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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의로운 죽음'으로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던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친구 박종철 열사의 17주기 추모일이다. 나는 지난 1월 11일(일) 여러분들과 함께 마석모란공원에 묻혀 있는 친구의 묘소를 참배한 후, 오늘은 서울대에서 진행된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아래 글은 3년 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참배한 후 돌아와 쓴 글이다.

▲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는 서울대생들
ⓒ 6월항쟁기념관
어제 14일은 내 대학시절 학생운동 동지였던 종철이의 14주기였다. 원래는 아내와 두 아들 이렇게 넷이 함께 가려고 했는데, 마누라는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다른 약속을 잡아 나가버렸고, 큰아들은 만사가 귀찮은 듯 "아빠 친구가 죽었는데 내가 왜 가?" 하면서 거부해버렸다. 큰아들은 요즘 게임에 빠져 다른 일에는 통 관심이 없다.

할 수 없이 둘째 아들과 둘이서 갈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영하 16도) 사실 둘째 아들을 데리고 간다는 게 무리가 있었지만, 달리 방법도 없어서 함께 경기도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묘지로 향했다.

둘째 아들은 이제 여섯 살이 되는데 "오래 전에 아빠 친구가 경찰에 끌려가서 고문 받고 맞아서 죽었단다" 라고 하니까 다짜고짜 하는 말이 "아빠 그 경찰, 일본경찰이지?"라고 묻는다. 어린 아들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경찰이 죄 는 사람을 데려다 때리고, 고문하고 그러다 죽게 했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으리라.

종철이 추모행사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가족들도 함께 하고, 종철이와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나같은 친구-선후배도 함께 하고, 종철이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대학교 후배들도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와서 함께 한다.

나는 종철이의 묘소에 오면 항상 이러저러한 기억이 떠오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던 87년 1월 신월동에서 자취방을 몰래 얻어놓고 숨어 있다가 중앙일보 석간에서 종철이의 죽음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알 수 없는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하던 기억, 특히 86년 10월 하순 경 종철이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때 우리는 함께 유인물을 만들어 성남지역에 배포할 계획이었는데, 종철이는 유인물 내용을 청타지에 타자를 쳐서 나에게 가져왔다.(특별한 재주가 없던 나는 그걸 등사기로 밀어서 유인물을 완성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나에게 청타지를 건네주고 돌아가던 종철이는 인문대 5동 계단을 내려가다가 내가 뭔가 할 말이 있어 부르자 위쪽의 나를 향해 예의 그 선한 모습으로 되돌아보았다. 그때 종철이의 안경 쓴 그 순박한 모습이 살아있는 그를 본 마지막이 될 줄이야!

종철이 아버님에 대한 죄송함과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도 이즈음에 항상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커다란 동력이다.

당시 군사정권이 고문치사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즉각 화장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그걸 곧이 곧 대로 받아들였던 순진한 부산시의 수도국 공무원이었던 분. 그런 분이 이후 투사가 되어 어느덧 칠순을 넘기셨음에도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15년째 묵묵히 실천하고 계시니 어찌 죄송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지 않겠는가!

이 곳 마석에 오면 종철이가 자신의 짧은 젊음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생전에 제일 좋아했던 노래 '그날이 오면'을 부르게 되는데, 나는 항상 이 노래를 부르면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한 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곳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아 아 피맺힌 우리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나는 이날도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던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종철이의 죽음을 접한 후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억누른 채 2·7투쟁, 3·3투쟁에 참여하면서 종철이와 한 약속을 떠올리며 자칫 나약해질지 모르는 마음을 다잡았다.

"네가 살아서 이루지 못한 세상, 끝내 살아서 보지 못한 '그날'을 위해 살아있는 내가 한눈팔지 않고 네 몫까지 투쟁하마!"(200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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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2022) <현충원 역사산책>(2022),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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