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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체 게바라 티셔츠 징계, 천박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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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아르헨티나의 젊은이 두 명이 모터싸이클을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스물세 살의 체 게바라와 여섯 살 많은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장장 8개월 동안 남미 대륙을 종단한다. 참 '컴백'이라는 강아지와 함께. 그러나 그들이 오토바이로 남미 대륙을 종단하면서 본 것은 낭만이 아니었다. 헐벗고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못받고 있는 남미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난한 남미 민중들의 삶을 체험하며 그들이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상상하고 고민한다.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체 게바라가 사망한 1967년, 당시의 오토바이 여행을 그린 책 <체 게바라와의 여행>을 출간한다. 한 영웅, 체 게바라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여행을 그린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바로 이 책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2004년 발표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그 해 칸영화제에서 기술상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가 '우리 세기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던 인물,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이 '최근 가장 충격적인 일이 무엇이냐'라는 언론의 질문에 '게바라의 죽음'이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추앙받고 있는 혁명가의 상징적 인물이지만 정작 체 게바라 본인은 '아이들을 아홉 명까지 낳아서 야구팀을 만들고 싶다'던 소박한 꿈을 가진 청년이기도 했다. 평생을 사회주의 혁명에 바쳐온 그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스포츠인 야구를 언급했다는 것 자체도 꽤 흥미로운 대목이다.

 

어쨌든 의사를 꿈꿨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를 혁명의 영웅으로 바꿔놓은 계기가 된 사건 다름아닌 두 차례의 남미 여행이었다. 그는 여행 도중 본 남미 민중들의 가난한 삶은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다. 체 게바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역사적 사건은 쿠바 혁명이다. 그는 카스트로와 함께 당시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를 축출하고 쿠바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 후 그는 카스트로 체제의 쿠바에서 국립은행 총재와 공업 장관을 역임한다. 그러나 그의 혁명가로서의 삶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965년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나 콩고로 건너가 콩고 혁명을 지원하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혁명의 형제 관계로 불리던 카스트로와 끝내 등을 돌리고 만다. 콩고 혁명 실패 후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혁명 국가를 꿈꿨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볼리비아 정부에 체포되어 1967년 10월 짧은 생을 마감한다. 결국 그가 성공한 혁명은 쿠바 혁명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멈추지 않는 혁명 정신과 열정은 훗날 젊음과 자유와, 낭만의 상징이 된다.

 

베레모를 쓴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어딘가를 주시하는 단호한 눈빛. 쿠바 사진 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 찍은 체 게바라의 이미지다. 알다시피 체 게바라의 이 이미지는 혁명가가 아닌 전세계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념을 배제한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이런 체 게바라를 두고 우리나라에서는 그것도 21세기 한복판에서 시대착오적인 이념 논쟁이 불붙고 있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기라도 할까봐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걸핏 하면 터지는 이념 논쟁. 냉전적 사고로 미래를 말하는 우리사회는 발에 부딪치는 돌맹이 하나도 좌가 있고 우가 있을 판이다.

 

지난 광복 68주년 행사에서 광주시립소년소년합창단이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상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와 광주보훈처장이 이를 지적하고 보수언론이 확대 재생산하더니 급기야 강운태 광주시장은 합창단장의 징계까지 지시했다고 한다. 도대체 전세계인들이 입고 다니는 체 게바라 티셔츠가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이해도 안될 뿐더러 보수 단체와 보수 언론의 역사와 문화적 인식의 천박성만 만천하에 까발리는 꼴이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강운태 광주시장은 문화도시 광주에 걸맞는 시장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 반제국주의를 외친 체 게바라의 혁명 사상과 맞지 않다는 광주보훈처장의 역사 인식도 문제지만 단순히 사회주의 혁명가라는 이유로 이념 논쟁에 불을 지핀 보수언론의 행태는 우리사회의 천박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알다시피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사에서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함께 민중들의 독립 열망을 이끌었던 양대 축이다. 하기야 해묵은 이념 논쟁 때문에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독립 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잘못된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게다가 광주 지역 시민단체의 성명대로 체 게바라는 '이미 전세계 문화예술계의 주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시대와 나라를 뛰어넘어 문화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젊음의 키워드'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시가 일부 보수 세력의 해묵은 이념 논쟁에 뛰어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세계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락 밴드에 열광하고 있는 이 때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시대착오적 논쟁이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까.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언젠가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거대한 장벽이기도 하다.

 

강운태 광주 시장이 광복절의 의미와 광주 정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체 게바라 티셔츠 징계'를 마땅히 철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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