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는가?”
이런 질문을 곱씹는 기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냥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기자가 돼 있더라?, 아니면, 글쓰는 걸 좋아하고, 남보다 글을 잘써서 기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거나, 그런 걸까. 왜 기자들은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기자의 의도가 담겨진 글을 진실인냥 써대는 것일까.
진실이란 꽤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는 진실을 판별할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있다. 다만, 그 알고 있는 진실을 그대로 보도하기엔 자신이 속한 언론사나, 기자 스스로에게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망설일 것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언론사가 난립돼 있는 경우, 또 시민들이 정보를 취할 루트가 다양해져 있는 경우, 언론사의 정보 독점은 사라지게 되고, 자연히 언론사는 존재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을 하게 마련이다.
세상과 타협하는 기자는 더 이상 기자로서 가치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정보 독점 구조를 언론사가 취할수 없는 입장에서, 막강한 자본의 권력과 실세 권력들과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언로사 스스로 기자들에게 세상과 타협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기자가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기사가 있다.
아니 썼지만, 폐기처분 되는 기사들도 꽤 있을 것이다. 세상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언론사에 돌아간다. 기자 스스로도 타협하지 않으면 기자 세계에서 왕따가 되기 싶다. 취재란 게 단순한거다. 정보를 어떻게 얻느냐가 관건인 거다. 기자가 발로 뛸 자신이 있으면 모를까,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에 상당부분 의존할 것이다.
때문에 출입처 눈밖에 나는 일을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게 현실적인 자세다. 그리고 기자들이 여론을 무시하는 행태는 정도를 넘었다. 언론사들이 예전의 명성을 다시 찾는 건 불가능하다. 시민들 스스로 정보를 취하고 판단하는 단계에 서서히 올라서기 때문이다. 점점 시민들은 박봉의 기자들만큼 다양한 루트에서 정보를 취한다.
그리고 기자들의 펜이 절대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때때로 정말 정의감이 넘쳐서 이것저것 재지 않고 용감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용감한 기자들도 식상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오마이뉴스나 미디어오늘 같은 경우에 재벌과 대기업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데크스에선 정말 엄청난 피해를 각오하고 지면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기사들이 용감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솔직히 개인적인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식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자들을 믿지 않는 이유, 그건 식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보고 싶다. 오마이뉴스나 미디어오늘 등 진보언론에서 강성 노조, 귀족 노조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고 싶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강성노조와 귀족노조라고 왜 불리는 지 그 이유를 독자들에게 알게 해주는 기사를 보고 싶다.
그리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서 삼성과 LG를 비롯한 재벌, 대기업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고 싶다. 넋두리처럼 쓰는 이 낙서 같은 글이 그나마 생명력을 얻기 위해선 오로지 진실을 파헤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식상한 진실말고, 도전적인 진실을 찾는 언론을 보고 싶다. 그날이 오지 않으면, 아마도 언론사나 기자들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를 맞이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