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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감세와 증세, 국민 선택 받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정면으로 승부를 걸었다. '감세냐 증세냐'만 놓고 따지면, 누가 보아도 감세 쪽이 유리하다. 세금 더 내라고 해서 좋아할 사람 별로 없고, 세금 깎아준다고 해서 싫어할 사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보아서는 일단 박근혜 대표가 유리한 지점에 선 것으로 보인다. 감세를 이야기한 박근혜 대표는 여우, 증세를 이야기한 노무현 대통령은 곰 같은 인상이다.

한나라당의 논리 "마음대로 먹고 게을러도 살 뺄 수 있다!"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은 2004년 총선 직후부터 본격화되었다. 아마 민주노동당이 부유세 공약으로 2004년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결과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2005년 하반기에 들어서 감세정책에 대하여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다(열린우리당이 과연 감세정책에 대하여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하여는 다음에 확실히 이야기 하겠다).

열린우리당의 감세정책에 대한 비판의 기조는 감세는 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소득세 2%P 인하에 대한 결과를 2003년 귀속 국세청 통계를 통하여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저소득층인 하위 50%는 전혀 혜택이 없으며, 상위 5%는 자영업자의 경우 150만원, 근로자의 경우 60만원의 혜택을 본다. 중간층으로 분류되는 상위 45~50%는 껌값 밖에 안되는 4000원 정도의 혜택을 본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감세는 부자만 혜택을 준다는 비판은 맞지만 2% 부족하다.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혜택을 못 받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증세의 경우에도 서민에게 '증세가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지?'라는 의문에 답을 주지 않으면 호응을 얻기 어렵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오른쪽의 그림은 국민은 정부에게 세금을 내고 정부는 재정지출을 통하여 국민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①세금과 ②재정지출은 연동한다. 세금이 많으면 공적 서비스의 여력이 커지고 세금이 적으면 공적 서비스의 여력이 작아진다.

한나라당은 철저하게 ①과 ②를 분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세금은 깎아주고 복지는 늘리겠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먹고 게을러도 살을 뺄 수 있다.' '공부 안 하고 마음껏 놀아도 1등할 수 있다.' 이게 한나라당의 기본 전략이다.

반면, 대통령과 여당은 ③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③은 비용을 지불해야 이익이 생긴다는 단순한 진리에 불과하다. 세금이 어떻게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오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 '비용 없이 이익을 보장한다'는 사이비 장사꾼의 선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

필자가 2004년도에 스웨덴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인구가 7만명 정도인 어느 자치시의 양로원을 답사했다. 그 양로원에서는 치매 노인 한 명을 위해 국가로부터 매월 약 6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한다. 600만원이 엄청난 돈이기는 하지만, 치매노인 한 사람으로 인해 몇 가족이 고통을 받고 경제활동에 집중하지 못해 생기는 사회적 손실에 비하면 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양로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자치시 정부와 세무서(tax office)가 있었다. 그 순간 머리에 그림이 그려졌다. '저 세무서에서 거둔 세금이 저 양로원으로 가는구나!' 그 치매 노인은 그 자치시 주민 중 누군가의 어머니고 할머니이다. 그 자치시 주민들은 내가 낸 세금이 지금 이웃집 어머니를 위해 쓰여지고 있으며 언젠가 나도 그러한 혜택을 받을 것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 국민에게 ③은 뚜렷하다.

③을 뺀 세금논쟁은 서민들 입장에서는 추상화이다. 그저 낙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자기들끼리 의미를 부여하고 싸우고 난리다. 이상하게 생긴 낙서가 달이면 어떻고 해이면 무슨 상관이랴!

'양극화 해소', '복지확대'와 같이 추상적 단어만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정부여당은 지금 당장 ③을 그려낼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진실이 분명치 않으면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 목소리 높여 감세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이 분명 유리하다.

80년대 미국은 왜 쌍둥이 적자에 허덕였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감세는 달콤한 독약이다. 달콤한 무엇인가가 독약인지 보약인지 알게 하는 방법은 한번 먹어본 사람을 보여주는게 최선의 방법이다.

감세정책을 전면화시킨 한나라당의 조세정책 문건을 보면, 서두에 1980년대 미국의 조세정책이 최장기간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인 감세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이 레이거노믹스를 본 딴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레이거노믹스의 감세정책이 미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1980년대 후반의 미국 할리웃 영화를 보면, 일본자본이 미국의 특정 도시나 특정 분야를 지배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자본이 미국의 주요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현상을 미국언론은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의 경제 암흑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감세는 투자를 활성화 시킨다', '재정은 세출 삭감을 통하여 균형을 맞춘다', '감세로 투자가 활성화되면 세수가 증대된다(래퍼 효과)' - 이것이 당시 레이거노믹스의 핵심 내용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감세 주장과 같다.

레이거노믹스의 결과 감세는 확실히 이루어졌다. 그런데 재정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재정지출 삭감은 증세 만큼이나 저항이 거세다. 그래서 원래 약속한대로 '감세-재정지출 삭감'이 아니라,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만 골라 '감세-재정지출 증대'로 이어진 것이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재정 적자를 초래하였다. 게다가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시켜 세수를 증대시키는 소위 '래퍼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나라당 역시 예산 낭비만 방지해도 감세를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답은 없다. 주장만 있고 답이 없는 경우 그 실행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산 낭비는 어느 나라에서나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이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항상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다른 정책과 대체할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아니다. 밥 먹을 때 밥풀 몇 개 흘렸다고 해서 그걸로 다음 끼니를 때우라거나 먹은 것 토해내라고 하는 건 너무하는 것 아닌가?)

세금 외에 재정적자를 메꾸는 유일한 방법은 국채발행이다. 막대한 국채발행은 민간부문의 자금을 고갈시킴으로써 고금리를 초래했다. 고금리는 한편으로는 민간부문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소위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초래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가치의 상승으로 미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려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였다. 이게 바로 '재정적자-경상수지적자'의 쌍둥이 적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쌍둥이 적자는 미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졌다. 감세의 포퓰리즘으로 장기 집권한 권력자는 행복했지만 국민은 불행했다.

무차별적인 감세정책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국의회는 1990년도에 예산집행법에 수입지출연동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감세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감세액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정지출 절약 방안을 동시에 내놓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무책임하고 인기영합적인 감세 공약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감세정책 10년 만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뭔가 깨달은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992년 클린턴이 집권하자마자 소득세를 인상했다. 이 조치는 재정적자 감소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이자율을 하락시켰고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이로써 1990년대 중반 컴퓨터 및 IT 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기반이 조성되었으며 미국경제는 회복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여당이여, '감세는 달콤한 독약'임을 증명하지 못하니...

최근 미국은 다시 쌍둥이 적자로 인해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2001년 미국의 재정 흑자는 3740억 달러이었는데, 2004년에는 재정적자를 3972억 달러 기록하였다. 이는 부시정권의 '감세정책-국방비지출 증대'의 결과일 것이다. 부시는 집권하자마자 상속세 폐지를 비롯하여 감세정책을 천명하였다. 이에 보수주의자와 한나라당은 '그것 봐라'라며 흥분하며 우리도 감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달콤한 독약은 '달콤함'과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두가지를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숨기고 달콤함만 강조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일부만 달콤한 맛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라도 달콤함을 맛보는 게 전혀 맛보지 못하는 것보다 낫잖아?' 이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감세(減稅)가 독약임을 증명하지 못하니 지금의 증세(增稅)가 보약이 될 수 있다는건 더 더욱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참여정부 들어서서 노 대통령에 대하여 계속 실망감을 가져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겁 많은 아마추어들 데리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려니 얼마나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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