러 가지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데, 그 상황 묘사가 너무나 산만하다는 데 있다. 가령 200페이지를 넘어가면 소설은 위기를 향해 마구 마구 질주해간다. 그러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상황묘사는 호기심을 자아내기 보다는 짜증감을 유발한다. 왜? 거기서 갑자기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상황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작가의 내공이 부족하단 말외엔 변명거리가 없다.

 

국내에서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은 처음 발간되었지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여형사 피아와 보텐슈테인 콤비의 활약을 그린 네 번째 소설로 알고 있다. 따라서 책 뒷표지에 보면 전세계 11개국에서 판매되고, 독일 아마존에서 32주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런 인기 작품 치고는 내용전개와 구성이 너무나 산만하고 짜증나서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필자가 좋아하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과 비교해도 그 격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물론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도 장점은 많다. 폐쇄적인 마을인 타우누스는 여러모로 판타지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마을의 실질적인 영주나 다름없는 테를린덴 부터 마을 구성원 한명 한명은 모두 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사악한 구성원들의 가면이 하나씩 벗겨져 나간다.

 

그런 구성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갖고 있는 추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치 그런 이야기 진행은 그림형제의 동화처럼 잔인하고 끔찍한 옛이야기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장점은 딱 거기까지다! 물론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상황묘사와 구성등은 미국소설처럼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미국 범죄소설의 대가들처럼 작가는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해내질 못한다. 이런 완급조절의 불안정성은 독자의 팽팽한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작품의 묘한 분위기를 깨버리는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한다.

 

특히 결말부분에 이르면 너무나 많은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데 명쾌하게 진행이 되지 않아 마지막까지 읽은 현재까지 뭔가 상황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는 찝찝함이 남는다. 마치 맛있는 피자를 먹다가 바퀴벌레를 씹은 기분이랄까?

 

개인적으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보단 <블러디 워크>등의 명작을 내놓은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을 더욱 권하고 싶다. 물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위에서 언급했지만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긴 한다. 또한 여성작가 특유의 꼼꼼한 세부묘사는 마치 독일의 시골 마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뛰어나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훑어내는 능력도 나름 봐줄만 하긴 하다.

 

그러나 미국 범죄소설이 워낙 좋은 게 많은데, 굳이 그런 작품들을 내버려두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선택해야 될 이유를 모르겠다. 장담컨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보다 잘된 범죄소설은 너무나 많다. 국내에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그런 작품들보다 ‘내가 제일 잘나가’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탓 인 듯 싶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백설공주’란 지시대명사를 너무나 적절하게 사용해서 독자의 주의를 환시킨다. 아마 작가가 잘한 게 있다면, 전적으로 그게 아닐까 싶다. 작품은 2%가 아니라 20%이상 안타까운 구석이 넘치니 말이다. 필자처럼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읽을 만한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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