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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어린이집 CCTV 설치가 능사인가?

by 이윤기 201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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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폭행(?)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CCTV에 찍힌 교사의 폭력 장면과 언론에 보도된 교사의 행적을 보면 그녀는 일반적인 보육교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 한 명으로 인해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대한민국 모든 보육교사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고, 보육교사 = 아동학대라는 등식으로 인식되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늘 뒷북만 치는 정치권은 '아동학대근절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어보입니다. 고작해야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인 것 처럼 보입니다. 아니 이번 사건으로 CCTV 설치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실시간 감시 기능을 포함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만 남은 듯이 보입니다. 




정말...전국 모든 어린이집이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때일 수록 CCTV 의무화를 두고 10년 이상 국회에서 논의를 계속해 온 까닭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CCTV 설치는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감시기능이 포함될 경우 교사와 아동의 인권 문제는 물론이고 해킹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제 3의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울러 이건 기계(기술)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관점에서도 고민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인천에서 벌어진 보육교사의 폭행 사건 뉴스가 나온 후에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아동학대, 인권침해 의심(?) 사례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남 고성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의심되는 사건이 있어서 경찰이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여 교사들을 조사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경찰 설명을 종합하면, ㅂ군은 지난해 11월19일 오후 어린이집을 다녀온 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부모가 이유를 물어보니 ㅂ군은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고 선생님한테 꿀밤을 맞았으며, 강제로 밥을 먹이는 바람에 구토를 하자 다른 선생님이 욕을 했고, 또다른 선생님은 현관문을 잠가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20일 한겨레신문)


하지만 경찰이 조사를 해보니 ㅂ군이 나가지 못하도록 현관문을 잠그는 영상만 확인 될 뿐 다른 내용은 없었다고 합니다. ㅂ군이 말한 내용은 CCTV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였지만 이상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꿀밤, 강제급식, 구토, 현관문 잠금...아이의 말만 믿고 아동학대라고 할 수 있을까?


인천 보육교사의 폭행 사건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이지만, 경남 고성에서 발생한 이런 사건을 드물지 않은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부모와 경찰들은 '아이들이 거짓말 하겠느냐?"하는 뚜렷한 선입견을 가지고 사건을 대합니다. 아이의 진술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고 선생님한테 꿀밤을 맞았으며, 강제로 밥을 먹이는 바람에 구토를 하자 다른 선생님이 욕을 했고, 또다른 선생님은 현관문을 잠가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진술을 들으면 아이의 말이 100%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사건을 잘 다룬 영화로 <더 헌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폭행 사건 이후에 법과 제도를 뜯어 고치겠다고 나서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법과 제도를 바꿀 때에는 여론몰이에만 휘둘리지 않고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은 항상 옳을까?


덴마크 영화 <더 헌트> 의 주인공 루카스(매즈  미켈슨)는 유치원 남자 유치원 교사입니다. 우리에게는 흔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덴마크에서는 더러 있는 일인 모양입니다. 사건이 일어날 쯤 루카스는 아내와 이혼한 직후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훌륭한 교사였던 루카스는 늘 어린이들에게 좋은 친구 역할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면서도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에는 자신의 괴로움을 감추고 지내는 교사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중에 클라라는 아이가 있는데 그는 루카스를 좋아합니다. 남자 아이들과 놀고 있는 루카스에게 다가가 기습적으로 뽀뽀를 하기도 하고 하트 모양이 담긴 물건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뽀뽀는 엄마나 아빠에게만 하라"고 가르치고 "이런 선물은 남자 아이들에게 주라"고 일러줍니다. 


루카스의 말에 마음이 상한 클라라는 유치원 원장 선생님에게 가서 "루카스 선생님의 발기된 성기를 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클라라의 한 마디는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를 일으킵니다. 


어린 여자 아이는 유치원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이혼한 남자 유치원 교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어린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정황으로도 아이가 그런 거짓말을 할 까닭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루카스는 파렴치범으로 내 몰리고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로부터 철저하게 따돌림 당합니다. 어떤 변명과 해명으로도 "어린이가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 교사들을 아동학대를 일삼는 잠재적 범죄자처럼 욕하시는 분들에게 꼭 한 번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CCTV만 있으면 제 3자가 진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일본 영화 '라쇼몽'을 보면 사건 당사자의 진술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드러납니다. 조금 더 진지하고 깊은 성찰이 뒷받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