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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 대표님들, 너무 깐깐해요. 누가 그 집 며느리로 들어갈지… 우하하"

이른바 '성매매 방지법' 시행 이후 여성단체와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공동으로 여는 최초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양측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약 40분 전인 아침 9시20분께, 인천과 부산 성매매여성 8명과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은 안국동의 한 빵집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8시간에 가까운 밤샘 회의를 끝내고 왔다는 이들의 얼굴은 까칠했다. 하지만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커피를 마시던 부산 완월동 성매매 여성모임인 '해어화' 대표 김자영(가명·31)씨가 조 사무총장에게 농담을 던졌다.

"조 총장님, 너무 깐깐해. 밤새 회의를 하고도 모자라 전화를 해선 문구 수정 확인을 하더라니까요. 우리가 다 그랬어요. '아유, 누가 저 집 며느리로 들어갈지 걱정된다'고."

조 사무총장이 웃음을 터뜨리며 받아쳤다.

"그렇게 확실하게 해야 실수가 없지. 그래도 충고한대로 오늘 화장도 하고 왔잖아."

'항의'하러 갔다가 '동지'가 된 사연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언론 등을 통해 주로 부각된 내용은 성매매 종사여성들의 여성단체에 대한 불신이었다. 성매매 업주들과 공동으로 연 기자회견과 집회에서도 성매매 여성들은 여성단체를 향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단체냐"며 "제발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달라"고 외쳐댔다. 그리고 여성연합 사무실을 방문하기 전까지 김자영씨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사실 우리요. 처음엔 항의하러 갔어요. 당신들이 입법청원한 법 때문에 우리 다 죽게 생겼다고 말이예요. 그런데 얘기를 해보니 우리가 오해를 한 부분도 있더라고."

김씨와 조 사무총장간의 만남은 지난 19일 처음 이뤄졌다.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열린 전국 성매매여성의 집회 후, 김씨가 탄원서를 전달하기 위해 여성연합 사무실을 방문한 것. 그런데 조 총장과 얘기를 나누면서 여성단체에 대해 일부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부산과 인천 지역 성매매 여성들이 '한터전국연합'(전국 성매매업소 밀집지역 업주 모임)과 성매매종사 여성이 지난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기자회견에 불참하면서 여성연합과의 논의가 급진전됐다.

부산과 인천의 성매매여성 대표단은 다시 여성연합 사무실을 찾았다. 손에는 성매매업소 밀집지역 내의 지원시설 건립을 위한 건의서가 들려있었다.

인천 '옐로하우스' 성매매여성 모임 대표인 김보연(29·가명)씨는 "자발적인 탈성매매를 위해 정부가 더욱 실질적으로 지원해달라는 뜻으로 마련한 건의서"라며 "여성연합과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섯 번에 걸친 만남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과 여성연합은 교집합을 찾게 됐고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르렀다.

성매매 방지법 상의 '비자발적-자발적 성매매 여성' 구분은 무의미하며, 자발적 성매매 여성에 대해서도 처벌이 아닌 탈성매매를 전제로 한 지원사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 등이 기자회견문에 담겼다. 성매매 여성 대표단이 건의서를 통해 제안했던 성매매 밀집지역 내 지원시설 건립은 '집결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부에 공개 제안됐다.

김자영씨는 이날 기자회견은 결국 모든 성매매 종사 여성들을 위한 외침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모든 집창촌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탈성매매를 원한다. 누가 죽을 때까지 그 짓을 하려고 하겠느냐"며 "여성부에서도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리라 믿는다. 오늘 우리의 주장이 어서 현실화돼 모든 성매매 종사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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